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왜 오토바이에 불을 질렀나

엄벌주의보다 보호처분의 다양화·내실화가 중요한 이유

등록 2018.09.03 21:26수정 2018.09.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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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소년> 의 한 장면 비행청소년의 상당수는 유년시절의 가정폭력과 학대, 부모의 이혼과 사망, 가정의 해체, 학교폭력의 피해로 인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 국가인권위원회


작년 이맘때, 대전소년원 7호(의료처우)에 재원 중이던 보호소년 민수(가명)는 소년원 강당에서 시행된 고졸 학력 검정고시에 응시했다. 소년원에서 검정고시를 보기까지, 민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민수의 비행명은 '특수폭행'과 '방화'였다. 민수는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법원으로부터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비행 원인을 진단받은 후, 교육과 상담, 분류심사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보호처분을 받았다. 즉, 정신과적 치료가 절실히 필요한 점을 고려하여 소년의료보호시설 위탁 처분을 받은 것이다.

민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으로 인한 어머니의 가출로 가정이 해체된 후 보육원에 맡겨졌다. 민수가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된 학교 급우들은 민수를 따돌렸고, 노는 친구들은 갈취를 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민수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중학교 2학년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우울증을 진단받고 2주 동안 약물치료 받았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중단한 후 이렇다 할 치료와 상담을 받지 못했다.

민수는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는 선배들과 어울렸다. 또래 관계와 술, 담배, 유흥업소 출입 등의 비행하위문화에 몰두하면서 결석 일수는 점점 늘어났다. 결국, 민수는 선배들이 빌려준 오토바이를 무면허로 운전하다 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갔고, 검찰에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특별교육을 받고 학교로 돌아온 민수는 후배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강제전학 징계를 받았다. 전학한 학교에서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낯선 환경과 주위의 편견 어린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즈음, 민수는 화물트럭을 운전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민수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식당 서빙, 택배 상하차, 치킨 배달 등을 전전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무릎에 철심을 박은 상태였지만, 더 이상 비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일했다. 최저시급과 주휴수당 등의 정당한 권리를 챙겨주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근로계약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민수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임금을 체불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고 소외받은 후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게 된 민수의 가슴속엔 '분노조절장애'라는 또 다른 내면의 상처가 자라고 있었다.

사건 당일, 일이 끝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민수는 술집에서 사소한 말다툼 끝에 옆자리의 성인들을 폭행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자취방으로 향하던 민수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전봇대 옆에 오토바이 한 대가 녹이 슨 채 버려져 있었다.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민수는 오토바이에 담뱃불을 던졌다. 민수의 방화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대한 좌절과 분노였다.


아이들에게 거듭날 기회를 주자

비행청소년의 상당수는 결손가정과 가정의 해체, 가정폭력, 학교의 무관심과 낙인으로 제대로 된 사회화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이다. 민수는 대전소년원에 입원한 후, 비로소 적절한 의료처우를 받을 수 있었다. 특수치료 전문가인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는 예술치료와 심리치료를 통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민수는 예술치료시간을 통해 가구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고, 디자인 관련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소년원 담임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고졸학력 검정고시를 열심히 준비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전소년원에서 퇴원한 민수는 아르바이트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해 전문대학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버려진 오토바이와 자신을 동일시한 민수가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적절한 보호처분을 한 결과, 민수는 캠퍼스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10대들의 범죄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할 때마다 응보주의와 사회방위를 위해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친다. 엄벌 위주의 형사정책이 범죄 예방에 미치는 효과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소년 범죄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근본적, 실질적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보호처분 집행의 다양화·내실화를 통해 보호소년을 교화하여 사회로 복귀시키는 형사정책은 소년범이 성인 범죄자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정신질환 성인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는 데 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 또한 절감할 수 있다.

한창 가정과 학교의 보호를 받으며 자존감과 꿈을 키워나가야 할 청소년기에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생존을 위한 환경에 내몰린 아이들을 의료·재활교육을 통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까? 보호처분을 통해 아이들에게 거듭날 기회를 주자. 불타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 않은가.
#소년법 #소년원 #청소년 범죄 #학교폭력 #비행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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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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