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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트럭에 수류탄 실어서..." 직접 보니 더 섬뜩한 계엄문건

[하성태의 사이드뷰] 21일 < PD수첩 > '군부쿠데타 2부' 방송... '전두환 단죄' 끝나지 않았다

18.08.21 17:05최종업데이트18.08.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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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권익연구소·민주평화재향군인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이 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에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작전명령(87-4호) 관련 전두환·박희도·이문석 내란미수죄 고발장'을 제출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고발장을 제출하기에 앞서 고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소중한


"작전명령 문건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직면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정권을 연장할 목적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중심으로 한 친위쿠데타를 계획했고 이를 유사시 실행하기 위해 사전에 명령을 내려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배하는 위헌적 행위이며 주권자인 국민의 정당한 정치적 요구를 군을 동원해 실질적으로 진압하려 했다는 점에서 내란죄의 미수에 해당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또' 고발을 당했다. 이번엔 '내란미수죄' 혐의다. 지난 20일 국방권익연구소·민주평화재향군인회·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은 1987년 당시 전두환 군부의 소요진압 작전명령(87-4호)과 관련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피고발인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 박희도 육군참모총장, 이문석 작전참모부장이다(관련 기사 : 육해공 예비역, '6월항쟁 진압 문건' 전두환 고발).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으로 구성됐다는 이들 단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발인들이 1987년 당시 "사실상 계엄 상황을 상정한 시민 진압 작전을 하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1995년 12월 제정·시행된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을 근거로 내란죄에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아 아직 처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가 겨냥하는 곳의 중심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었다. 이들은 "문건 작성을 주도한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이문석은 작전을 처음 지시한 인물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발과 주장은 지난 14일 방송된 MBC < PD수첩 >(아래 피디수첩) '군부쿠데타 1부'의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피디수첩> '군부쿠데타 1부'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전두환이 장악한 육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장에 나선 국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된 계엄작전 명령 문건 '작전명령 제87-4호'를 공개했다.

해당 문건을 보관하고 있던 민병돈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은 취재 중이던 제작진에게 문건을 직접 보여줬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을 탔다. 1987년 6월 19일 육군본부에서 작성한 문건을 확인한 전직 군 관계자들은 이 문건이 최근 공개된 군 기무사 계엄 문건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피디수첩>은 21일 '군부쿠데타 2부'를 방송한다.

내란미수죄 고발한 시민단체, 문건 폭로한 <피디수첩>

14일 방송된 MBC '군부 쿠데타' 1부의 한 장면. ⓒ MBC


"지난주 PD수첩은 1987년 6.10 민주화운동을 짓밟기 위해 전두환 정권이 준비했던 계엄 작전명령 제87-4호를 공개했습니다. 파장이 큽니다. 오늘 군 관련 시민단체들이 전두환 전대통령을 내란미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을 동원하고도 최종적으로 계엄을 실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를 다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또 한동안 잠잠하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해 2017년 기무사 계엄계획을 작성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피디수첩> 정재홍 작가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묻고 또 물었다. 정 작가는 지난 14일 방송된 '군부 쿠데타' 1편에 이어 21일 방송되는 2편의 각본을 직접 집필한 인물이다. 그는 "PD수첩이 1987, 2017 두 건의 계엄문건의 비밀을 밝힙니다"라고도 했다. 앞서 <피디수첩>은 1부 말미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살아 숨쉬는 '정치군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거 (계엄문건) 관련된 사람들 있잖아요. 다시 재판받아야 돼요." (김영수 전 국방 권익위원회 조사관)
"사실상 내란음모거든요." (김광진 전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군에 정치 바이러스가 있다는 거예요." (김상호 전 육군 군사법원 판사)

2부 예고편에 담긴 전현직 군 관계자와 전직 국회의원 등의 의견은 이랬다. 시민단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고발하고, 또 내란죄와 관련된 공소시효까지 조사한 연원은 최근 입수된 문건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했을 터다.

또 <피디수첩>은 1부가 방송된 뒤 "PD수첩에서는 1987년이나 2017년, 계엄 관련해 군 부대에서 출동 대기했던 장병과 군 관계자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라고 안내했다. 따라서 2부에서는 이들 제보자들의 증언 역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 보니 더 섬뜩한' 1987년 계엄 문건

<피디수첩> 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보로 들어온 내용 중 일부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87년 6월, 일선 병사들이 완전군장 상태에서 착검을 하고, 시위진압을 위한 충정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군화도 벗지 못한 채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던 그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며칠간 지루한 훈련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들의 기억을 종합하면, 1987년 6월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가까웠다. 이런 기억은 또 어떠한가. 

당시 '경희대 정문 배치'라는 구체적인 작계지역이 정해졌던 어느 부대원은 대검 훈련이 무서웠다고 했다. 포천에서 복무 중이던 특전사 부대원은 경남 마산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연병장을 가득 메운 군용트럭들에 실탄 박스와 수류탄을 실었다는 제보자도 있었다. 몇몇 제보자들은 착검까지 한 충정훈련을 하면서 광주의 참상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근간이 바로 계엄 작전명령 제87-4호로 추정된다. 지난 방송에서 이 문건을 본 표명렬 전 육군 정훈감은 "<살인의 추억>이라는 그 전의 영화가 있잖아요. '학살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 DNA 속에"라며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건 중 '세부작전 지침'은 더 충격적이었다. 세부작전 지침에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듯한 내용과 함께 탄약 휴대는 물론, 발포 명령까지 적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14일 방송된 MBC '군부 쿠데타' 1부의 한 장면. ⓒ MBC


지난 16일 <피디수첩> 제작진은 이 문건을 대중에 공개했다. 한학수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빨리 보고싶다는 요청이 빗발쳐서요"라며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이렇게 전문을 올립니다"며 문건을 찍은 사진 파일을 게시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가) 탄약휴대 : 대침투 작전 휴대 탄약 기준 적용
(나) 식량휴대 : 비상식량 3일분 휴대
(다) 군은 중요시설 점령 경계를 원칙으로 하고, 시가지 작전은 경찰 병력을 최대 활용
(라) 가스탄 발사 등 폭도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킨 후 진압봉 사용
(마) 투입시 경계 대책 강구
(바) 고립 및 분리시 대책 수립
(사) 발포 명령은 선 육본 건의 후, 승인 하 조치
(아) 총기 유기 및 00 방지 대책 강구
(자)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차) 철저한 진압 및 도주 시 추적 강조
(카) 관계기관, 특히 경찰과의 유기적인 협조
(타) 부대이동 간 작전 명령 변동사항에 유의
(파) 진압 작전의 정당성 입증 자료를 확보(사진, VTR 등)
(하) 작전 중지 시 즉각 복귀계획 수립
(거) 기간 중 능력 범위 내에서 대민 선무활동 실시
(너) 공공시설 사용 시 파손 및 오염 방지

문건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시민을 향한 군의 발포가 육군본부의 승인에 따라 즉시 이뤄질 수도 있었다. 세부 내용 중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철저한 진압 및 도주 시 추적 강조"라고 적은 부분에서는 대한민국의 군이 시민들을 상대로 한 작전 계획이라는 사실을 직접 보고도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단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광주 상황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린 정황이 미국 문서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이 미국 정부에서 입수해 광주시에 기증한 5.18 관련 문서 3천 5백여 쪽을 분석한 결과,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에서 시위대가 인민재판을 하고 있고, 폭도 2천 명이 무장투쟁을 위해 산으로 도주했다는 등 거짓 정보를 미국에 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5.18 기록관은 "당시 미국 정부 역시 전두환 신군부의 정보가 과장된 거짓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책임론을 피할 순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 중)

시민단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내란미수죄로 검찰에 고발했던 20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뉴스는 또 있었다. 이날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5.18 당시에 관한 미 정부 문서의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이 문서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과 학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미국을 속인 정황이 담겨 있었다. 전두환이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하한 혐의로 민·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문서 내용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는 바다.

14일 방송된 MBC '군부쿠데타1' 의 한 장면. ⓒ MBC


이런 가운데, '피의자 전두환'은 다시 법정에 서야 한다. 회고록 내용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이 오는 27일 전남 광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군인 전두환'과 관련된 폭로는 2018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중이다. 5.18 광주 이후 또다시 계엄을 획책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전명령 제87-4호'의 재조명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사법적 단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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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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