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비껴가 다행이지만, 농어민들이 허탈한 까닭

육상으로 배 옮기고, 하우스 비닐 제거했는데... 원상복구하려면 추가 비용 들어

등록 2018.08.25 17:35수정 2018.08.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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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이 빗겨간 태안반도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왜일까.

24일 자정께 태풍 '솔릭'이 태안반도에 상륙한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뉴스에 연이어 보도됐다.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기상청과 국가태풍센터는 예보를 통해 목포를 지난 태풍 '솔릭'이 태안반도를 비롯한 충남 서해안에 상륙할 전망이며 2010년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곤파스와 유사한 경로로 이동해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보했다.

하지만, 결국 태풍 '솔릭'은 태안반도가 아닌 전라북도 군산을 거쳐 충청 내륙과 강원도를 지나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다행일까. 어쩌면 태풍 곤파스처럼 태안반도를 직격타로 때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태풍 '솔릭'은 가뭄 걱정으로 타들어가던 농심을 달래기에는 충분한 비를 내려주지 않았다.

태안군 재난시스템에 따르면 태안반도는 23일과 24일 이틀간 최남단 고남면이 25mm, 최북단 이원면이 16mm로 평균 19mm 강우량에 그쳤고, 공식적으로 접수된 태풍 피해도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태풍 '솔릭'이 태안반도를 조용히 지났지만 태풍이 물러간 뒤 태안반도 곳곳에서는 허탈함과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왜일까. 태풍 '솔릭' 북상 예보 당시부터 24일 약간의 비만 내리고 태안반도를 빠져나가기까지 긴급했던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자.

안흥외항 찾은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 태풍 솔릭이 태안반도를 지난다는 예보가 있던 지난 23일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과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안흥외항을 찾아 현장 점검했다. ⓒ 충남도 제공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도지사와 영상회의를 하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가 하면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이 양승조 도지사 등과 함께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흥외항을 현장 점검하는 등 태풍 대비태세가 진행됐다.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태풍에 비닐하우스가 소실될 것을 우려해 비닐을 철거했으며, 과수농가에서는 낙과를 막으려고 부족한 일손에 외국인 노동자까지 동원해 과일을 고정하고, 나뭇가지 부러짐을 막기 위한 받침대 설치 작업을 했다. 태안군내에는 25가구의 과수농가와 207가구의 하우스농가가 농사를 짓고 있다.


어민들은 피항시설이 설치된 항포구에 배를 결박하거나 심지어 크레인을 불러 육지로 배를 이동시키기도 했다. 기자가 태안군에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육지로 인양된 어선이 320여척, 항포구에 결박한 어선이 1310척에 달했다.

기상청의 빗나간 예보에 농‧어민들 피해

비닐하우스 피해 우려에 비닐을 벗긴 농가들 시설하우스 농가들은 태풍 솔릭에 대비해 비닐을 벗겨냈다. 다시 설치하는데 인건비와 재료비 등 100여만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 김동이


문제는 요란스럽게 태풍에 대비하면서 투입된 인력과 비닐 철거 등으로 인한 손실이 농가와 어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우스 시설농가들은 작업비로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 썼는데 원상복구하려면 인건비와 재료비까지 최소한 100만 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태풍에 대비하는 어민들 어민들은 항포구에 어선을 단단히 결박하는 한편 육지로 인양했다. 다시 바다로 인양하기 위해서는 20만원 이상의 예산이 든다고 크레인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 김동이


육지로 이동시켰던 어선들도 해상으로 원위치 시키기 위해서는 크레인을 임차해야 하기 때문에 크레인 사용료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실정이다. 크레인을 운전하는 김아무개씨는 "배를 다시 바다로 보내려면 한척당 40만 원이 들어간다"면서 "작은 배가 그렇고 톤수가 나가는 어선은 그 이상의 크레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꽃게 조업 시작 21일 0시부로 꽃게 금어기가 해제돼 꽃게어선들이 조업에 나선 가운데 이튿날인 22일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서 조업이 중단됐다. ⓒ 김동이


특히, 지난 21일 0시부로 금어기가 해제된 꽃게어선들은 태풍 솔릭 북상 소식 전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22일 21시 이전까지 이틀간만 조업을 한 뒤 태풍 소식에 조업을 멈췄다. 꽃게잡이 어민들은 금어기가 해제된 첫날 하루 총 25척의 배가 바다로 나가 약 3톤의 꽃게를 싣고 위판장으로 돌아오며 올해 조업에 기대를 걸었지만 태풍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한 농민은 "엉뚱한 기상정보를 제공한 기상청과 호들갑 떤 청와대, 충남도 등의 지나친 대비에 제 손으로 비닐하우스를 걷어낸 농민과 어선, 어구를 대피시킨 어민들의 경제적 피해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나"라면서 "원상복구 시키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허탈할 뿐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농민 차아무개씨는 "뜬 구름에 우산을 펴봤다"고 비유한 뒤 "농‧어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가며 이제야 태풍이 오려나 노심초사하며 밤새웠는데 분통이 터진다"고도 했다.

성일종 "조금만 일찍 태풍 예상경로를 알렸더라면"

태풍 솔릭에 대비해 가지를 묶고 있는 사과농가 충남 태안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가지 묶기를 하고 있다. ⓒ 김동이


자유한국당 서산‧태안 지역구 성일종 국회의원도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상청의 정확도 떨어지는 기상예보를 지적했다.

성 의원은 "태풍 솔릭이 서산과 태안을 비껴갔다"고 말문을 연 뒤 "예상된 피해는 적어 다행이지만 기상청의 예보에 대비하느라 하우스를 뜯고, 선박을 육상에 올리느라 농민과 어민들의 노력과 피해가 또한 크다"면서 "우리 기상청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늦고 정확도도 떨어진다. 조금만 일찍 태풍의 예상경로를 알렸더라면 농‧어민들의 수고와 경비를 줄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국회에서 기상청을 상대로 따져보겠다고 했다.

성 의원의 페이스북 글 댓글에도 기상청의 부정확한 예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민이라고 밝힌 이아무개씨는 "바다에서 일하는데 일본, 미국, 우리나라 기상예보를 보고 검토하고 선장들의 감각을 보태 바다에 나간다"며 "아직 어느 나라 예보도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이나 일본은 어느 정도 맞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보라기보다 현재의 기상을 알려주는 기능에 불과해 경제적 피해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농민 연아무개씨는 "하우스 단도리 하느라고 멀쩡한 곳 터트리고 밤새 잠도 못자고 애썼다"며 "기상청 일기 예보가 너무 황당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아무개씨도 "예방만이 피해를 최소화하는건데 비용면에서 아쉽다, 자연재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이아무개씨도 "태풍이 온다면 대비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왕이면 올바른 예보로 국민들이 헛된 수고를 하지 않게 하는 것이 기상청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는 등 기상청을 향한 쓴소리가 주를 이뤘다.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박아무개씨는 "그래도 미리 (태풍에) 대비하는 연습은 한 것 같다"고 했고, 송아무개씨도 "기상 예보가 틀렸지만 미리 준비하는 공부는 된 것 같다"고 했다. 
#태풍 솔릭 #태안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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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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