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가신' 박노정 시인, 재 뿌린 곳에 시비 세워"

고 박노정 시인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식... 김장하 이사장 등 지인들 참석

등록 2018.08.19 20:18수정 2018.08.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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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열린 '시비' 제막 행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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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 행사가 열렸다. ⓒ 윤성효


"최고만이 미덕인 세상에서 / 떠돌이 백수건달로 / 세상은 견뎌 볼만하다고 / 그럭저럭 살아 볼 만하다고 / 성공만이 미덕인 세상에서 / 끝도 시작도 없이 / 가랑잎처럼 정처없이 / 다만 가물거리는 것들과 함께."

지난 7월 4일 타계한 박노정 시인이 쓴 시 <자화상> 전문이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잠들어 있는 박 시인의 '수목장' 앞에 이 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졌다.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등 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19일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시비는 솔뫼 천갑녕 서예가가 쓴 작품을 돌에 새겼다.

이날 행사는 다함께 모여 시비를 덮고 있던 천을 거둬낸 뒤, '헌다'와 '추도사'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진남 시인이 고인의 시 <자화상>을 낭송했다.

김장하 이사장은 "박 선생님은 기어이 가셨습니다. 평생을 청빈으로 사신 모습 그대로 무덤도 남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박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삶의 흔적이나마 남기려고 마지막 재를 뿌린 자리에 돌덩이 하나를 갖다 놓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 돌덩이마저도 삶의 궤적에 비춰보면 이 또한 호사가 아닐는지요. 박 선생님답게 아름답게 살다 가신 삶의 여백에 오히려 덧칠이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인사했다.

천갑녕 서예가는 "어쩌다가 박 선생의 시를 서예로 쓰게 되었다. 고인과는 30여 년 인연이 있다. 이전에 옛 <진주신문> 제호를 썼던 인연도 있다. 고인께서 여러 사회 활동을 했던 것에 비하면 이 빗돌이 허전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 의미를 새기게 되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회고했다.


홍창신(칼럼니스트)씨는 "입고리를 올리며 웃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아련거린다. 사람을 되게 좋아했던 박 선생님이다. 고인과 구석구석 다니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고인을 보내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시비를 세우게 되어 한결 마음이 놓인다"라고 했다.

고인이 친구 이동근(진주)씨는 "늘 남을 위해 살았던 친구다. 어쩌다가 보니 시인이 되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조종명 시인, 박종현 시인, 여태전 남해상주중학교 교장, 박구경 시인, 오유균 시인(울산)과 진주가을문예 운영위원인 김륭·유영금 시인과 박태갑 소설가, 하정우 민중당 진주지역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진주에서 태어났던 박노정 시인은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간 '시민주'로 만들어졌던 옛 <진주신문> 편집·발행인을 지냈다.

고인은 시집 <바람도 한참은 바람난 바람이 되어> <늪이고 노래며 사랑이던> <눈물공양> <운주사>를 펴냈고,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장과 진주문협 회장, 경남문학관 관장 등을 지냈다.

또 고인은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있던 2005년 5월, 진주성 촉석루 의기사에 걸려 있었던 친일화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을 강제로 뜯어냈고, 이로 인해 다른 시민단체 대표 3명과 함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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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열린 '시비' 제막 행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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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 행사에서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술을 따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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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 행사에서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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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 행사가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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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산에 있는 고 박노정 시인의 '수목장'에서 '시비' 제막 행사가 열렸다. ⓒ 윤성효


#박노정 시인 #자화상 #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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