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운동: 이탈리아 신자유주의 정치의 포퓰리즘적 대안

등록 2018.08.10 10:05수정 2018.08.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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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국제전략센터 송대한 영문뉴스레터 편집장이 오성운동 시작부터 함께한 치로 브레시아(Ciro Brescia)를 인터뷰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M5S) 창립 멤버인 치로 브레시아와의 인터뷰가 5월 9일에 진행되었다. 그는 부패 풍자개그로 유명한 베페 그릴로를 중심으로 한 미트업(소모임을 만들 수 있는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 오성운동은 이를 이용해 정치가와 유권자가 직접 만나는 모임을 만들고, 이슈와 정책을 만들어내는 모델을 구축했다)에서 오성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참여해 최근 포퓰리즘 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오성운동의 성장을 지켜봐왔다.

많은 지지를 받으면서도 때로는 보수, 때로는 진보적 행보를 보이는 이 포퓰리즘 운동-정부집권을 추구하지만 오성운동은 정당으로 명명되는 것을 거부한다-에 대해 더 상세히 알고자 이번 인터뷰를 추진했다. 자칭 공산주의자인 브레시아는 오성운동이 출현한 정치적 맥락과 오성운동을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을 탐구하는 것을 통해 이탈리아를 변화시키는 오성운동의 잠재력과 모순을 설명한다.

본 인터뷰가 오성운동의 역사를 다루는 측면이 있으나, 인터뷰 실시 이후에 두 개의 반기득권 포퓰리즘 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했기에 이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선거 결과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32% 이상 득표해 1위를 차지했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동맹당은 17% 이상을 득표해 3위를 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이후 포퓰리즘 정당 간의 연합정부와 그에 대한 브레시아의 반응에 대해 추가 인터뷰를 실시했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언제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오성운동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사회운동을 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 재건공산당에 참여했습니다. 당 내에서도 항상 좌파 쪽을 더 지지했지요. 그러나 재건공산당 지도부가 선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당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국제 문제, 특히 차베스 대통령을 상대로 한 2002년 제국주의 쿠데타 기간의 볼리바리안 베네수엘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항하는 대중저항운동 전선의 일환으로 '보완 통화(국가에서 통용되는 통화는 아니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통화 또는 교환 수단. 국내에서는 지역 화폐가 보완 통화의 개념과 가까움)'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슈를 심화 발전시킨 단체 중 하나가 베페 그릴로의 동지들이 하는 미트업에 모이게 되었어요. 이러한 그룹들이 선거에 참여하여 집권을 추구하는 오성운동을 탄생 시킨 최초의 핵심 기반이었습니다. 이 운동의 특징 중 일부는 파시스트 정권과 싸우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형성되어 최초의 이탈리아 공화국 설립의 토대가 된 국가해방위원회(NLC)를 연상케 합니다. 국가해방위원회는 진보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즉,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공화당, 기독교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한때 군주제를 지지했던 자들과 파시즘과 거리를 둔 자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오성운동이 간신히 첫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2010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의 첫 오성운동 출신 후보자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지난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출된 여러 기관의 대변인을 통해 미주대륙볼리바르대안(ALBA) 회원국의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 오성운동은 어떻게 발전했으며, 오성운동을 만든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오성운동은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베네수엘라는 반(半)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탈리아는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처음부터 오성운동은 차베스 중령이 이끌었던 제5공화국운동(MVR)과 궤를 같이 합니다. 차베스의 제5공화국운동의 핵심 프로그램, 즉 푼토피호 체제(이탈리아로 치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결합한 양당론으로 석유 수입을 나눠갖고 군부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을 골자로 한 조약), 가장 비열한 기득권 및 부정부패와 싸우고, 국가의 전략적 기업을 수호하며, 참여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축은 오성운동 창립의 핵심 가치와 같습니다."

- 기존 정치에 대한 회의감으로 오성운동은 정당이 아닌 운동이라고 스스로를 부르지만, 지난 3월 총선에서 32.6% 지지율로 가장 큰 정당이 되었습니다. 오성운동은 어떻게 우파와 좌파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까?
"베페 그릴로는 80년대 크락시(사회당) 정부의 부패를 풍자한 것이 화근이 돼 이탈리아 공영 방송 라이에서 쫓겨난 유명 인사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생각했습니다. 베페 그릴로는 2009년 10월 4일에 오성운동이 결성되었을 때부터 오성운동의 대표로 인식되었지요. 그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민주당(PD)과 베를루스코니 파(신자유주의자)의 부패를 규탄하며 자신을 대안으로 내세웠습니다. 베를루스코니는 오성운동을 '공산주의자'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공산주의자'는 베를루스코니가 선거에서 이긴 90 년대 '좌파'를 의미합니다.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오성운동이 베를루스코니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사회민주주의과 베를루스코니 자유주의자 진영은 자신의 '두 번째 공화국'에 맞서 오성운동가들과 오성운동이 조직한 집회와 불복종 운동을 비난했습니다.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공산주의운동이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위한 사회적 헤게모니를 달성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오성운동이 이탈리아의 사회적 진보를 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성운동은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와해되어 실패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에 자신을 팔고 우파에 굴복했던 그리스의 가짜 좌파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같이 말이지요. 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룹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이데올로기적, 정치, 경제, 사회적 헤게모니를 건설하는데 실패한 좌파 부르주아의 영향을 받아 분석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성운동은 "좌파"(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 수정주의)와 우파(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스스로 정의한 자유주의적 노동)식 신자유주의 정치에 빠진 "이탈리아 양극 체제"의 대안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18 년 3 월 4 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성운동은 "제 1 공화국" 정당(예: 기독교민주당, 이탈리아 사회당, 이탈리아 공화당, 이탈리아 자유당, 이탈리아 민주사회당)과 "제 2 공화국" 정당(예: 민주당,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스스로를 "운동"으로 정의했습니다. 오성운동은 우파와 마테오 렌치의 민주당이 그랬듯이 다른 세력과 연정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오성운동이 많은 득표를 하고 제1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정치 경제 공약은 "기본 소득 도입"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실업률이 매우 높은 현실 (가장 문제가 심한 지역에서는 청년과 여성 실업률이 40에서 60%에 육박) 속에서 기본 소득 도입은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실업자의 조직적 운동은 "일을 하던 하지 않던, 우리는 살고 싶다", "기본 소득 보장하라" 등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성운동이 총선에서 제1당이 될 수는 있지만, 다른 정치 세력과 연정하지 않고는 단독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상되었습니다.

더욱이, 새로운 선거법인 "로사텔룸"은 렌치의 민주당과 베를루스코니의 우익 진보 세력 간의 연합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rosatellum 특징: 첫째, 전체 의석 중 64%는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고, 나머지 36%는 단순다수득표제로 선출. 둘째, 기존 제도와 달리 선거 이전에도 정당 간 연합을 가능하도록 허용. 셋째, 원내 진출을 위해서는 단독 정당인 경우 전국 득표율 3%, 정당연합인 경우 득표율 10%를 획득해야만 가능.) 두 정당은 유럽연합(EU)의 "트로이카(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에 찬성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사기"는 범대서양주의자(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들 간의 군사·정치·경제상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와 친EU 과두세력의 버거움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3 월 4 일 선거는 독일 메르켈 정부의 사회민주당(SPD), 기독교민주연합, 기독교사회연합과 "포퓰리즘" 간의 대연정과 같이 신자유주의 정부에 대항한 것입니다.

따라서 XVII 법안 통과로 "좌파" "우파" 구별이 의미가 거의 없는 이탈리아 현실을 보여주는 우파나 사회민주주의자의 가면을 쓴 이탈리아판 '푼토피호체제'(양극단주의 또는 양당체제)를 파기하는 데 오성운동이 매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절대적 사실은 아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의제는 훨씬 더 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가면"이 깨지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인 위기 속에서 대의제가 제국주의 부르주아의 권리를 보장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여민주주의" 또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오성운동의 핵심 가치가 사회운동 발전을 위한 비옥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오성운동도 "유사 진보"식 신자유주의 정책이 있었지만, 주요 좌파로 간주되는 민주당 표를 오성운동이 다수 획득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신임을 잃었고 구세대 정당은 점점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여러 형태의 우파로 변화해가서 결국 대중적 기반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 오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다른 당과 국제연대에 참여합니까?
"사회운동 세력(노동자, 실업자, 생태주의자)은 비판은 물론 대화를 통해 오성운동의 선출직 관료를 통제합니다. 밀라노에서 나폴리,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가 있는 캄파니아 지역에서는 오성운동이 "기본 소득"을 주장하면서 70 %까지 득표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연대와 관련하여 오성운동은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민중무역협정(ALBA-TCP) 회원국의 모든 외교관을 초청하여 공식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브릭스(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국을 일컫는 경제용어)와 NATO 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행사를 주최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오성운동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알레산드로 디 바티스타는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중남미진보국가및운동모임(ELAP)에 유일한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이 모든 행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오성운동의 향후 방향은 무엇입니까?
"구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헤게모니를 가졌던 현대 이탈리아의 수정주의자들은 지배계급을 위해 노동계급과 대중을 기만하는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와 대중은 기권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닌 경우 오성운동과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당(FI)과 다른 우파 세력과 연정을 했던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특히 북부)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마테오 렌치의 민주당은 유럽 의회선거에서 41 %를 득표했지만 3 월 4 일 총선에서 득표율이 18 %로 떨어져 확실히 패배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의회 공화국이기 때문에 총선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성운동은 타정당 대비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득표율로 단일정당으로는 최고 득표율(32.7%)을 기록했으며 그 뒤를 민주당(18.7%)이, 세 번째는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당(17.4%)이 차지했습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현대 수정주의자의 계보를 잇고 있는 민주당은 뭇매를 맞고 혼란스러워하며 명확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오성운동에 수백만 표를 빼앗겼음에도 오성운동에 대한 지지를 꺼렸습니다. 그리고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총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사임하여 현재 민주당은 명확한 방향성도 없습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 지지하는 민주당은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를 막으려는 오성운동 정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중도우파 연합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탈리아 전통적인 정치체제도 무너지고 있고, 그렇기에  제 3 공화국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 [추가 인터뷰] 오성운동과 동맹당간의 연립정부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연립정부를 수립할 만큼 양당이 충분한 공통점이 있었습니까?
"양당 간의 공통점이 충분히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중적으로 조직된 대중을 중심으로 정부가 약속한 혁신을 일궈내고 가장 퇴행적인 것은 청산할 수 있도록 강제 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1948 년 이탈리아 헌법에서 문서에만 존재하고 이제까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나 나중에 제거되거나 무효화 되었던 것 중 진보적인 부분들을 실행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성운동의 활동가를 직접 인터뷰해서 송대한 편집장이 작성하고 국제전략센터의 번역팀(홍정희)이 번역한 글입니다. 한글/영문기사는 www.goisc.org에도 게시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유럽 #오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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