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가 불편하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모두의 정치⑦] 정의당 환노위 법안소위 배제 유감

등록 2018.08.27 19:28수정 2018.08.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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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전경. ⓒ 김지현


어려서 꿨던 꿈이 있다. 세계여행이다. 초등학교 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생긴 꿈이다. 가고 싶은 나라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자를 그어가며 여행 동선을 짜다 보면 상상 속에서는 이미 그 나라에 가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 그게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꿈인지 알게 됐다. 불가능하겠지만, 너무나 영롱해서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꿈도 있다. 하나는, 당·정협의를 해보고 싶다. 당·정협의는 집권여당과 정부 부처 간에 이루어지는 정책 수립 및 조정에 관한 회의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의하기도 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과 같이 특정 주제에 관해 해당부처 장관과 토론할 수도 있다. 야당이 견제와 비판을 기본으로 한다면, 여당은 협력을 바탕으로 나아가 주요 정책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큰 차이다.

두 번째, 상임위원장을 맡은 의원실에서 일해보고 싶다. 국회에는 17개 상임위원회가 있고, 상임위원장은 여야 간 의석수를 기준으로 배분하며 통상 재선 이상의 의원이 맡는다.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간사들과 협의해 의사일정을 정하고, 위원회 사무를 관장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상임위원장의 권한도 강력하다.

세 번째, 법안심사소위원회(아래 법안소위)에 들어가고 싶다. 17대부터 현재 20대 국회까지 무려 4대를 일했는데 한 번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상임위에서 따라서 비교섭단체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일했던 보건복지위원회는 유독 넣어주지 않았다. 신청을 안했느냐? 2년에 한 번 원 구성 시기마다 매번 했다. 비교섭단체를 일방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당 차원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거대 양당이 이럴 때는 의기투합이 잘 된다.

법안소위가 대체 뭔데?

왜 다른 정당들은 진보정당이 법안소위에 들어오는 것을 꺼릴까? 법안소위가 대체 뭔데?

국회의 법률안 심사 절차와 과정을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법안을 발의하면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하고, 입법 취지와 주요 내용을 국회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 입법예고를 한다. 이후 상임위 전체 회의가 열릴 때 안건으로 상정한다. 대표발의 의원이 제안 설명을 하고, 전문위원이 검토 보고를 한다. 그 뒤 대체토론을 한다. 대체토론은 의결하지 않는 토론을 말한다. 의견을 개진하고, 질문도 할 수 있다. 토론이 끝나면 법안소위로 회부한다. 실질적 심사는 이제부터다.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저지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내용을 반영하고 싶다면? 당연히, 법안소위 위원을 찾으면 된다.

법안소위는 통상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소수의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의하기에 한 명이라도 강력히 반대하는 의원이 있다면 그 법안은 통과가 쉽지 않다(물론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가 반대해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른바 '쟁점법안'이라고 불리는 법안이나 정부가 비협조적인 법안은 논의하지 않고 그냥 둔다. 이를 '계류 중'이라고 하는데, 통과되지 않은 모든 법안은 상임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다 임기가 끝나는 날 한꺼번에 '폐기'된다.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되는 법안의 일방적인 추진을 막는 일도 법안소위에서 할 수 있다. 통과를 무조건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반영해 조정할 수도 있다. 법안소위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법안을 중심으로 한 가장 중요한 협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의견 표명'이 가능하다지만... 결국은 법안소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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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찬성 160표·반대 24표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5월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으로 통과되고 있는 모습. 본회의장에서 아무리 반대토론을 한들 그 영향력은 미비하다. ⓒ 남소연


법안소위 위원이 아닌 의원이 의견을 개진할 방법은 없을까?

법안소위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임위 전체회의에 심사 보고를 한다. 법안소위에서 의결했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남아있을 경우 다시 소위원회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재회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수백 건 중 한 건 있을까 말까다. 소위에서 심사를 완료한 법안은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대부분 의결을 강행한다. '여야 간 합의'한 법안이라는 이유로 통상 표결도 하지 않는다.

법안소위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 전체회의에서 반대 발언을 하는 게 유일한 의사표현 방법인데, 이는 통과를 막을 만큼 위력적이지 않다. 소수의견으로 속기록에 남을 뿐이다. 가장 강력한 항의 표시라 봐야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하는 것뿐이다.

상임위에서 가결되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보고된다. 간혹 수정안이 통과되기도 하지만 역시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된다. 본회의에서도 반대토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부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17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14년간 본회의에서 부결된 건수는 16건에 불과하다. 19대 국회만 보면 1만7822건의 법률안이 발의돼 7429건이 통과됐는데, 본회의에서 부결된 건수는 단 3건이었다.

법안 통과는 이처럼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심사과정을 거치고, 모든 단계에서 절차적으로 '의견 표명'의 기회가 보장돼 있지만, 결국 법안에 대한 실질적 심사는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99% 이뤄진다. 법안소위가 중요한 이유다.

비교섭단체에 대한 의도적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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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배제에 뿔난 이정미 환노위원 정의당 대표인 이정미 의원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용노동소위 구성 배제에 대해 항의하는 의사를 밝힌 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반대편에 앉은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 의원의 의사진행 발언에 동의 의사를 표하고 있다. ⓒ 남소연


20대 국회 하반기에 정의당 이정미 의원(비례)은 노동관련 법안을 다루는 소위원회 참여할 수 없게 됐다. 20대 국회 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인원은 10명이었는데, 이를 8명으로 줄여 더불어민주당 4명과 야당 4명(자유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1명)으로 구성해 버렸다. 원래대로 10명이면 여당 5명, 야당 5명으로 야당 몫 중 한자리가 정의당 자리가 된다. 그런데 숫자를 줄여 정의당을 빼버린 것이다. 진보정당이 환노위 노동소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은 2004년 원내진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 분야에서 진보정당을 배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는 소위원회가 아니라 아예 환노위에서 빼려고 시도했었다. 19대 국회 후반기의 일이다. 2014년 6월, 심상정 의원을 전반기에 활동했던 환노위가 아니라 다른 상임위에 배정한다는 소식에 정의당 의원단 전원이 국회 본청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당시 환노위 위원 정수는 15명이었는데 새누리당 8석, 새정치민주연합 7석으로 배정하고 비교섭단체는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새누리당 7석, 새정치민주연합 7석, 정의당 1석이었다. 결국 정의당의 강력한 항의에 위원회 정수를 16인으로 늘렸고, 심상정 의원은 계속 환노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노동 분야에서 정의당을 배제하려는 것은 단순히 '원 구성'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은 노동의 가치와 생태의 지속가능성 실현을 존립 이유로 삼고 있다. 정당의 정체성을 무시한 것이며(특히 이정미 의원은 정의당 대표다) 비교섭단체에 대한 의도적 배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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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 후반기 환노위 위원회 구성.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 배정됐다. 배제 논란이 인 고용노동소위원회에는 민주당 김태년, 윤호중, 이용득, 한정애 의원, 자유한국당 이자, 신보라, 이장우 의원,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이 배정됐다. 민주당 : 한국당 : 바른미래당 비율은 4:3:1이었다. ⓒ 국회환노위홈페이지


'이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대 양당의 태도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다루는 제도이며 이견을 가진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정의당의 '다른 목소리'가 불편하고, 껄끄럽다 하여 협의 테이블에서 밀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의당이 대리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있다. 정의당을 배려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8년에 제정된 '국회 상설 소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교육위원회에는 교육자치소위원회, 대학교육소위원회, 교육개혁소위원회를 두도록 돼 있고,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보건의료소위원회, 사회복지소위원회, 식의약품안전소위원회를 두도록 돼 있다. 이밖에도 상임위 별로 구성해야 할 소위원회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현재 소위원회 구성은 이 규칙과 무관하다. 의제가 아니라 기능에 따른 구성으로 바뀌어 법안심사소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게 타당한지 이 기회에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국회는 입법부다. 입법은 국회가 가지는 권한 중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국회의원 '법안 발의권'이 있다. 그런데 '법안 심사권'은 사실상 법안소위 위원을 맡은 소수에게 위임돼 있다. 과도한 위임이다. 소위원회 구성이 심사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규칙에서 정한 바와 같이 의제에 따른 분류로 변경해 모든 의원이 법안소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보다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법안소위에 참여하고 싶다는 내 꿈이, 세계여행만큼 '비현실적'이지 않길 바란다.
#정의당 #이정미 #환노위 #법안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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