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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내고 노숙... 모든 것에 서툰 '민폐남'이 전한 위로

[인터뷰] 영화 <대관람차>의 주역 강두와 신예 감독 둘이 뭉치게 된 이유

18.08.28 15:05최종업데이트18.08.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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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관람차>의 주역인 백재호 감독, 배우 강두, 이희섭 감독(좌측부터) ⓒ 이선필


느릿느릿 도시의 풍경을 조감할 수 있는 놀이기구인 대관람차. 이걸 그대로 제목 삼은 영화 <대관람차>는 말 그대로 '느린' 작품이다. 도시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안에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을 상징하듯 영화는 일본 오사카에 출장 온 선박회사 직원 우주의 시선을 쫓는다.

'음악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은 대로 영화에는 여러 캐릭터들의 음악연주가 등장한다. 우주 역은 대중에겐 '더 자두'라는 그룹으로 잘 알려진 배우 강두(본명: 송용식)가 맡았다. 베이시스트로 한창 홍대 클럽가를 누볐던 그에게 안성맞춤 아닐지. 2007년 배우로 전향한 후 여러 드라마에서 소소하게 역할을 맡아온 강두는 <대관람차>에서 당당히 주연 타이틀을 달았다. 단순히 음악만이 아닌 영화는 위로와 공감을 화두로 삼고 있다.

무슨 사연으로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또 첫 영화 주연으로 관객과 만날 강두는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모처에서 영화를 공동 연출한 백재호, 이희섭 감독과 강두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영화의 시작은 배우 지대한, 그리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음악 활동을 해온 이종언 대표(<대관람차> 제작)였다. 지대한과 이 대표가 의기투합해 백재호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했고, 강두 역시 지대한이 연결고리가 되었다. 영화 속 모티브가 된 루시드폴 음악 역시 그와 20년 지기 친구인 이종언 대표의 공이었다.

"지대한 형의 제안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극단에 있었고,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선배였는데 제가 (배우를 하다가) 영화감독이 되니까 좋으셨던 것 같다. 본인도 그런 꿈이 있다고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서 정말 연락 주셔서 감사하게도 시작하게 됐다. 이희섭 형 역시 제가 배우일 때 촬영감독으로 만났는데 원래 연출에 꿈이 있던 분이었다.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짬이 안 났는데 이번 영화를 계기로 연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 (백재호 감독)

"제안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같이 하기로 했을 때도 각자 잘하는 부분이 명확하니까 그것에 서로 집중하기로 했다." (이희섭 감독)

"영화 제작사들에 프로필을 돌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너 기타 치고 연기도 하지?'라고 대한이 형이 묻기에 '모든 악기를 다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시나리오 보낼 테니 읽어보라 해서 읽었고, 열심히 하게 됐다." (강두)

영화 <대관람차>의 한 장면. ⓒ 우주레이블


선배 대신 오사카에 왔지만, 거래처 사람과 과하게 음주한 후 비행기를 놓친 우주. 회사 부장은 그런 그에게 온갖 욕설을 쏟아붓는다. 충동적으로 사표를 낸 그는 버스킹이 꿈이라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선배의 흔적을 오사카에서 찾고, 무작정 노숙을 시작한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강두는 15kg가량 체중을 뺐다. "사실 가장 처음에 봤던 시나리오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도 있었고, 제 분량이 40프로 정도였다. 나중에 백재호 감독님이 수정했더라. 분량이 80프로 정도로 늘어 있었다. (백 감독은 이 지점에서 강두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수정했다고 밝혔다- 기자 말) 이런 작품을 해보는 게 연기자로서 큰 도전이겠다 싶었다. 제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우주라는 캐릭터가 저와 되게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모국어와 일본어를 둘 다 잘하는 사람이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을 각각 어떻게 대하는지 많이 관찰했다. 리액션이 서로 많이 다르더라. 이게 문화와 언어의 차이인가 싶었다. 우주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감독님과 많이 얘기하면서 만들어갔다. 일본어과를 졸업해서 언어는 잘하지만 정작 일본에는 잘 안 가본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다. 약간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지 않았을까. 오사카도 처음 갔다고 설정돼 있으니 말이다." (강두)


순수하게 꿨던 꿈들

영화 <대관람차>를 공동 연출한 백재호 감독과 이희섭 감독. 지난 23일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당시 모습이다. ⓒ 이정민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면 일과 사람 대하는 것에 서툰 우주는 민폐를 끼치는 사회 초년생이다. 그런 그가 방황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게 전혀 미워 보이지 않는다. 강두는 "순수했던 시절의 꿈이 누구나 있지 않나"라며 "그런 시절을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 더욱 와 닿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우주가 사람들 앞에 처음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예전에 제가 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밴드할 때, 대학 때 밴드할 때의 첫 무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잘은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준비했다. 그 장면에서 나오는 제 표정들은 낯선 곳에 가면 나오는 표정들이다. 낯선 곳에선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아이가 되잖나.

오사카에서 자신의 선배를 계속 찾으려 하는데 그건 아마 우주의 이상이나 어떤 상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어떤 인물을 정말 찾으려는 게 아닌 누군가를 찾으려는 그 마음이 중요했다. 감독님께 많이 물어봤다. 선배는 살아있는 건지 말이다. 스스로 결론을 내린 건 결국 이상향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강두)


전작 <락락락>에서 음악 하는 연기를 해봤다지만 기타 치며 노래하며 연기까지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재호 감독은 "(설정상 우주가) 옆 사람의 눈치도 보면서 박자도 놓치고 하는 부분을 표현하는 게 좋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영화계 떠오르는 신인 호리 하루나의 기타 교습 또한 강두가 직접 맡았다. 그만큼 <대관람차>에 강두가 애정을 갖고 몰입해 있었다는 뜻.

이 지점에서 강두의 꿈을 물었다. 가수의 길에서 방향을 틀어 연기에 집중하고 있는 그다. 포털 상 그의 필모그래피에 다 적지 않은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서 그는 단역과 조연을 오갔다.

"매년 쉬지 않고 작품은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이 리틀 히어로>라는 영화를 우연히 하게 됐다. 현장이 참 재밌더라. 밥도 잘 주고(웃음). 그 이후 영화를 하고 싶어 프로필을 엄청 돌리면서 오디션 기회를 잡으려 했다. 작은 영화도 하고 싶어 영화과 이런 곳에도 돌렸는데 연락은 잘 안 오더라. 연기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다. 좋은 스터디 모임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때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강두)

멈춰버린 시간

왼쪽부터 백재호, 이희섭 감독, 배우 강두, 호리 하루나, 스노우, 지대한. ⓒ 이정민


영화에 담겨 있는 몇 가지 상징을 물었다. 일본인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5년 전 어떤 사건 이후 정체돼 있다는 사실을 영화에서 암시한다. 우주가 몸담고 있던 선박회사, 그리고 사라진 선배라는 설정은 관객에게 후쿠시마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또한 영화 말미 '탈선한 것이 아닌 스스로 열차에서 내린 것'이라는 대사는 방향을 잃은 두 나라 사람들의 내면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 같은 경우엔 세월호 세대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강하다. 일본 역시 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겪었다. 우리 둘 다 이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잖나.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난이다.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뭔가를 할 때 자신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도우면서 스스로 조금씩 괜찮아지잖나. 큰 아픔과 트라우마 속에 있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곧 주변 사람과의 연대 덕인 것 같다. 그러면서 위안받을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의지가 생기기도 하고.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백재호 감독)

"(탈선에 대한) 그 대사를 좋아한다. 우주는 탈선한 게 아닌 스스로 내린 거라고 하잖나. 어릴 때부터 열차를 좋아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어디론가 가고 있으니까. 꿈이 없어도 그냥 타고 가도 되는 그런 거였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언제부터 영화 일을 하고는 있지만 스스로 뭔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백재호 감독이 '이젠 형의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의미로 이 영화를 제안한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탈선하라고 부추키거나 하던 걸 멈추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다. 보신 분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정도면 좋겠다. 우주가 하늘의 별을 보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시선이 곧 자신의 세상이니까." (이희섭 감독)

"우리 세대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힘든 세대였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청소년들은 잘 해내고 있다. 하고 싶은 걸 잘 찾아내는 것 같다. 꿈이 뭔지를 잊지 않는 게, 그리고 내가 즐거웠던 것들이 뭔지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제가 즐거운 것? 연기할 때인 것 같다. 또 요즘 오랜만에 베이스기타를 치니까 즐겁기도 하더라.

드럼을 잘 치는 친한 분이 있는데 생계로 지금은 (음악을 안 하고) 음식점을 하고 있다. 돈 많이 벌었다. 베이스기타를 안 친다는 제 말에 '그것도 너의 재능인데 왜 안해? 손을 놓지 말아야지' 하더라. 그 말도 맞는 말이더라. (밴드 생활을 할 때) 베이스기타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불가능하다고 느껴 과감히 포기를 했었다. 근데 이걸로 즐거우려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아마 (언젠가) 밴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강두) 


당장 28일 저녁 서울 홍대입구의 한 클럽에서 강두와 <대관람차> 출연 뮤지션인 일본의 스노우가 함께 공연을 한다. 개봉 이후 이들 역시 관객들과 함께 즐거움을 찾아가며 자신의 길을 걷지 않을까. 그게 영화 <대관람차>의 소소한 존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 <대관람차>의 주역인 백재호 감독, 배우 강두, 이희섭 감독(좌측부터)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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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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