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가 '죄스럽다'던 그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십년 뒤에 겨우 평가 받는 아내들의 독립운동... 이혜련·정현숙·이은숙·허은을 기억하며

등록 2018.08.15 14:39수정 2018.08.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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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혜련! 나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혜련, 나를 얼마나 기다립니까? 나는 당신을 보고 싶은 생각이 더욱 더욱 간절하옵니다. 내 얼굴에 주름은 조금씩 늘고 머리에 흰털은 날로 더 많아 집니다. (중략)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 보다 설움이 많았는가 합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이 중국 상해에서 미국에 남아있는 아내 이혜련(1884-1969) 지사에게 보낸 편지글 가운데 일부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찾은 LA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미 연방우정국 소속 '도산 안창호 우체국(3751 W. 6th St. LA)'에서 기자는 문득 남편 안창호 선생이 아내 이혜련 지사에게 보냈던 위 편지글이 떠올랐다(현재 '도산 안창호 우체국'은 한인들의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2004년 6월 연방하원의원 다이안 왓슨이 도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곳이다.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재건축 예정이라 이곳은 곧 코리아타운 내 다른 장소로 이전될 것이지만, 도산 선생 이름을 딴 우체국 이름은 그대로 따를 예정이다 -기자주).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이혜련 지사

안창호 우체국 LA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 내부, ⓒ 이윤옥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하면 대한제국기의 교육개혁운동가,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아내 이혜련 지사(2008. 애족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이혜련 지사는 정신여학교를 나온 지식인으로 18살 되던 해인 1902년 9월 3일 도산과 혼인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36년간 결혼 생활 중 남편과 함께 지낸 시간은 13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이들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남편 안창호 선생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아내 이혜련 지사는 5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며 미국에서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뛰었다.

안창호 가족 도산 안창호 선생, 아내 이혜련 지사와 4자녀, 막내아들 안필영(미국이름은 랄프 안)은 유복자로 태어나 이 사진에는 없다. ⓒ 이윤옥


안필영 8월 11일, LA 가든스윗호텔에서 열린 73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93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인 도산 선생의 막내 아드님 안필영(미국이름 랄프 안)선생과 양인선 기자, 필자 ⓒ 이윤옥


LA에 거주하던 이혜련 지사는 부인친애회를 조직하여 독립의연금 모금에 솔선수범하였으며 북미주의 4개 지방 부인단체들이 연합하여 대한여자애국단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활약했다. 이혜련 지사는 대한여자애국단을 중심으로 국민의무금, 21례, 국민회보조금, 특별의연 등의 모금을 주도했고, 미국적십자사 LA 지부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한편, 독립운동가 오광선(1962. 독립장) 장군의 아내 정현숙(1995. 애족장) 지사도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이다. 정현숙 지사는 1935년까지 만주 길림 일대에서 독립군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 업무를 맡았으며, 1935년 이후는 중국 남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일을 돕고, 1941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여 활약했다. 또한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뛰었다.

남편 오광선 장군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와 1930년에 결성된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 등으로 활약했으며,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서 지청천, 이범석 장군 등과 함께 교관으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광선, 정현숙 부부 독립운동가는 오랜 시간 서로 떨어져 지내며 각각의 자리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오광선과 정현숙 부부독립운동가 오광선 장군과 정현숙 지사 ⓒ 이윤옥


문제는 도산 선생의 아내 이혜련 지사처럼 오광선 장군 아내 정현숙 지사 역시 홀몸으로 자녀 양육을 모두 떠안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으로 집을 떠난 남편을 대신하여 홀로 아이들을 기르며 본인 자신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 지난한 세월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정현숙 지사가 남편과 떨어져서 갖은 고초를 당한 이야기는 정정화 (1990. 애족장) 지사의 <장강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토교에서 정씨(정현숙 지사)는 홀로 삼 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 날이 없었고 백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중략) 영걸 어머니(정현숙 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영걸 어머니에게 정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 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 어머니는 만주에서 농사 경험도 있고 몸도 건강해서 내 밭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나는 그 대신 그 집 삼 남매의 옷가지 손질이며 이부자리 등 주로 바느질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들의 독립운동은 늘 남성의 그늘에 치여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혜련 지사의 경우도 남편인 안창호 선생이 1962년에 대한민국장을 받은 데 견주어 46년이 지난 뒤인 2008년에서야 애족장을 추서 받는 데 그쳤다.

뿐만 아니라 정현숙 지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남편인 오광선 장군이 1962년에 독립장을 받은 데 견주어 아내인 정현숙 지사는 33년이 지난 뒤인 1995년에서야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그것도 살아생전에 서훈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동안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뛰고도 그 공로를 인정 못 받은 수많은 여성들이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부(孫婦)이자 이병화 지사의 아내인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1907-1997) 지사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숙 (1889-1979) 지사 등은 그동안 외면당하다가 이제 이번 광복절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는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공을 인정받아 기쁜 마음이다.

허은과 이은숙 남편들이 서훈을 받은 뒤 수십년이 지난 뒤 겨우 올해 8.15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는 허은 지사(왼쪽)와 이은숙 지사 ⓒ 이윤옥


이번에 서훈을 받는 허은 지사는 8살 때인 1915년 가족들과 서간도로 망명했으며, 허은 지사 집은 서로군정서의 회의 장소로 쓸만큼 만주독립운동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허은 지사를 비롯한 이 집의 여성들은 독립운동가들의 숙식은 도맡은 것은 물론이고 겨울이면 솜을 두툼하게 넣은 군복을 만들어 주는 일들을 하느라 평생 집밖을 나가 보지 못할 정도로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다. 허은 지사는 남편 이병화 지사가 1990년 독립장을 받은 뒤 28년 만인 올해 8.15광복절에 독립유공자(애족장)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은숙 (1889- 1979) 지사의 경우는 남편 이회영 선생이 1962년 독립장을 받은 뒤 무려 56년이 지난 뒤에서야 독립유공자(애족장)로 인정받는 것이니 그동안 우리 겨레가 이분들에 대한 예우를 얼마나 소홀히 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이은숙 지사는 남편 이회영 선생과 6형제가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건설하는 등 독립운동에 전력을 기울일 때 함께 일했으며 <서간도 시종기>를 써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국난의 시기를 이겨냈는가를 상세히 알리고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유독 박한 국가의 '인정'

안창호 동상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동상, 얼굴 모습 ⓒ 이윤옥


안창호 2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옆면, 뒷짐지고 책을 든 모습. ⓒ 이윤옥


기자는 미주지역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7일부터 18일까지 미국 LA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어제 12일(현지시각) 오후 2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 공원에 세워져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을 보고 왔다. LA에서 고속도로를 1시간여 달려야 갈 수 있는 리버사이드를 찾은 것은 단순한 도산 선생의 동상을 보러 갔다기보다는 아내 이혜련 지사와 함께 리버사이드에서의 삶의 흔적을 더듬기 위함이었다.

안창호, 이혜련 지사가 리버사이드에 머물 때는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주고 받는 돈으로 살아가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맏아들 필립이 태어났지만 가난한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아내에게 치마 하나, 저고리 한 감 사 준 일이 없었고, 필립에게도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못 사주었다. 그러한 성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랬는데, 여간 죄스럽지 않다"고 고백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올곧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애오라지 아내 이혜련 지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리버사이드에 있는 안창호 선생 동상은 '나홀로 모습'이었다. 뒷짐 진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을 뿐이다. 십시일반으로 동포들이 세운 동상이지만 아내 이혜련 지사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세워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나아가 코리아타운에 있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 역시 '안창호·이혜련 우체국'이었으면 더 좋았을 법하다.

도산 선생의 아내인 이혜련 지사, 오광선 장군의 아내인 정현숙 지사,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 이은숙 지사, 이병화 선생의 아내인 허은 지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아내들은 늘 이렇게 어디에고 드러나 있지 않다. 아니 드러내 주지 않았다.

안중근 3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시 시청 앞에 있는 도산 안창호 동상 앞에서 필자 ⓒ 이윤옥


훈장을 주는 것도 남편들보다 항상 몇십 년 뒤에 주고, 기록 또한 남편들 보다 적게 해 왔다. 연구 논문 수도 남편들보다 적고 이들을 기리는 일에도 소홀하다. 광복 73주년을 앞두고 LA와 리버사이드의 도산 안창호 선생 유적을 둘러보면서 기자는 당당했던 독립운동가 이혜련 지사도 남편 안창호 못지않게 기억되길 새삼 빌었다.

그리고 올해부터라도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딱지를 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아직 그러기에는 이르다. 2018년 8월 15일 현재, 남성 서훈자가 1만 4879명인데 견주어 여성 서훈자는 고작 324명밖에 안 되는 탓도 있지만 우리가 여성 서훈자 324명 가운데 유관순 열사 외에는 단 1명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딱지를 달아야 할 것 같다. 더 기억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창호 #이혜련 #여성독립운동가 #정현숙 #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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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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