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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성공한 대북 '공작'... 왜 안기부는 모두 까발렸을까

[리뷰] ‘흑금성 공작’ 실화가 바탕 된 영화 <공작>, 이 시대에 필요한 공작은...

18.08.08 17:41최종업데이트18.08.0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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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1940년대 후반에서 1990년까지 동서냉전은 첩보물의 주요 소재였다. 다른 체제와 이념은 서로의 경쟁과 갈등을 부추겼고, 이는 상대에 대한 고도의 첩보전으로도 이어졌다. 서방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주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을 악으로 묘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서구권 국가의 첩보요원들은 다양한 공작 활동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타격을 입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냉전이 해체된 이후 중동의 이슬람 국가와 이를 추종하는 무장 세력 등이 새로운 대결 상대로 등장하고 있다. 오랜 시간 긴장관계가 이어지는 남북한 역시 주요 영화소재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1999년 개봉했던 한국형 액션영화 <쉬리>는 남북 대결을 소재로 국내 정보기관 요원들의 활약이 묘사된 영화였다.

최근의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는 지난해 개봉했던 <강철비>에서 보듯 북한의 핵개발을 다루고 있다. 올해 초부터 북한과 대화국면이 이어지면서 긴장은 완화되는 모습이나 여전히 한반도 주변국의 정보기관들은 무수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남북 첩보전

영화 <공작>의 한 장면. 베이징의 남북 공작원 ⓒ CJ 엔터테인먼트


8일 개봉한 영화 <공작>은 1993년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북한의 핵개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정원)는 핵심 공작원을 침투시키기 위해 '흑금성 공작'을 기획한다. 공작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해외실장과 안기부장, 대통령 3명이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1년 간 신분세탁 과정을 거친 안기부 비밀요원 박석영(황정민)은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중국 베이징의 북한 조직에 접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 측 국가안전보위부의 집요한 의심과 경계가 이어지지만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기며 당시 북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기주봉)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공작>은 그 긴박한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기존 영화는 다르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정보기관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대북공작이었고, 만일 정치적 이유로 인해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후 진행과정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1997년 대선 직후 수 년 간의 성공적인 공작 과정이 역설적이게도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인해 언론에 공개되면서 멈춰선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적인 각색이 들어가 있지만 <공작>은 1990년대 대북 공작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의심을 거두지 않고 집요하게 검증하려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감시를 넘기고 신뢰를 갖는 과정, 북한 인사들의 대화를 도청하는 장면 등은 남북 간 첩보전을 긴박함을 묘사한다.

다만 당시 언론보도와 서적 등을 통해 당시 내용이 알려졌기에 기본적인 전개 과정을 아는 관객들에게 첩보영화로서의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현란한 액션이나 스릴 있는 추격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고 20년 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사건이 배경이라는 점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첩보영화들과는 다른 무게감을 안겨준다. 당시의 상황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남북관계를 통해 현재의 남북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공작>이 남기는 묵직함이다.

성공한 공작 스스로 까발린 정보기관

영화 <공작>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남북의 냉전관계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공작을 대외적으로 까발린 것은 어이없게도 당시 공작을 기획하고 지휘했던 안기부 핵심들이었다. 오랜 시간의 성과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 한심한 짓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 자신들의 저지른 잘못과 치부를 가리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북한 쪽 공작 대상마저 어떻게 정보기관 스스로가 자신들의 공작을 공개할 수 있냐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비웃음을 짓는다. 당시 북한 입장도 미처 걸러내지 못한 남한 정보기관 스파이의 침투를 남한 정보기관이 스스로 밝히는 태도가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작>이 영화이 시간적 배경을 1993년~1997년을 중심에 둔 것은 다소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긴 시간 국가 안보를 강조하며 냉전의 지속을 원하는 보수로 위장된 수구세력들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강철비>에서 나왔던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는 대사를 <공작>은 실제 사건의 묘사를 통해 확인시켜준다. 앞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외치며 안보를 강조하던 이들이 뒤로는 은밀히 협력과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도움을 구하는 태도는 여전히 국가의 주요 역할을 맡고 있는 냉전수구세력의 민낯이기도 하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아울러 냉전 수구세력에 둘러쌓인 정보기관이 국가가 아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성공한 공작도 언제든 뒤엎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자막을 통해 짤막하게 설명하지만 자국의 비밀공작원과 활동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이후 법정에 세우며 사실상 모든 공작을 인정한 것 역시도 정보기관의 수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북의 대결을 묘사한 영화 <공작>이 담고자 한 메시지는 냉전보다는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와 상생을 하자는 것이다, 1997년 대선 직전까지 상황을 다룬 <공작>의 마지막은 일종의 에필로그로 2005년 남북합작 광고가 성사되는 모습을 담는다. '공작'이라는 것이 대결 과정에서 수반되는 필수 요소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대결을 완화시키고 서로가 상생하고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 <공작>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음산한 느낌이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작'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을 막아내고, 한반도 평화 기조를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공작'은 계속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작 흑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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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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