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표창 후보 거부한 작가 "노동자 외면하는데 어찌..."

[인터뷰] 만해문학상 수상 작가인 이인휘 소설가 "현 정부, 초심 회복해야"

등록 2018.08.17 11:09수정 2018.08.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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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휘 소설가 ⓒ 조호진


2016년 제31회 만해문학상 수상 작가인 이인휘(60) 소설가가 대한민국문화예술인상(대통령표창) 문학 부문 후보에 오르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인휘 작가가 후보 추천을 거부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은 정부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운 이들을 위해1969년 제정한 상이다. 문화일반, 문학, 미술(공예·디자인, 건축), 음악(국악), 연극·무용 등 5개 부문에서 시상하며 수상자에게는 대통령 표창과 1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이인휘 작가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원직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폭염의 아스팔트 위를 오체투지로 기고 굴뚝 위에서 장시간 농성하면서 생명이 타들어가고 있다"면서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외면한 채 재벌과 손을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표창 후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후보 추천 거부 이유를 밝혔다.

소설가 이인휘는 <우리 억센 주먹으로>으로 등단, 장편소설 <활화산>(1990)과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199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된 장편소설 <내 생의 적들>(2004)과 <날개달린 물고기>(2005)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 아픈 아내를 돌보며 공장생활로 생계를 잇느라 절필 상태였던 이인휘 작가는 2016년 <폐허를 보다>(실천문학사)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7년 <건너 간다>(창작과비평사)를 펴내며 창작에 혼신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노조 건설 과정에서 분신자살한 양봉수 열사와 현대자동차 노조의 노동 운동사를 소설로 재구성한 <노동자의 이름으로>(삶창)이란 장편 소설집을 펴내면서 노동계와 문학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인휘 작가는 대통령표창 후보를 왜 거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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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서울에서 열린 <노동자의 이름으로> 출간기념 북콘서트. ⓒ 이인휘


이인휘 작가는 소설가이자 노동문화운동가다. 1998년 노동자 중심의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삶창)을 만들었으며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맡으면서 문학을 통한 사회 참여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이자 (사)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 이사와 해고자 쉼터 '그린비네' 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이 작가는 8년 전 남한강이 아름답게 흐르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관덕 마을로 이사해 아픈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이 작가와의 인터뷰는 16일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진행했다.

-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학 부문 후보 추천은 언제 어떻게 진행됐나.
"20일 전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학 부문 대통령표창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연락이었다. '대통령표창'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멍울처럼 맺혀 있는 풍경과 얼굴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의 머리숱처럼 어지럽게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 한국작가회의 추천이면 대통령표창 수상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 왜 거부했나.
"해고된 노동자들이 원직복직을 위해 폭염의 아스팔트 위를 오체투지로 기고, 굴뚝 위의 농성 노동자들의 생명이 타들어가고 있다.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과 박준호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상 최고의 폭염 속에서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농성 중이다. 오늘(16일)로서 280일째 굴뚝 농성을 하면서 노조와 약속한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2009년 쌍용차 해고사태 이후 서른 번째 희생자인 김주중은 9년 동안 원직복직을 요구하다 지난 6월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9년 동안 간절하고 처절하게 외쳤는데도 쌍용차 자본가와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김주중은 자살한 게 아니다. 반인간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자본과 사회에 의해 타살된 것이다.

김주중의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에 찾아갔는데 쌍용차 상주인 김득중이 눈물을 흘렸다. 그냥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미칠 것 같았다.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무능하게 지켜보면서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만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통령표창 후보 추천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재벌과 손을 잡는 경제 살리기, 이건 아닙니다"


- 현 시국에 대한 분노가 큰 것 같다.
"아픈 아내를 뒤로 하고 시골 버스와 전철을 타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해 촛불 시민들과 함께 재벌해체를 애타게 외쳤다. 정경유착으로 노동자와 서민을 착취한 재벌들을 해체시키고 노동자와 서민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친 힘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됐다. 그런데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해체 대상이자 처벌 대상인 재벌들과 손을 잡으면서 노동자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이 없어질 거라면서 공기업부터 정규직화했지만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신음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통을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가. 노동자의 고통과 서민들의 아픔을 외면한 문재인 정권이 주는 대통령상 추천을 거부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여당, 즉 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불신도 터져나오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들과 서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산다. 호떡공장에서 일한 내가 그 노동자고 서민이다. 우리들은 쌈짓돈을 챙길 돈이 없다. 그런데 여당은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라는 여론을 무시한 채 계속 꼼수를 쓰면서 쌈짓돈을 챙기려 하고 있다. 노동자와 국민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성과 양심을 저버린 정치꾼들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이런 정당과 정치인은 더 이상 촛불 동지도, 노동자와 서민의 편도 아니다. 작가의 양심으로 호소한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을 들었던 초심을 회복하고 노동자와 서민 곁으로 돌아오라."

"노동자와 서민도 함께 사는 길로 갑시다"

- 문재인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힘들고 지치면 더 힘을 모으고 위로하면서 노동자와 서민도 함께 사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이 만든 정권이다. 작가의 양심으로 거듭 호소한다. 국민과 함께 힘들지만 반드시 성취해야 할 정의로운 길을 함께 가자. 그래야 촛불 정권이 완성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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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소설가 이인휘에게 부상 1천만 원은 천금 같은 돈이다. ⓒ 조호진


가난한 작가에게 부상 1천만 원이란?

이인휘 작가는 가난한 작가다. 아내 치료비 때문에 진 빚이 아직도 적지 않게 남았다. 대통령표창 수상자에게는 부상으로 1천만 원이 주어진다. 그에게 1천만 원은 천금 같은 돈이다. 그에겐 대통령 표창보다 상금 1천만 원이 더 소중하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을 돈에 넘길 수 없는 그는 대통령 표창 때문에 심사가 괴롭다.

그는 현대자동차 '서용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아 <노동자의 이름>을 펴냈다. 그래서 이 책의 인세 전액을 이 사업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지난달 18일 서울에서 열린 <노동자의 이름으로> 출간기념 북콘서트 수익금(320만 원)은 암 투병 중인 민중가수 황현의 치료비로 전달했다.

한편, 이인휘 작가는 17일 부산 헤세이티 카페에서 <노동자의 이름으로> 출간기념 북콘서트를 연다. 오는 10월 17일 대구에서는 가수 정태춘과 함께 하는 북콘서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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