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경제위기 띄우는 보수언론, 그 검은 속내

[김종성의 이 뉴스 진짜야?] 소득주도성장 때리는 언론... 베네수엘라 위기는 포퓰리즘 때문 아니다

등록 2018.08.28 18:13수정 2018.08.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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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대기업의 수익 못지않게 가계소득도 함께 올리자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보수 정당·언론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아메리카 북부의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에 관한 보도가 지난주부터 자주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 현지 시각으로 21일 발생한 지진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면서, 이 나라 경제위기를 한국에 빗대는 기사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 화폐가 종잇조각으로 전락하고, 국민들이 난민이 돼 외국으로 탈출하는 베네수엘라 상황을 한국 상황에 은근히 빗대는 기사들이다.

일례로, 8월 27일 치 <중앙일보> 칼럼 '베네수엘라 비극이 한국에 준 교훈'은 소득주도 성장론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듯,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금의 베네수엘라와 연관시켰다. 중요한 것은 동종 기사들처럼 이 기사의 근거도 너무 빈약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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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중앙일보'에 실린 '전영기의 시시각각'. 제목은 '베네수엘라 비극이 한국에 준 교훈'이다. ⓒ 중앙일보PDF


이 기사는 "우고 차베스가 정권을 잡은 1999년만 해도 그 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국답게 풍요로웠다"라면서 경제가 망가진 원인으로 "세금 중독에 걸린 정부, 공짜 보조에 맛 들인 국민"을 들었다.

세금 중독? 공짜 보조? 베네수엘라 상황을 전달하려는 건지, 이참에 소득주도 성장론에 흠집을 내보려는 건지 의심이 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되는 과정을 이렇게 정리했다.

"차베스는 집권 13년간 석유를 팔아 번 돈을 지속 가능한 선순환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무상복지,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증원 같은 공공 지출에 다 써버렸다. 선심으로 날린 돈은 투자와 생산, 일자리로 연결될 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소득주도성장의 결말이 이랬다."

만약 글쓴이가 베네수엘라 경제에 관한 기본적인 조사만이라도 했다면,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무상복지,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증원 같은 공공 지출에 다 써버렸다"라는 단언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2013년에 발표된 김기현 선문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의 '주요 지표를 통한 차베스 집권 14년의 평가'는 차베스가 국고를 사용한 용처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프라 건설, 교육과 보건 복지, 자동차 산업과 같은 고기술 비(非)석유산업과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의 육성, 농업 발전, 국내시장의 통합 등 다양한 내재적 발전 프로젝트를 시도하였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 <중남미 연구> 제32권에 실린 논문.

차베스가 보건 복지에만 돈을 쓴 게 아니었다. 비록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다양한 산업적 기반을 확충하는 데에도 돈을 썼다. 이런 사실관계를 무시한 채 베네수엘라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하지만 위 칼럼의 글쓴이만 비판할 필요는 없다. <중앙일보>뿐 아니라 다른 보수 언론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상황을 무시한 채, 이 나라 경제위기를 자의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억지로 한국 상황과 꿰맞추고 있다.

위 칼럼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대부분의 보수 언론은 석유부국인 베네수엘라가 경제파탄에 직면한 원인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들고 있다. 일반국민들을 위해 무상복지를 실시했기 때문에 경제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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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 wiki commons


한국의 보수 언론들이 집중 비판하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4선에 성공해 2019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암에 걸려 2013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복지정책에 역점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약육강식 논리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베네수엘라의 양극화가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정책은, 일차적으로 기업을 지원한 뒤 일반 국민들한테 '떡고물'이 떨어지도록 하는 정책이 아니었다. 양극화가 심한 구조에서는 기업 수익이 소수의 대주주한테만 돌아가지 노동자들에겐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차베스는 일반 국민들을 살리기 위한 복지 정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업 지원을 통해 국민들을 간접적으로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국민들을 직접 살리는 차베스의 정책은, 경제를 움직이는 실질적 원동력인 일반 대중의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복지정책으로 대중의 삶과 건강이 개선됐으므로 이들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래서 차베스 시대에는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좋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그가 집권한 1999~2013년 베네수엘라 GDP는 3.4배 이상 증가했다. 복지정책을 확충하면 노동자의 삶이 개선돼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경제를 조롱하는 사람들도 이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차베스에 대한 그 어떤 비판자도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오히려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측면에서 성과가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해왔다." - 위의 김기현 논문.


차베스 사후 폭발한 베네수엘라 경제의 약점

그렇다면, 차베스 사후에 경제가 파탄된 이유는 무엇일까? 차베스의 카리스마가 사라져서만은 아니다. 이 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13년간의 차베스 집권으로도 치유하지 못한 베네수엘라 경제의 약점이 그의 사후에 폭발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강점은 석유 자원이다.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게 되레 약점으로 작용했다. 지나치게 석유에만 의존하다 보니, 균형 있는 경제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례로, 1983년 <중남미 연구> 제3권에 실린 민만식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의 '베네수엘라의 경제외교정책'을 들 수 있다.

"경제구조는 모노컬쳐 경제(monoculture economy) 즉 석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주로 미국에 수출하고 미국으로부터 공산품을 수입하는 대미의존이 상당히 높은 나라이다."

이 논문은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기 15년 전인 1983년에 나왔다.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말은 '80~90% 의존한다'는 말로 바꿔야 한다.

이렇듯 석유 판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국제유가가 요동칠 때마다 이 나라 경제도 함께 요동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유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위험한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소득도 낮아져 외국 상품을 구매할 여력이 없게 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1980년대에 베네수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사실은, 이 나라의 경제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구도는 차베스 시대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김기현 논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를 개선하고자 농업·자동차·서비스업 등에 투자를 해봤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차베스 역시 국제유가에 따라 경제가 좌우되는 악순환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김기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국제금융위기로 인해 유가가 2008년 말에 2003년 수준인 30달러대로 급락했고, 그 후 다시 급상승하기는 했으나 2010년 말까지 90달러 수준 이하에 머무름에 따라 베네수엘라 경제는 이러한 유가 하락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으며, 그로 인해 금융위기에 따른 성장률 하락의 규모도 가장 컸다."

미국이 사지 않으면 '검은 물'에 지나지 않는 석유

지구본 위의 베네수엘라. ⓒ 김종성


국제유가 말고도, 이 나라 경제를 괴롭히는 요인들은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미관계를 들 수 있다. 우고 차베스의 반미 노선이 경제악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반미를 했기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 게 아니라, 반미를 통해 미국을 꺾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가 나빠진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이 나라 석유사업은 미국과의 긴밀한 제휴관계 속에 진행됐다. 1976년 석유 국유화 이전에는 미국인들이 석유 이권을 장악했다. 그렇지만 1976년 이후로도 석유 사업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사주지 않으면 이 나라 석유는 그저 '검은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은 석유 수입을 발판으로 차베스 정권을 압박했다.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일례로, 차베스 집권 기간인 2010년부터 석유 수입량을 줄였고, 2년 만인 2013년에는 기존 수입량의 80%까지 감축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이 집권기간 내내 차베스를 흔들어대니, 미국과 연계된 기득권층이 차베스 정권을 공격하기가 수월했다. 차베스 집권기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나 대통령 소환투표가 벌어진 것은 미국이 차베스에 대해 적대정책을 전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베네수엘라 경제위기가 차베스의 정책 때문이었다면, 국민들이 네 차례의 대선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밀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60%를 넘나드는 압도적 득표율로 그가 매번 당선한 것은, 그의 정책을 경험해본 국민들이 그의 계속 집권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석유의존 경제구조를 바꾸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이 한두 해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므로 차베스한테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차베스의 복지 정책이 나라를 망쳤다고?

베네수엘라의 기형적인 경제구조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한 19세기 전반 이전에도 문제가 됐었다. 16세기부터 이 나라를 지배한 스페인은 경제구조를 자국의 취향에 맞게 재편했다. 토착민들을 동원해 금광·커피·카카오 사업을 벌이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동원해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했다. 현지인들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산업은 소홀히 대했던 것이다.

그런 베네수엘라가 오늘날에는 석유 판매에만 의존하고 있다. 석유를 팔지 못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식민지 때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체질은 여전히 식민지 시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만성 허약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절기(국제유가 변동기)만 되면, 경제가 콜록 콜록하다가 몸져눕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가 미국의 경제제재까지 강화되고, 거기다 차베스마저 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가 지금 상황으로 곤두박질치게 된 것이다. 차베스가 복지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위기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국내 보수언론들은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오로지 포퓰리즘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이런 보도들의 목표는 우고 차베스 정권을 조롱하는 데 있지 않다. 지금 한국에서 일반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진행되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와해시킴으로써 재벌 대기업의 이익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 그런 기사들에 숨겨진 내면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 #포퓰리즘 #소득주도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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