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대비' 헛스윙 그만 하고 잽 좀 날리자

집에선 전기세 걱정하는데 매장에선 에어컨 팡팡... 내년은 어쩌려고

등록 2018.08.31 18:53수정 2018.08.3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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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하나로 폭염을 버텨야 하는 쪽방 ⓒ 계대욱


'맴~ 매앰~ 맴~ 매앰~'

밤낮없이 울어대던 한여름 매미의 맹렬했던 울음소리처럼 올해 폭염도 그 기세가 거셌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였던 111년 만의 폭염은 가히 기록적이었다. 속절없이 늘어나는 수천 명의 온열질환자에 목숨을 잃는 이들까지 끊이질 않았으니 살인적인 폭염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 참혹했던 더위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에게 더 맹위를 떨쳤고, 폭염 불평등이라는 말을 곱씹게 했다.

국내 최대 에너지 전문 NGO 네트워크인 에너지시민연대는 올해 서울을 비롯한 8개 시·도의 취약계층 521가구를 대상으로 7차년도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의 일환으로 대구환경운동연합은 대구쪽방상담소와 함께 지난 6월 말 대구 중구와 북구 일대 56가구를 조사했고, 그중 쪽방 48가구를 분석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1300여 개 쪽방이 있고, 등록된 거주인은 800명 정도다. 이에 비하면 조사한 가구 수가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쪽방이 대부분 비슷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어 그 연장선에서 쪽방의 열악한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여인숙이나 상가건물에 수십 개의 작은 방이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 모두 1970년대 또는 그 이전에 지어진 노후주택으로 평균 1.63평의 좁은 주거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31가구는 단창, 5가구는 아예 창문조차 없었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인 6월 말이었는데도 쪽방은 찜통이었다. 안에서 설문을 하는 동안 땀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실내외 온도랑 습도를 측정하니 실내온도는 실외보다 평균 0.3℃ 낮았고, 실내습도는 실외보다 2.4% 높게 나타났다. 집 안팎이 거의 차이가 없는 셈이었다.


단열이 되지 않는 열악한 주거환경이다 보니 폭염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간혹 에어컨이 있는 가구도 있었지만 고장이 났거나 워낙 오래된 제품이라 전기요금 때문에 대부분 아예 틀지 않았다. 선풍기 하나로 가마솥더위를 버텨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응답자 48명의 평균연령은 65.3세, 그중 노인세대 26가구의 평균연령은 72.7세로 대부분 1인 가구였다. 이 가운데 20가구가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했고, 구역질·구토, 호흡곤란, 관절염이나 당뇨 같은 지병 악화 등을 경험한 이들도 있었다. 고령에 혼자인 분들이 많으니 건강에 대한 염려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40℃의 화염지옥에 몸부림치는 주거빈곤층! 문재인 정부는 즉각 폭염재난 선포를 하라!" 기자회견(2018년 7월 27일) ⓒ 계대욱


폭염이 재난이자, 당장 생존의 문제인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을까?

에너지효율 개선 및 보급, 요금 할인, 연료비 지원 등 1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에너지복지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혹한기 난방 부분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폭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그에 준하는 실질적인 혹서기 대책 마련과 지원책이 시급하다. 폭염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시대적 과제임에도 뒷짐 지고 있는 건 아닐는지.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 기상 이변 같은 말을 너무 오랫동안 들어와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일까? 연일 40도를 웃도는 수은주가 어쩌면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때아닌 폭우와 폭설, 혹한과 폭염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고 그에 따른 피해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기상 이변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지구 전체의 현상이라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폭염은 더 넓게 퍼지고, 더 오래가고, 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예견된 일이었으나 대비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사상 최악의 기록적 폭염 앞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것'이 최선일 리는 없을 터.

더 늦기 전에 폭염의 근본적인 원인과 마주해야 한다. 2017년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OECD 4위에 세계 7위, 10년간 배출 증가율은 24.6%로 OECD 2위이다. OECD 평균 배출량이 8.7% 줄어든 것과 대비되고, 세계 평균 증가율 11.2%보다도 2배 이상 높다. 부끄럽고 참담한 성적표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수요 관리 방안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떠나버린 버스 꽁무니만 바라보는 꼴이 되고 만다. 폭염마저 '각자도생'으로 국민들을 떠밀 순 없지 않은가.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앞에 온 국민이 그로기 상태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는 국민을 위해 가드를 올리고 기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카운터 펀치 한 방은 수많은 잽 다음에 오는 법. 폭염을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 에너지 취약 계층의 생활 속에서 현 대책의 한계와 보완점 찾는 것부터 폭염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꾸준히 줄여나가는 국가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일까지. 정부와 지자체가 날릴 잽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연신 헛스윙만 휘두른다. 마치 모든 국민이 누진제의 희생양인 양 누진제 폐지 여론이 들끓고 언론은 '전기요금 폭탄'을 내세워 기름을 붓는다. 이번 정부도 예전 정부와 다를 바 없이 한시적인 전기요금 감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오줌이라도 눠서 언 발이라도 녹이면 좋으련만 이내 오줌이 얼어붙을 게 뻔하다. 전기요금 몇 푼 깎아주는 생색내기에 국민들이 그토록 몸을 떨 만큼 열광한단 말인가.

전력소비 양극화에 대해 설명하는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 ⓒJTBC 밤샘토론 96회 갈무리 ⓒ 계대욱


우리나라 가정용 전력 소비는 OECD 26위, 산업용·일반용을 포함하면 세계 8위 전력 소비 국가가 된다. OECD 국가들은 산업이 30~40%를 전력으로 쓰고 있지만 우리는 산업이 60%를 사용하고 가정은 13%밖에 되지 않는다. 전력 다소비 10대 기업과 2150만 가구의 전력 사용량이 맞먹는다.

집에선 에어컨을 틀지 말지 벌벌 떠는데 매장에선 문을 열어젖히고 펑펑 냉방하며 영업을 한다. 이러한 전력 소비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간다. 단순한 요금 감면이 아니라 체질 개선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나아가 전기요금 현실화 방안 또한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전환에 발맞춰 전기요금 체계를 손보고, 에너지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필요하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모순이듯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전환'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툭, 툭, 계절을 다하고 나무 아래로 매미가 떨구어져 있다. 바스락거릴 듯 메마른 매미 모습에 폭염으로 쓰러진 사람들이 겹쳐 보인다.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연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다음 해에 맞이하게 될 폭염은 어떤 수식어를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까? 툭, 툭 차갑게 식어 버린 매미처럼 폭염을 둘러싼 뜨거웠던 논쟁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식어버릴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대구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지빠귀와 장수하늘소> 09+10월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폭염 #전력소비 #에너지전환 #누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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