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을 구합니다".. '중소기업'이 된 일베

[게릴라칼럼] 채용공고까지 낼 정도로 성장... 그저 '표현의 자유'로 놔둬야 하나

등록 2018.09.06 12:04수정 2018.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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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정문에 설치된 '일베' 상징물 조각상 지난 2016년 5월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설치된 극우성향 사이트 '일베' 상징물 조각상앞에서 홍익대 조소과 교수들이 조각상을 살펴보고 있다. 이 조각상은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 모양을 하며 회원을 인증하는 손 모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되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이 구조물은 누군가가 훼손, 철거됐다. ⓒ 권우성


최근 온라인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라온 70대 여성 사진을 최초 촬영·유포한 인물이 서초구청 공무원으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게다가 '일베 + 성매매 + 박카스 할머니'라니. 매체들의 구미가 당기는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헌데 이 사건에서 지탄의 대상은 그 공무원에 그쳐서 괜찮을 걸까.

이명박 정권 당시 잉태되고, 폭식투쟁 등 박근혜 정권에서 꽃을 피웠던, 그 서초구청 직원이 자랑삼아 올린 게시물을 퍼갔던 일베를 한국사회의 어두운 일면으로 남겨놔도 되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일베 사용자와 운영자들은 별 탈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 일베를 운영할 직원 공고까지 버젓이 나돌았고, 일베 사용자들은 그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 커뮤니티 운영에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분
- 출퇴근 가능하신 분(대구 수성구)
- 일베의 구성원으로서 일베의 발전과 함께할 수 있는 분
- 일베유저/일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이념을 가지신 분 우대


최근 소셜미디어 상에서 화제가 된 '일간베스트 저장소 2018 채용공고'의 인재상 중 일부다. 주 5일 근무, 하루 8시간 근무요, 점심시간도 제공하고, 월차도 준단다. 연봉은 2050만원에 1년 이상 근무 시 퇴직금도 지급하겠단다. 조건만 보면 박봉의 어느 IT 중소기업인 줄 착각할 지경이다.

일베의 정체성

"일베의 발전"을 도모하겠단다. 그 발전이 사회적 피로감을 높이는 게시물들을 양산해내고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목적임은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더군다나 "일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이념"이라니, 그런 이념이 존재는 하는 건지, 설마 그 정체성이 일베 박카스남과 같은 불법과 위법으로 수렴되는 성매매와 음란물을 향한 욕구로 대변되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채용공고는 일베 사이트에서만, 인터넷 상에서만 음성적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이 공고는 일반 구직 사이트에 "활발하고 창의적인 직원을 모집합니다"란 제목으로 버젓이 올라와 있다. 한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업체명은 (주)아이비고, 회사 주소는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담당 업무는, '일간 베스트 컨텐츠 생산'이란다.

이 채용공고가 문제적인 이유는 어렵지 않다. 이 당당한 채용 공고는, 비록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지언정 수익만 창출하면, 존재 자체가 위법이나 불법이 아니라면 그만이라는 전제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채용공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6년에도 일베는 운영자 모집 공고를 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매번 그런 식이다. 아니 태생부터 그랬다. 한쪽에선 '표현의 자유'를 강변했고, 또 한 쪽에선 법적 현실성이 문제가 됐다.

사이트 자체를 어찌할 수 없었던 현실 앞에 논란만 지속됐다. 일베로 인한 사회적 피로감이 누적되는 사이, 그 일베라는 존재감 자체는 무뎌진 감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채용공고가 나돌 정도로 일베는 부지불식간에, 아니 긴 시간 동안 점차적으로 학문적이거나 수사로서가 아닌 실제적인 '우리 안의 일베'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가 일베를 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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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2014년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한 남성이 피자를 먹고 있다. ⓒ 이희훈


워마드 편파수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9일, 경찰청이 내놓은 해명은 "일베도 수사한다"로 요약된다. 경찰청은 "일베는 올해만 69건의 사건을 접수해 53건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워마드보다 일베에 대한 수사와 검거가 더 많았다는 취지의 해명이었다.

심지어 일베는 수사에 협조적이란 근거도 들었다. 당시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은 "일베의 경우 특별히 협조적이라기보다는 서버가 한국에 있어서 운영진 측에 압수수색 영장을 보내면 (수사 대상의) 인적사항이 회신 온다"며 "(일베 운영자는) 음란물 유포 방조죄 구성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베 운영자는 수사 대상이 된 적 없다"고도 했다. 워마드 운영진의 비협조를 강조하기 위한 설명이었다.

그렇다. 역설적이게도, 일베 운영자는 수사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오히려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 들어 여타 커뮤니티 사이트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누가 그 일베를 키웠는가.

"폭식투쟁이 잘못됐다고 성찰할 수 있는 20대 우파 청년들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일베 내) 20대들은 아직 자정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베 회원들의 상당히 사회일탈적인, 어떻게 보면 반인류적인 행태가 나타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에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회지도층, 언론에서 좀 정확히 비판할 건 비판해주고 이 친구들이 좀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사실 많이 소홀했죠. 그런 부분은 보수언론이나 그리고 우리 새누리당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많이 반성을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지난 2014년 9월, 이른바 일베의 폭식투쟁이 사회적 논란이 된 직후,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위와 같이 발언했다. 일베 사용자들을 자정능력을 가진 20대 우파 청년들로 규정한 뒤, 좀 더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보수언론이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할 일이란 취지였다.

실제로 그랬다. 폭식투쟁 당시 치킨과 콜라를 나눠주며 일베를 독려했던 한 탈북자는 당시 김무성 당대표 시절 새누리당 기획위원으로 영입됐다. 일베가 그의 여당 입성을 열렬히 응원했음은 당연지사다. 어디 그뿐인가. 일베의 게시글들을 자신의 정책 논리에 참고했던 여당 서울시장 후보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였던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정몽준 캠프가 그랬다.

"요새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베를 보고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지난 2013년 11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러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알고 보니, 실제가 그랬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검찰 조사 결과, 청와대 뉴미디어정책실 내 최순실 사단은 실제 일베의 게시물을 SNS로 퍼 나르고, 일베의 글을 취합해 청와대 부속실과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근혜-최순실의 청와대 수준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방송은 어떠한가.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는 것으로 모자라 일베 글을 사내 게시판에 퍼 날랐던 간부가 버젓이 <100분 토론> 담당 부장 자리를 꿰찼던 과거 MBC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잊을 만 하면 한번 씩 각 방송사의 화면을 잠식했던 일베 로고들과 그로 인한 논란들은 어찌 할 텐가. 수년 째 이어져온 그 사회적 피로감들을 함께 키워오고, 일베의 인지도를 올려준 것과 마찬가지인 그 공범들은 누구인가.

공범들

결국 보수정권이 키워온 일베는 이제 채용공고까지 아무렇지 않게 내세우는 '기업'이 됐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자들은, 그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납득할 만한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근혜 청와대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역시나 제대로 됐다는 소식은 들어 본적이 없다.

일베 게시물들을 보고 자란 세대가,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또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2030세대가, 젊은 층이 지금 유튜브·아프리카TV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러는 사이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한 이 '일베'를 그저 '우리 안의 일베'로 놔둬도 되는 걸까.

워마드 논란의 근간도 거기에 있다. 워마드를 탄생시킨 것이 결국 일베였다는 문제의식을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 지난 보수 정권의 묵인 하에, 육성 하에 비대해져 버린 그 혐오의 기지를, 익명성에 숨은 그 반인권적이고 공격적인 인터넷 '남성' 문화를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실질적인 방향을 고민할 때다. 이것을 그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놔둬도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제고 역시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고.

결국은 눈앞의 제 정치적, 경제적 이유를 근거로 일베를 양성한 '어른'들의 책임일 것이다. 그를 통감하는 것이 먼저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를 기업으로 육성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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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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