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압도적 승리는 민주당 역사의 승리

[인물탐구] 30년 쌓은 브랜드의 힘... 당원들은 정체성이 분명하면서도 강한 여당 원했다

등록 2018.08.27 14:31수정 2018.08.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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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이해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 직후 환호하는 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세간의 예상대로 이해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그를 '노땅' 취급하는 것은 절대적 나이에 견줘 이야기한다면 매우 불합리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이해찬 대표는 1952년 생. 여당 대표의 맞상대라면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될 터인데, 1954년생이다. 불과 2살 차이다. 경선 상대였던 김진표 후보가 1947년생임을 감안하면 사람들이 이해찬을 나이에 비해 훨씬 더 늙은 정치인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해찬이 정치를 오래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치 경력으로만 보면 비슷한 연배의 김병준이나 나이가 훨씬 많은 김진표의 대선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J 영입으로 정치 시작한 이해찬... 위기 봉착한 그를 살린 노무현

DJ가 1987년 대선에서 3위로 낙선하고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총선을 치르기 위해 재야에서 인물들을 수혈 받았다. 그때 영입된 인물 중에 이해찬이 있었다. 1988년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은 황색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똘똘 뭉친 호남표가 호남 지역과 서울에서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30대 중반의 이해찬도 호남 출신이 많은 지역으로 알려진 관악구에서 손쉽게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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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열린 제13대 총선에서 이 전 국무총리는 당시 평민당 신인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선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꺾고 국회에 입성해 이곳에서 내리 5선을 지냈다. 사진은 당시 총선 유세장에 나란히 앉은 이 전 국무총리(오른쪽)와 김 대표(왼쪽). ⓒ 연합뉴스


국회 개원과 함께 시작된 광주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워낙 5공비리 청문회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노무현 때문에 빛이 가려져서 그렇지, 광주 청문회만 놓고 본다면 단연 으뜸은 이해찬이었다. 5공비리 청문회장에 노무현이 있었다면, 광주 청문회장에는 이해찬이 있었다.

현재 민주당의 뿌리는 가깝게 보자면 1988년 총선으로 만들어진 평민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DJ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와 재야에서 수혈된 인사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정당을 모태로 몇 십 년을 흘러왔다. 이해찬은 참신한 재야인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7선 의원이자 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이제는 여당의 당대표 이력까지 추가한 이해찬이 까딱 잘못했으면 정치 인생 초반에 그대로 정치생명이 날아갈 뻔한 일이 있었다. 동교동계 핵심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모양이다. 이런 야당으로는 정권교체 못 한다면서 탈당계를 내고 당을 뛰쳐나가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13대 국회의원 시절에 의정 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일도 있었는데, 젊은 혈기에 좌충우돌하는 방식은 둘이 막상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신민당(평민당에서 개명한 당 이름)과 YS가 3당 합당으로 떠나고 남은 꼬마 민주당이 합당을 하였을 때였다. 14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총선 승리의 전망이 어두웠던 것이 통합의 기폭제가 되었다. 문제는 동교동계와 척을 지고 탈당계를 냈던 이해찬의 관악을 선거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 이해찬 의원이 미운 털이 박혀있는 데다 지역구 환경도 좋았던 곳이라 통합민주당의 공천장을 받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큰 위기에 봉착한 이해찬을 구원한 것은 노무현이었다. 꼬마민주당은 당세가 신민당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약했지만, 지역 기반을 배경으로 통합 야당의 40%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노무현 의원이 이해찬 공천에 배수진을 치고 나섰고, 결국에 공천장을 받아냈다. 돌이켜보면 이해찬의 정치 인생이 그대로 끝날 뻔한 위기였다.

민주당의 주류는 누구인가

새삼스럽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민주당의 주류는 누구인가를 묻고 싶어서이다.

1988년 이해찬을 영입한 평민당부터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선출한 민주당 경선까지 살펴보면 민주당의 주류는 '동교동'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세력들이었다. 이른바 야당 '특무상사'라 하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투표의 향배가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고, 이들의 여론이 이른바 '당심'이 되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1992년 DJ 선거운동원으로 뛰면서 만났을 때가 아주 강렬하다. 새벽에 일어나 선거 운동을 나가게 되면 그 지역 책임자가 나와서 동네를 안내했다. 어느 동네에서는 며칠 전 다리를 다쳤다며 절룩거리며 선거 운동할 자리를 봐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생업도 있는데, 선거판이니 어쩔 수 없다며 가게는 마누라에게 맡기고 자기는 이렇게 뛰어다니고 있다는 거였다. 저 아저씨와 인터뷰를 하면 몇 십 년 야당의 역사를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002년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까지 마음을 얻고자 했던 당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호남의 지지를 얻는 자가 민주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되짚어 보면, 이런 특무상사들이 당심의 향배가 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의 주류가 교체되었음은 몇 년 전부터 확인되고 있었다. 이른바 '친노패권주의'라는 말이 나왔던 것을 상기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해찬이 몇 십 년 전에 탈당했던 사유가 바로 동교동계 패권주의 때문이었다. 패권의 존재 자체는 논외로 하고, 민주당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사례다.

민주당 대표 자리를 친노만 맡아왔던 건 아니다. 손학규가 있었고, 김한길 대표가 안철수와 공동 대표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당을 장악하지 못했다. 당심을 쥐지 못했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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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기 받은 이해찬 민주당 신임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 직후 추미애 전 대표로부터 당기를 전달받아 흔들고 있다. ⓒ 남소연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대의원, 권리당원, 국민여론, 당원 여론 선거가 별다른 차이점 없이 압도적으로 이해찬을 대표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의원 40.57%, 권리당원 45.79%, 국민여론조사 44.03%, 당원여론조사 38.20%, 합계 42.88%)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내 경선을 보면 국민여론과 당원의 여론이 배치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데,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는 전혀 그런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해찬의 힘, 무엇보다 그의 경력에서 오는 힘이 작용하였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당원들이 그의 경력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것은 민주당이 이해찬의 정치 역사에 상당한 동질감을 느끼며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을 거란 추론도 가능하다. 마치 과거 평민당 시절부터 DJ가 모든 당원들의 선택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DJ와 같은 당내 지배력을 이해찬이 갖췄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찬의 정치 경력에 많은 당원들이 동질감을 갖고 있을 거란 이야기다.

이미 이해찬은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지난 총선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1992년에 실시된 1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공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공천장 없이도 자력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이해찬' 자체가 그냥 하나의 브랜드였다.

이번 경선 결과만 놓고 보면 평민당 시절부터 수혈되어온 재야, 586 세력들이 완벽히 당의 주류로 섰다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안철수와 함께 구 동교동 세력이 보따리를 싸고 나간 민주당에 자리잡고 있는 586은 동교동계에 치이던 그 386들이 아니다. 3에서 5로 숫자가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나브로 이뤄진 야당 내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여기서 말하는 586은 특정 국회의원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특무상사의 역할을 대신할 당원들의 전형적인 상징을 뜻한다. 지역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어떤 세대 문화적, 이념적 집합체로서 이해찬 대표는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친문' 김진표 후보는 왜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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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에 축하 인사 건네는 김진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 직후 경쟁한 김진표 후보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왼쪽은 송영길 후보. ⓒ 남소연


여기서 민주당의 이념을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우파들은 문재인 정부를 극좌의 이미지를 씌우고 있지만,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는 아주 재밌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극문'이라는 하는 세력들이 김진표 지지를 천명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김진표 후보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탈당을 거론하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재명 경기 지사의 이념적 스탠스는 민주당 내에서 상당히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극좌 성향을 갖고 있다면 그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사 간의 이념적 친화성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경제 관료 출신의 김진표 후보에게 쏠렸다는 것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

한동안 다크호스로 김진표 후보가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는데, 그것은 친문 세력의 일부가 그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 주된 이유였다. 김진표 후보가 단독으로 당내 지지 기반이 넓다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김진표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이 내세운 대립 전선이 민주당 당원들의 지지를 많이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후보였던 송영길조차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좌측이 있지 않았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송영길 후보는 대선 국면에서 공무원 증원 공약 등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바 있다. 386 출신이기는 하나 그 역시도 이재명 후보의 이념적 색채와는 거리가 있던 사람이다.

이 점은 이해찬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하였고,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관료 사회를 경험한 여당 대표에 대한 이미지에서 하다못해 정의당 정도의 이념적 기운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

이념적으로 따지자면 이재명과 김진표 사이 어딘가에 당원들의 이데올로기적 좌표가 있고, 그 위치 쯤에 이해찬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 내에서 지지층 및 당원, 대의원들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은 이해찬 대표의 행보가 앞으로 민주당의 이념적 좌표를 설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이 분명하면서도 강한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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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무소속 의원이 2016년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는 대정부질문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이번 민주당 경선을 끝으로 당분간 여당과 야당을 이끌 선장이 모두 결정되었다.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이에 맞서는 야당의 비대위원장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실장이었던 김병준, 그리고 마지막으로 뽑힌 여당의 대표는 참여정부 국무총리였던 이해찬이 되었다. 여야정의 대표들이 한 정치 세력의 인물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인사로만 채워지는 경우가 한국정치사는 물론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사에 존재했었는지 찾아봐야 할 만큼 매우 독특한 일이다.

다만 노무현 없는 문재인 대통령을 떠올리기 어렵고,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노무현 대통령 없이는 정치 이력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둘은 이제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이해찬은 친노 정치인이기는 하나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색깔을 가진 정치를 해온 사람이다.

당청 간의 관계에서 당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았던 대표 후보였다. 이것이 친문 세력 중 일부가 그에 대해 의문 부호를 붙인 사유였다. 실제로 이해찬은 참여정부 시절 계급장 떼고 노무현 대통령과 의견 충돌을 빚어낸 전력도 있다. 민주당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돕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으로서 이해찬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전체로서의 집단에 대한 특성을 잡아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찬이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역사가 이겼다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노회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면에서 민주당 당원들이 바라는 바가 표출되었을 수도 있다.

정체성이 분명하면서도 강한 여당.

그게 민주당원들이 이해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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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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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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