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성급히 처리하면 후폭풍 감당 못 한다

숙의민주주의 통해 제대로 개혁해야

등록 2018.08.31 11:15수정 2018.08.3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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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은 뒤로 오히려 찬반의 주장들은 뒤섞이고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다. 대통령은 지급보장 명문화를 내각에 지시하는 등 여론을 돌려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2015년 여야가 공무원 연금법안 통과를 위한 협상과정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데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여야가 합의했다고, 대통령이 공약했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그만큼 늘어나는 보험료 부담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40년 가입기준 소득대체율 70%로 시작했다. 이후 굵직한 제도 개혁은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소득대체율 60% 인하'와 2007년 노무현 정부의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인하'한 것이다. 장기보험인 국민연금은 제도에 대한 국민 이해도와 출산율, 고령화 등의 변화에 따라 제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강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필요하지만 인기는 없는 국민연금이라 정권에 따라 정면으로 돌파하기도 하고, 다음 정부에 '폭탄돌리기'식으로 미루기도 한다. 올해가 4차 재정계산을 하는 해다. 아니나 다를까 재정계산 결과가 나오자마자 벌집을 건드린 듯하다.

"국민연금을 폐지하라!"

먼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에 가장 많이 올라온 것은 '국민연금 폐지'다. 국민들의 속이 그만큼 상한다는 뜻일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5년마다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낮춰야 한다'하니 속이 상할 법도 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란 제도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연금을 받고 있는 수급자만 400만이 넘는 중요한 사회복지 정책인데 폐지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제도를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가 칠레다. 2011년 칠레는 심각한 공적연금의 재정문제로 개인계좌 형태의 민영연금으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했다. 처음에는 전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관심을 모았으나 최근에는 낮은 수익률과 넓은 사각지대 등으로 수천 명이 연금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연금의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와 연금의 통합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이슈는 재정계산을 할 때마다 불거졌지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연금제도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급보장을 명문화하지 않고 있으며, 명문화하지 않더라도 국가에서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 명문화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많이 받는 공무원, 군인 등 직역연금은 국가가 지급보장을 하면서 전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에는 국가가 책임을 외면하려 한다는 불만이다. 뿐만 아니라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무원 등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의 제도 이원화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례로 가까운 일본이 있다. 일본은 2011년 사회보장개혁검토본부를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30년간 끌어온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후생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가입연령 및 지급연령 상향

국민연금의 가입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고, 연금지급 개시연령을 2033년 이후 68세로 상향하는 문제는 의료 기술과 인프라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경제활동기간도 예전보다는 훨씬 길어졌으므로 타당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퇴직 후 일자리 잡기가 어려워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전전하는데 가입연령과 연금 수령시기만 늦추면 어쩌냐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노령연금도 정년퇴직을 하고 몇 년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국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정년과 가입상한연령, 지급개시연령을 같이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해서는 독일에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독일은 2004년 지속성 계수(Nachhaltigkeitsfaktor)를 도입하여 급여수준이나 지급시기를 평균수명과 근로인구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하고 있다.

기준소득월액 상한의 상향 조정

국민연금 보험료는 소득상한이 설정되어 있다. 금년 7월부터 적용되는 소득상한은 468만 원이다. 이것은 매년 국민연금 'A'값에 따라 연동되어 바뀌는데 가입자의 실제소득을 반영하지 못한다 하여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상향 요구가 있어 왔다.

공무원연금의 소득상한이 835만 원이니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소득상한을 높이게 되면 높이는 구간의 가입자와 사용주가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고소득자의 연금수령액이 많아지게 되어 결국 기금고갈을 앞당기게 된다는 위원회의 결정이 있었으니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연금수급 최소 가입기간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

국민연금의 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최소가입기간은 10년인데, 이를 5년으로 축소하자는 안이 제기되었다. 10년 가입 연금액이 20만 원 전후에 불과한데 5년 가입한 연금이 과연 '연금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느냐', '기금고갈을 앞당긴다', '60세 이후에도 가입기간 10년을 채울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연금의 적정성과 보편성 중에 어느 측면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폐지

65세 이상이고 기초연금법상 소득인정액이 기준 미만인 경우 기초연금을 받아야 하지만, 국민연금이 30만 원 이상이면 국민연금 'A'급여 금액에 따라 기초연금이 최고 절반까지 감액되는데, 이를 폐지하는 문제가 검토되었지만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한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기초연금의 소득인정액 산정에 포함이 된다. 이러한 소득인정액이 낮아 기초연금을 받는데 다시 국민연금 수령금액이 많다하여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것은 이중 규제가 아닌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소득활동에 따른 연금 감액 폐지

국민연금은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한 때로부터 5년간 소득이 일정 수준('A'값)을 넘으면 소득의 초과정도에 따라 연금액을 최고 절반까지 감액지급한다. 제도발전위에서는 이 제도를 폐지할 경우 연금재정의 고갈을 앞당기게 되며, 감액 대상이 대부분 소득수준이 높은 정규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계속 감액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OECD 주요 국가들 중에 일본과 벨기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중장년층의 근로의욕을 저해시킨다 하여 감액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추세다. 급속한 고령화로 계속 하락하는 경제성장률의 지지를 위해서도 중장년 재취업이 꼭 필요함을 생각해볼 때, 이 제도의 존치 결정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기금고갈론, 공포 조장하는 것 아닌가?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의 자산규모가 전세계 3등이며, GDP 기준 적립 규모로는 1등으로 2041년까지는 계속 적립금이 증가하여 1775조 원까지 쌓이니 매우 탄탄하다고 주장한다. 자꾸 고갈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부가 연기금으로 증시 부양을 하려는 등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2057년 이후에 기금이 고갈된다 하더라도 부과식으로 연금제도를 바꾸면 문제가 없다. 적립금이 한달치 정도밖에 없는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도 2034년 고갈 예정이지만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금이 고갈되어도 국민연금 지출액은 GDP 대비 7.5% 정도로 예측되며,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의 지출을 더해도 GDP의 10~12% 정도이므로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다. OECD 국가 중 13개국이 이미 GDP 10% 이상을 공적연금으로 지출하고 있으나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추세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지금부터 23년 후면 기금이 급격하게 감소해서 이후 16년 만에 완전 소진될 것이므로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기금이 줄기 시작할 때나 고갈에 임박해서는 후세대에 너무 큰 부담을 주고, 세대 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줄 것이다.

독일의 경우 1992년에 8천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도 8300만 명으로 25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는 안정상태(steady state point)이기 때문에 부과식 연금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2017년 총인구 5144만 명, 65세 이상 707만 명에서 2063년에는 총인구 4524만 명, 65세 이상 1853만 명으로 인구는 600만 명 이상 줄어드는데 65세 이상 고령층은 2.5배 이상 늘어나므로 부과식 연금을 시행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OECD의 2015년 '한눈에 보는 연금' 자료에 한국의 2011년 현재 '노령연금과 유족연금에 대한 공공지출'은 GDP 대비 2.2%로 낮은데, 그 이유는 한국의 연금제도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급자 비율이 높지 않고 수급액도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수급액이 급증하게 되면 지출 비중이 그만큼 증가할 텐데 지금부터 미리 지출을 키우면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금개혁, 숙의민주주의로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 거쳐야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연금과 관련된 사안은 많기도 하거니와 하나도 만만한 게 없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전문가마다 주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정부에서 제시한 일정에 따르면 9월까지 정부안을 만들고, 10월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과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이 문제를 단순히 일정에 쫓겨 성급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민간 자문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이번 자문위는 안(案)의 적절성에 대한 토론도 없이 그저 전문가 각자가 내놓은 안을 뷔페식으로 취합한 것일 뿐이며 역대 자문위 가운데서도 가장 날림으로 진행되었다'고 토로했다 한다. 자문위가 이렇게 진행된 이유에 대해 그는 '30여 회 회의를 했지만 전문가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일관된 논리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 접근이 안 되는 민감한 사안을 성급하게 처리했다가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전문가와 정부, 국민이 함께하는 숙의민주주의를 통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미 100년 이상 공적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연금 선진국 중에 연금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영국, 독일, 일본 등의 개혁과정을 보면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고 영국은 연금위원회, 독일은 유럽위원회, 일본은 사회보장개혁검토본부와 같은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논의하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를 놓고 영국의 경우 국민이 참여하는 대토론회를 통해 개혁을 추진했다.

우리도 정부와 노.사.자영자 대표, 전문가로 국민연금개혁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치열한 토론과 해외 사례를 검토하여 개혁안을 만들고, 전 국민이 참여하는 대토론회를 열어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얻을 때까지 토론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5년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재정계산제도를 없애고 보험료율이나 가입연령, 수급연령 등 주요 기준은 출산율, 정년, 평균수명, 경재성장률 등과 같은 관련 변수의 변동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자동조정시스템을 만들어 운용하도록 하고,  자동조정시스템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예를 들면 통일과 같은 커다란 변수가 있을 때만 재정계산 등을 통해 제도를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제도의 건전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정기적인 불필요한 논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스트레스도 해소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서상교 기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개혁 #지급보장 #기초연금 연계 #숙의민주주의 #사회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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