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갑질'엔 손놓고, 탁상머리 정책... 자영업자는 '열 받는다'

[서민의 정치 뜯어보기] 현실감 없는 소상공인 지원책... 서민들은 불신만 커집니다

등록 2018.08.22 10:43수정 2018.08.2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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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는 '서민'의 목소리를 정말 잘 반영하고 있을까요? 한때 회사원이었고, 가맹사업장의 사장을 거쳐 지금은 시급제 노동자가 된 필자의 눈으로 한국 정치를 뜯어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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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자영업자-소상공인 세무조사 유예 한승희 국세청장이 16일 오후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 세정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국세청은 소비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내년 말까지 이들에 대한 세무검증 작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 연합뉴스


8월 16일 늦은 밤, 무심코 켜 놨던 뉴스 채널에서 중소자영업자들의 경영난에 대한 대책으로 '2019년까지 세무조사를 한시 유예'한다는 국세청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볼일을 보며 티브이 뉴스 소리를 귓전에 흘리고 있었던 필자는 조건 반사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발표 내용에 집중했다.

"세무검증에 대한 부담 없이 사업에만 전념하도록 지원함으로써, 경제하려는 의지를 북돋우고 국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국세청장의 발표가 끝난 후 필자는 "그러면 세금을 탈루해서 경영난을 이겨 내라는 거야? 탁상머리 관료들은 왜 항상 이 모양이지..."라며 혀를 찼고 마침 옆에 있던 아내는 "항상 그랬잖아, 새삼스럽지도 않은 걸 가지고"라며 시큰둥하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필자가 이 기사를 쓰며 국세청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가만히 곱씹어보니 발표문 중 '경제하려는 의지'라는 묘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경제하다'라는 뜻을 검색해보니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다'이다. 그러나 발표문을 이런 뜻으로 사용했을 리 만무하니 아마 두 번째 뜻, '돈이나 시간, 노력을 적게 들이다'로 사용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만약 이러한 뜻으로 사용했다면 이번 지원 대책은 자영업자들이 평소 세금을 아끼는 데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경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의지를 불태워 달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런데 국세청장의 발표문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국세청장의 발표문은 의도된 중의적 문장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석되길 바랐던 걸까?

'세금 탈루'라는 주홍글씨만 짙어지는 정책

사실 이번 지원 대책은 그 뜻이 이렇든 저렇든 자영업자들에게는 시쳇말로 '열 받는' 지원책일 뿐이다. 요즘 오백 원짜리 상품에도 사용되는 신용카드 덕분에 정부의 의도대로 자영업시장의 거래가 굉장히 투명하게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자영업자들에게 '세금'에서 만큼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주홍글씨가 여전한 상황이다.


결국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유보'는 세인들에게 '세금 탈루'라는 단어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음을 뻔히 알면서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더욱이 세금 경감과 같은 실질적 지원책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실효성 없는 안이다. 이 뉴스를 보았던 대부분의 자영업자들, 특히 '세무조사'란 다른 나라 이야기로 알고 지내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은 정말 허탈한 실소를 내보였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문득 몇 달 전 있었던 '다산 신도시 택배 대란'이 떠올랐다.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입주민들이 단지 내 안전한 보행권을 확보하고자 지하주차장으로 택배 차량이 드나들길 요구했지만, 택배기사들은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택배 차량보다 낮아 진입할 수 없었다.

사실 같은 분쟁이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신도시 입주 때마다 통과 의례처럼 있었지만, 이 사건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까지 오르며 기사화된 것은 어느 날 해당 아파트에 게시된 한 장의 고압적인 공고문이 올라오며 '갑질' 논란을 빚었기 때문이다. 결국 여론을 진정시키고자 급히 국토교통부가 개입하여 실버 택배를 대책으로 제시했지만 특정 아파트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가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무산됐다.

이번 자영업자를 위한 '세무조사 유예' 대책이나 당시 다산신도시의 택배 사태에 대한 '실버 택배' 대책에는 한 가지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바로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 행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날 국세청 지원 대책에 세무조사 유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혁신성장 세정지원단' 설치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등의 성장 단계별 맞춤형 세정지원, '민생지원 소통추진단' 신설로 자영업자의 세무불편·고충 청취 및 해결방안을 강구, 사업 재기를 위한 세정지원으로 폐업한 사업자의 사업재개나 취업 시 체납액 3000만 원까지 납부의무를 면제하는 '체납액 소멸제도'의 적극 홍보, 영세자영업자의 체납처분 유예, 경영난에 처한 자영업자 등에게 납부기한 연장 및 징수유예 등도 내용에 포함됐다.

또 근로·자녀장려금, 일자리안정자금, 부가가치세 환급금 조기 지급 등 원활한 자금융통을 위한 지원안도 있다. 어떻게 보면 국세청 자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지원책은 모두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조차도 '방안강구, 홍보, 유예' 등 모호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단기적 처방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갑질' 손놓는 정부, 급조된 정책... 이래선 안 된다

요즘 미중 간 무역 갈등과 유가의 급등 등 국내외 경기가 악화되면서 민생, 특히 서민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절실한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는 모든 국민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이해득실이 충돌하는 이 나라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자영업자는 가장 밀접한 동반자이면서도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밖에 없는 특수한 관계이기에 양측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대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은 그 정책의 정당성 또는 '부의 공정한 분배'라는 시대적 소명을 떠나 현재 저 매출에 울고 싶은 중소자영업자 뺨을 때린 격인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소자영업자들에 쏠린 최저임금의 부담을 기업과 자본가에게 분담시키고 공정거래를 뿌리내리고자 개정 발의된 민생법안들은 보수정당의 당리당략에 의해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런 현실 속에 정부의 관련 부처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자 이제 다시 한번 국세청의 발표문을 들여다보자, 엘리트 관료들이 만든 것인 만큼 발표문 중 '경제하려는 의지'의 문구는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경제 주체들의 '경제하려는 의지 (the will to economize)'이다"라는 주장에서 인용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러므로 그 뜻은 사실 상기에 필자의 냉소적 해석이 아닌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 즉 경제시장에서 활동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로 표현한 것이 맞을 것이다. 한 마디로 세금에 대해 조금 느슨하게 해줄 테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사업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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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위 조직 쇄신방안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국세청장의 지원책 발표 며칠 후인 2018년 8월 18일, 모 일간지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연봉 2억 6000만 원, 차량 제공, 차량 유지비 지원, 자가운전 보조비, 매달 400만 원씩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 2016년 6월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구속기소) 등이 국내 대기업을 압박해 1년 뒤 고문으로 취업시킨 한 공정위 퇴직 간부의 연봉과 취업 조건이다.'

참으로 분노를 넘어 허탈한 기사였다. 필자는 가맹점주였던 2015년에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행위를 공정위에 신고했지만 공정위로부터 나온 결과는 모두 '무혐의'였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간 분쟁이 정점을 향해가던 2016년,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과 가맹점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가맹점주들은 공정위원장에게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 달라"고 했다. 돌아온 것은 "현재 공정위에 가맹사업 담당자는 8명인데 브랜드는 3000개에 달해 일손이 너무 부족하다"라는 답변이었다.

이에 필자는 "그렇다면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만들 수 있도록 공정위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면 현재 공정위에 올라간 신고건 중 상당수는 현장에서 자체 정화될 것이다"라고 제안했지만, 당시 위원장은 거절했다.

1894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영국의 여성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기록한 구한말 관료들의 모습은 이러했다고 한다.

"관아에 몰려 있는 문필가들, 부정한 관리들, 늘 일손에 달리는 척 가장하는 전령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란 여행가가 이 나라를 다녀간 지 124년이 지났지만 정치인과 관료들의 모습은 딱히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전직 대통령들까지 부정부패로 투옥되었으니 말이다. 비록 앞서 필자가 거론한 상황이 2년 전 '가맹사업자'에게 국한된 특정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 나라에서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과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보여 줬던 태도가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하려는 의지'를 말한다는 건 참으로 겸연쩍은 일이 아닐까?

소시민에 불과한 필자의 이 글이 오늘도 피로와 싸워가며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시장에서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진짜' 목숨 내놓고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모습을 십수년 동안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필자로서는 당장의 문제만 덮기 위해 급조된 이런 대책은 이제는 그만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거론했던 '아서 루이스'는 과거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가난한 나라를 부자로 만드는' 개발경제학에 대한 연구로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은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제발전은 양적 성장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좋지만 불확실한 변화보다는 나쁘지만 잘 아는 현상유지가 더 낫다'에 길들여진 이 나라의 모든 정치인, 관료, 기업인, 자본가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민 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세무조사 #자영업 #최저임금 #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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