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동강의 민낯, 폭염이라도 보고야 맙니다

[필름사진 여행기] 동강의 폐부 깊숙이 걸어가다

등록 2018.09.01 12:19수정 2018.09.0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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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사진마다 필름의 규격과 종류를 괄호 내에 표기하였습니다. - 기자 말

동강 경치의 백미, 어라연 


해마다 두 번 동강을 찾는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뼝대를 휘돌아 힘차게 흐르는 강물의 모습은 항상 가슴을 벅차게 한다. 동시에 모성애같은 짠한 마음이 명치 한 켠에 자리하기도 한다. 청정하고 건강한 모습을 언제라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역설적이기도 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오히려 어머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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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흐르는 동강 (6*7중형/Ektar100) 골짜기 사이를 힘차게 흐르고 있는 동강의 모습 ⓒ 안사을


7월 20일 전주를 출발하여 영월로 향했다. 9박10일 여정의 시작이었다. 첫날 밤은 별과 일출 촬영을 위해 영월 읍내에서 한 시간이 채 안걸리는 평창 청옥산(일명 육백마지기들)에서 보냈고 둘째날은 동강의 물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곳에 위치한 야영장에서 묵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영월 읍내였다.

어느 곳을 가든지 항상 시장에 들른다. 대형마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 지역의 특색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에서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리모델링 등의 지원을 하여 편의적인 측면에서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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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서부시장 (35mm/Portra400)깔끔하게 정비된 시장의 모습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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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둑국수? (35mm/Portra400)꼴둑국수가 어떤 음식일지 참 궁금했다. 강원도 특색요리일 터.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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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시장 내부 (35mm/Portra400)점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도 좋은 관광이 될 것 같다. ⓒ 안사을


육백마지기들에서 저녁으로 먹을 닭강정을 주문한 뒤 대기 시간 동안 시장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장날이 아니어서 한산했지만 상설 점포들은 꾸준히 운영중이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모습은 아래의 사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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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팔아유 (35mm/Portra400) 광고료 0원의 어느 판매글. 시골의 여유와 해학이 묻어있다. ⓒ 안사을


평창군 청옥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영월을 찾았다. 어라연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여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레프팅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것이 가장 확실히 동강을 겪어보는 방법이겠지만 취재를 위해 동강의 곁을 천천히 걷는 방법을 택했다.

영월 읍내에서 정선 방향으로 동강의 물길을 약 15km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U자형으로 물이 크게 돌아가는 곳을 만날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어라연이다. 걷는 코스는 총 6km정도로, 안내소에서 해발 531미터인 잣봉을 거쳐 어라연 전망바위로 향한 뒤 동강을 바로 어깨 옆에 놓고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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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걷는 길 (6*7중형/Ektar100)임도길이 끝나면 좁은 등산길이 시작된다. 걷는 내내 동강이 옆에 있다. ⓒ 안사을


거운분교 근처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차에서 내렸다. 임도길이 끝나는 곳까지는 자전거로, 그곳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며 걷기로 했다. 산행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잣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동강쪽으로 내려간 뒤, 같은 길로 돌아왔다. 잣봉코스와 어라연코스를 모두 돌면(도보) 4시간 정도 걸리고, 어라연 코스만 왕복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본인은 자전거를 이용하여 1시간 가량 단축하였다.

엄청나게 뜨거운 날씨였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언덕을 넘었더니 상당히 급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경사가 심한 곳은 35도는 되어보였다. 이 언덕 때문에 어라연 코스만 왕복하더라도 트래킹화를 신어야 안전한 구보가 가능하다. 게다가 풀코스로 도는 것보다 구간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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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길 (35mm/Portra400) 걷기를 마치고 다시 이 길을 오를 때는 끌고 올라가야만 했다. 경사가 너무 심해 앞바퀴가 계속 들렸기 때문. ⓒ 안사을


손목과 손아귀에 힘을 주고 한참 내리막을 내려오니 동강의 수면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시멘트 포장이 끝나고 임시포장도로가 시작되었고 동강을 옆에 놓고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어떤 구간은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고운 모래가 길 위에 두텁게 퇴적되어, 바퀴가 빠지고 비틀거렸다. 침식된 가는 입자가 바람에 날리다가 뼝대를 만나 안착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평지를 1km정도 더 가다보니 이내 임시포장이 끝나고, 1, 2명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바뀌었다. 너덜지대를 지나야하고 무릎 높이의 바위를 여러 번 넘어야 한다. 결코 험한 코스는 아니지만 쉽게 볼 것도 아니다.


걷는 내내 끊임없이 구령을 맞추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부터 내려온 것인지, 보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내려왔다. 워낙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렬은 시원해보였다.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훔치고 있으니 어떤 보트에서는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신기해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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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물길 따라 (6*7중형/Ektar100)빠른 여울을 지나가고있는 보트의 모습이 스릴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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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이 눈 앞에 (6*7중형/Ektar100)풀과 나무가 액자가 되고 풍경은 곧 그림이 된다. 어라연 물돌이 장소가 지척이다. ⓒ 안사을


동강 한 가운데로 집채만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어라연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지금은 '물고기 어(魚)'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어조사 어(於)였다. 이 지명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절인 '어라사'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혹자는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물이 투명하여 노니는 물고기의 비늘이 반짝거린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첫 번째가 맞지만 마음에는 두 번째의 것이 더욱 좋았다.

위에서 어라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세 곳이 있다. 두 곳은 잣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잣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데, 그곳이 어라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지도에는 '전망바위'로 표시되어 있다. 어라연길의 끝에서 잣봉길로 급경사를 5분만 오르면 그곳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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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바위에서 (6*7중형/Ektar100)수면 위 보트들의 크기를 보면 강과 바위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안사을


돌아가는 길은 풍경이 또 달랐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순광이 역광이 되고 역광이 순광이 되니 당연한 이치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주변 풍광을 마음 속에 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뜨겁지만 신선한 공기가 목을 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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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6*7중형/Ektar100)길 옆으로 작은 돌들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 안사을


길이 끝난 곳에서 한 걸음 더

자전거를 다시 차 지붕 위에 결박하고 좀 더 상류를 향해 차를 몰았다. 먼 곳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나리소 지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지도 어플을 켜고 농로 통해 가장 근접한 곳까지 가다보니 막다른 곳에 집 한 채가 있었다. '소골'의 끝집이었다.

그 집 옆으로 오솔길이 나 있었다. 마당 그늘에 앉아 부채로 더위를 식히고 계신 할머니께 잠시 양해를 구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여기 옆길로 잠시 다녀와도 될까요?"
"갔다와요. 뭐하러 가게?"
"사진 찍으러요."
"뭐시 찍을 것이 있간?"


까치발을 들고 보니 15m도 채 가지 않아 길이 끊기는 듯 했다. 위성지도를 참고하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주먹 두 개 만한 돌들이 끝도 없이 깔려있었고 동강이 눈 앞에 민낯으로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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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강 (6*7중형/Pro400H)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 동강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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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 (6*7중형/Ektar100)강물에 몸을 담근 채 폭염 속 시원함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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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소 전망대에서 (6*12중형/Portra400)나리소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나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 옆에 주차공간도 없이 작게 존재하기에 발견하기가 어렵다. ⓒ 안사을


이번에는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 제장마을쪽 동강을 탐방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두터운 모래층이 퇴적되어있는 모습이었다. 강물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강, 모래의 강이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져가며 모래 위를 걸었다. 걷는 내내 위로는 태양의 열기에, 아래로는 달궈진 모래와 돌들의 복사열에 시달려 마치 양면 프라이팬 속에 들어있는 듯 했다. 하지만 물이 빚어낸 풍경 덕에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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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강 (35mm/Portra400)서 있는 곳은 자갈이 함께 있어서 제법 단단했지만 다른 곳은 발등이 모래에 덮일 정도로 푹푹 빠졌다. 매우 고운 모래들이었다. ⓒ 안사을


모래의 강을 건너니 또 다른 비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의 세기가 매우 거세고, 평소 범람이 잘 되는 곳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바로 '인편구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의 돌들을 보면 한쪽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거센 물살이 이렇게 돌들을 정렬해 놓은 것이다. 지층 속에서 이런 구조가 발견되면, 과거에 꽤 큰 물이 흘렀던 곳으로 추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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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편구조 (6*7중형/Ektar100)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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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돌밭 (6*7중형/Ektar100)동행인이 광할한 돌밭을 걸어오고 있다. 사람의 크기로 미루어 풍경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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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굴 (6*7중형/Ektar100)거센 물살이 절벽을 때려 작은 동굴을 만들었다. ⓒ 안사을


근처에 있던 집 한 채가 또한 인상적이었다. 전통 산촌 가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너와지붕집이었다. 그 집 앞으로 옛날식 가마니와 수레가 놓여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드라마의 촬영지였다. 현재는 집 앞의 공간에 옥수수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쉼터로 사용되는 듯 약간의 세간살이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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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지붕집 (6*7중형/Ektar100)곡식가마니와 달구지가 정겹다. ⓒ 안사을


전국을 강타한 폭염에 유래없이 산촌 마을에서도 한낮 최고기온 37도를 찍은 날이었다. 옷 한 벌 모두를 땀으로 흠뻑 적신,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지만 자연 속으로 파고들어 가까이 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산과 강이 언제나 이렇게 우리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필름사진 여행기> 2018년 여름 강원도 여행 마지막 편이 이어집니다.
#영월 #동강 #어라연 #나리소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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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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