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있을 때 다시 오시겠습니까?

어느 사진관 주인의 마음 읽기

등록 2018.08.14 08:34수정 2018.08.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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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이야기이다. 꾸물대다가 출근 시간이 빠듯해졌다. 평소보다 더 속력을 내 차를 운전하고 바삐 달려갔다. 저만치 신호등이 보인다.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건너려고 서둘러 가는데 얄밉게도 신호등 불이 바뀌어 버렸다. 성가시다.


그냥 지나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끔 속력은 낼지언정 규칙은 지켜온 터인지라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서있는 내차 곁으로 아랑곳없이 쌩 지나쳐 가는 차들도 있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건만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다.

겨우 제시간에 출근하여 교무회의를 마쳤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동료 한 사람이 궁시렁대며 뒷담화를 한다. '회의중에 한 마디 하지 그랬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참고 자리로 돌아왔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옆자리 동료의 너스레도 오늘은 반갑지가 않다. 

배우는데 게으른 아이들이 못마땅하고 그런 아이들을 다독여서 가르치지 못하고 야단치며 채근하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난다. 점심시간에 볼 일이 있어서 잠시 들른 관공서 직원의 퉁명스런 태도에 울화통이 치민다.

그렇게 마음 불편한 하루가 저물고 퇴근하여 집에 왔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오니 평소에 내가 차를 세우던 곳에 다른 차가 서있다. 이름을 써붙여 놓은 건 아니지만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가끔 애를 먹는 경우가 있기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서니 맥이 탁 풀린다. 가방을 아무데나 던져놓고 한참 동안 널부러져 있었다. 기운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몹시 사납고 못생긴 여자가 서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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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동네사진관에 간 일이 있었다. ⓒ Pixabay


언젠가 증명사진이 필요해서 동네사진관에 간 일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주인이 나를 맞았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시 살폈다. 그러는 나를 힐끗 돌아보던 주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자신있을 때 다시 오시겠습니까?"

'자신있을 때라...' 나는 무심한 듯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주인을 쳐다보았다. 그이가 내마음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도 지났건만 마음 다스림이 부족한가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진을 찍고 나왔지만 요즘도 그이의 말이 가끔 기억날 때가 있다. 파란 하늘을, 천진난만한 아가의 눈빛을,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작은 들꽃을 좀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얼마전, 한순간 평정심을 잃고 오로지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자신의 손으로 둘도 없는 30년 지기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든 사람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이는 결국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늘 함께 하던 친구를 잃고 앞으로 지옥과 같은 세월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정녕 안타까운 일이다. 마음 다스리기. 사람들과 어우러져 세상을 살아갈 우리가 진심을 다해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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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일렁일 때면 섬진강을 찾는다. 물결마저 품에 안고 그림처럼 잔잔 하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노라면 일렁이던 마음도 시나브로 가라앉는다. ⓒ 김숙귀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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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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