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박병대로 향하는 검찰의 칼

[중간점검]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불거진 사법부... 전직 대법관 수사 불가피

등록 2018.09.06 09:42수정 2018.09.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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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철저 수사하라" ⓒ 권우성



결국 '비자금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이라고 수사를 거부할 수는 없다"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수사 협조 의사를 밝혔다. 이후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면서 당시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거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나오며 검찰 수사는 대전환점을 맞는 모습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비자금 의혹 수사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법농단 수사에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사법농단 의혹 사건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일부 법관들의 일탈 행위가 아닌 다수 대법관과 양 전 대법원장까지 얽힌 '조직적 범죄'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사법농단의 윗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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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7년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검찰은 지난 4일 법원행정처가 2015년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을 현금으로 인출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해당 항목으로 3억 5000만 원을 교부받아, 2억 7200만 원을 일선 법원으로 내려 보냈다.

이후 일선 법원은 허위 서류를 작성해 현금을 인출한 뒤 이 돈을 다시 법원행정처에 올려 보냈다. 전달은 인편으로 은밀하게 이뤄졌고, 법원행정처는 예산담당관실 금고에 비자금을 보관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돈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활동을 명목으로 고위법관들에게 주는 격려금과 대외활동비로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또 일선 법원에 보낸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7800만 원은 예산 목적과 관련 없는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 9명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포함해 기획조정실장, 공보관 등이 적게는 한 달에 40만 원부터 많게는 100만 원까지 1년 2개월 동안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국가예산을 유용하는 일에 일선 법원까지 동원된 정황은 이 사건이 단순히 임 전 차장 선에서 이뤄진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이 일은 임 전 차장보다 윗선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4일 검찰 관계자는 "행정처 차장급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시자는) 차장 윗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비자금 관련 문건을 다수 확보했고, 법원의 예산업무 담당자들의 진술까지 확보해놓은 상태다.

이 같은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검찰은 향후 사법농단의 윗선을 집중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전직 대법관들이 이미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 대법관들은 모두 법원행정처장으로 사법부 행정업무를 총괄했던 인물들이다. 양승태 전 대법관까지 수사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혐의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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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이 계속 불거지는 가운데 지난 8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이 열리고 있다. 고영한 대법관이 퇴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선 박근혜 청와대가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한 의혹에는 차한성 전 대법관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이름이 거론된다. 박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관련 소송과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기초의원 지위확인소송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고영한 전 대법관도 전교조 재판 개입 의혹과 2016년 부산에서 발생한 판사 비위 사건을 덮으려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연루돼 있다. 검찰은 이들을 조사하기에 앞서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전·현직 법관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검찰의 소환조사 1순위로 떠오른 인물은 박병대 전 대법관이다. 그는 각종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문서가 집중 작성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비자금 조성 의혹도 이때 발생했다. 

빗장 건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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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이 2014년 10월 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법원행정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박 전 대법관은 사법농단 사건의 '키맨'이라고 할 수 있는 임종헌 전 차장과 가장 오랫동안 임기를 함께했다. 검찰은 아직 임 전 처장을 부르지 않았지만, 윗선으로 가는 연결고리인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법 부장판사)까지 소환조사한 상태다.

이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을 대법원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 때 임 전 차장의 지시로 헌재 내부정보를 파악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내용이 박병대 전 처장은 물론 양승태 전 원장에게까지 보고됐다고 보고 있다. 또 검찰은 통합진보당 기초의원의 퇴직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해서도 박 전 대법관이 해당 재판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재판 연기를 지시해 추후 결과까지 보고받았다는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을 출국금지하는 한편 여러 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법원은 박 전 대법관 사례뿐 아니라 재판거래의 구체적인 정황과 각종 추가 의혹 관련 압수수색 영장청구도 번번이 기각했다.

그러나 조직적 관여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한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나왔다. 법원은 계속 '임의제출 가능성'이나 '범죄혐의 소명 부족'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청구를 기각할 수 있을까. 명분은 이미 약해졌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 #검찰 #임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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