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회 앞에서 300일 노숙한 이유

[현장] 특별법 제정 요구 300일 노숙농성 기자회견... "국회 직무유기 강력 규탄"

등록 2018.09.03 13:25수정 2018.09.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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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인들이 3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농성 30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국회 정문 울타리에 건 대형 걸개. ⓒ 소중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인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농성 30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더 이상 형제복지원 사건을 방치하지 말고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국회 정문 앞 노숙농성 301일째 되는 날인 3일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별법 제정을 통해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명명백백한 진상규명 및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및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2016년 7월 6일 입법 발의된 형제복지원 관련 법안은 벌써 3년째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계류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라며 "우리는 국회의 직무유기를 강력히 규탄하며 더 이상 국회의 외면과 방치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특수감금 무죄 판결, 전두환 정권 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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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인들이 3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농성 30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 소중한


형제복지원은 1975년~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된 부산 지역 최대 수용시설(약 3000명)로 불법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유린이 자행된 곳이다. 형제복지원에서 숨진 이들은 확인된 것만 500여 명에 달한다.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아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이었다. 피해자들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위헌적 성격의, 그것도 법령도 아닌 훈령에 의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며 어느 한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경찰력과 행정력이 동원된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이자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1987년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제복지원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 등은 횡령죄 등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1987년 시설 폐쇄 후 형제복지원 사건은 잊히는 듯했으나 2012년 피해자 한종선씨가 국회 앞 1인시위를 벌이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를 포함한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 농성, 릴레이 1인시위, 서명운동, 토론회, 공청회, 증언대회, 삭발, 단식, 국토 도보행진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2017년 11월 7일부터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1일째 국회 앞 노숙농성 중이다.

한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회 앞에서 연좌농성, 삭발, 단식 등 안 해본 것 없이 다 해봤다"라며 "저 이외에도 국회 앞의 너무 많은 슬픔과 아픔들을 보면서 지쳤고, 외롭고, 괴로웠다"라며 떠올렸다. 한씨는 "하고 싶은 한 마디 뿐이다, 우리가 왜 잡혀갔는지, 우리가 부모를 잃어버리고 30년 넘는 세월을 왜 눈물 속에서 살았어야 했는지 밝혀달라는 것이다"라며 "국회는 우리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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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인들이 3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농성 30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들이 이날 국회 정문 울타리에 설치된 걸개 앞을 지나고 있다. ⓒ 소중한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 담당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당시 공소를 제기한 부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특수감금죄였는데 지법에서 지법, 고법에서 모두 (특수감금죄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음에도 대법원은 계속 무죄를 고집했다"라며 "당시 대법원이 잘못 판결한 것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 무죄 판결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외압을 받은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덧붙였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비상상고 권고를 검토 중이다. 비상상고는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사건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특수감금죄를 유죄로 판결한다면,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내무부 훈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 감금이란 게 법원의 판결로 확정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과 함께 활동해온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예술인 문화행동'은 이날 국회 정문 앞 울타리에 대형 걸개를 걸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위해 전국각지의 시민들이 만든 조각보를 하나하나 연결한 걸개였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비슷한 피해를 입었던 선감학원 피해자들과 군 피해자 가족 등도 걸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김신윤주 작가는 "이렇게 아프다고 외치는 이들을 사회와 국가가 치료해주지 않아 시민들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라며 "국가폭력의 아픔이 빨리 낫기를, 국가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걸개 설치 외에도 이날 오후 9시까지 피아노 연주, 낭독극, 퍼포먼스, 전시회, 노래 등을 선보이며 문제 해결을 요구할 계획이다. 김신윤주 작가, 민중가수 안계섭, 프로젝트 그룹 두시간두시간은네시간, 음악가 경하&세민, 출장작곡가 김동산, 음악가 노승혁, 재즈피아니스트 강상수, 미디어 퍼포먼스 아티스트 정자영, 독립기획자 임인자, 마임이스트 유진규 등이 이날 예술활동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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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인들이 3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숙농성 30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은미 인권연극제 대표가 국회 정문 앞에 걸린 걸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소중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국회 #노숙농성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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