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 EU 탄소 40% 줄일 때 한국 83% 증가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25] 국내 기후변화 대응

등록 2018.09.06 10:22수정 2018.11.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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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채택한 배출전망치(BAU) 방식을 선진국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방식은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비해 겉으로만 효과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를 가져오니까요."

지난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보완, 쟁점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박용신(49) 환경정의포럼 운영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지 부족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지난 2009년부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준으로 설정한 BAU(business as usual), 즉 '특별한 감축 노력이 없을 때 예상되는 배출량' 방식을 선진국처럼 '절대량'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BAU는 장기적 경제성장률, 국제유가 등 여러 전망치를 바탕으로 산출되는데, 전문가 입장에 따라 이 숫자가 과대 추정돼 결과적으로 탄소배출 감축량이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국제기관 "한국 기후변화 대응 매우 불충분" 지적
 

지난 5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보완, 쟁점을 논하다’ 토론회 현장. 여러 발표자는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노력에 발맞춰 보다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나혜인


영국의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AT)은 지난 4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불충분하다(highly insufficient)"고 질타했다. 지난 2016년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Climate Villain)'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CAT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낮고 이행 방법도 소극적'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 기관은 "파리협정의 '지구온도상승 1.5도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약속한 2030년 배출량(5억3600만t)보다 3억t 이상 낮은 2억400만t 이하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BAU 대비 37%(3억1500만t) 줄이겠다는 국가별자발적감축목표(INDC)를 지난 2015년 유엔에 제출했다. 하지만 세계 7위인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규모(2015년)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규모(2017년)에 비추어 과연 적정한 목표치인지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었다.


프랑스, 독일 등 기후변화대응 선진국이 모여 있는 유럽연합(EU)은 1990년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기로 약속했고, 최근 이를 45%로 올리는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2030년까지 특별한 감축 노력이 없을 때 늘어날 배출량을 가정한 뒤 그걸 기준으로 37% 감축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2030년 (목표)배출량 5억3600만t은 1990년 배출량 2억9290만t보다 83% 많다. EU가 1990년 배출량에서 40%를 줄이겠다고 할 때, 우리는 거꾸로 80% 이상 늘어난 양을 배출목표치로 제시한 것이다.

이헌석(44)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난 6월 1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BAU 대비 37% 목표치는 우리가 '감축해야 할 양'이 아니라 '감축할 수 있는 양'을 기준으로 설정한 소극적 수치"라며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더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배출 목표치는 그대로

문재인 정부는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감안, 2016년 수립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 기본로드맵'을 수정·보완해 지난 7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여기서도 전체 배출량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수정안의 핵심은 2016년 당시 37% 전체 감축분 중 25.7%(2억1900만t)였던 국내 감축분을 32.5%(2억7700만t)까지 늘리는 것이다.

국내 기업 등의 감축 노력 대신 손쉽게 해외에서 탄소배출권 구매 등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 부분을 줄인다는 취지다. 그러나 여전히 4.5%는 해외 감축분으로 남아 있고, 늘어난 국내 감축분에서 에너지전환 부문 감축량(5800만t)을 비롯해 산업·건물·수송 등 세부적인 감축 방식은 확정하지 못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손민우(32)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돈을 내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도 된다'는 배출권 거래제는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37% 목표치 전부를 국내 감축분으로 전환하고, 배출권 살 돈으로 국내 기후변화 대응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계는 37% 전체를 국내에서 감축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환경단체 등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산업계는 국제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 Pixnio


한 대기업 계열 연구원의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에서 산업계의 감축 할당량은 11.7%에서 20.5%로 올랐는데, 실제 (에너지 집약 산업인) 철강산업은 생산단가 자체가 높아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분야"라고 우려했다.

그는 "경쟁국인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탄소감축부담을 줄이기 위해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고, 일본 역시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만 탄소 감축 규제를 강화한다면 국제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자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큰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나, 기업은 어쨌든 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라며 "정부는 산업계와 충분히 협의해 기업 부담을 줄이고 국제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한국은 2030년에도 석탄발전 1위

유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퇴출'에 앞장서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덴마크 등 유럽 주요국은 캐나다, 멕시코 등 20개국과 손잡고 오는 2030년 무렵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탈석탄 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을 결성했다. 프랑스는 2021년, 영국과 이탈리아는 2025년까지 석탄발전을 퇴출할 계획이다. 이들 국가는 늦어도 2040년에는 경유·휘발유 등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까지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1990~2015년 유럽연합(EU) 발전에너지원 구성비 변화 추이.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량은 1990년 80% 수준에서 2015년 50%대로 떨어졌다. 기존 연료를 대체한 건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다. ⓒ 국제에너지기구(IEA)


화석연료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따르면 28개 EU 회원국의 199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생산량 대비 12.5%에 불과했고, 이중 95%를 수력이 차지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전체 발전량 중 30%가량을 재생에너지원이 담당하게 됐으며, 수력뿐 아니라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다양한 에너지원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1990년 전체 전력생산량 중 79.7%를 차지했던 석탄(40.5%)·석유(8.6%) 등 화석연료와 원자력(30.6%) 비중은 2015년 54%로 줄었다.

반면 '탈 화석연료, 탈 원전'의 친환경 구호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은 속도를 크게 내지 못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2017년 현재 6.2%)까지 확대하겠다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모호한 상태다.

지난해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까지 올라가더라도 여전히 석탄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1%(2017년 현재 45.3%)로 가장 높다. 석탄발전은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미세먼지 때문에도 선진국에서 추방 대상이 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오는 2022년까지 7개의 발전소가 더 건설된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두 바퀴로 가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화석연료와 원전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제와 함께 '에너지 다소비구조'를 바꾸는 정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헌석 대표는 "현재 에너지 정책은 다분히 공급 중심으로 짜이고 있다"며 "석탄·원전 등 위험한 에너지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발전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등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우리도 석유화학·조선·철강·자동차 등 주요 산업구조 재편과 에너지 효율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에너지기업 비피(BP)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1차 에너지(석탄·석유·천연가스·우라늄 등 천연자원 상태에서 공급되는 에너지) 소비량은 286만석유환산톤(TOE)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

나라별 인구 격차를 제외한 1인당 소비량(5.6TOE) 역시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호주에 이은 5위다. 2015년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1만558킬로와트시(kWh)로 미국(1만2833kWh)보다는 낮지만 호주(9892kWh), 일본(7865kWh), 프랑스(7043kWh), 독일(7015kWh), 이탈리아(5099kWh), 영국(5082kWh)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에너지 효율도 OECD 평균보다 떨어진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energy intensity)는 0.17로, 34개국 중 30위다. 에너지 원단위는 1차 에너지 소비량을 GDP로 나눈 값으로, 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양을 나타내는 지표다. 숫자가 작을수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했음을 의미한다.

아일랜드, 스위스(이상 0.07), 영국(0.08), 덴마크(0.09), 독일(0.10) 등 유럽 선진국을 비롯해 일본(0.11), 미국(0.15) 등 세계 주요 나라는 우리보다 에너지 원단위가 낮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GDP를 생산하더라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1.5~2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OECD 평균 에너지 원단위는 0.13으로 우리보다 30%가량 낮다.
 

2015년 OECD 주요국 1인당 전력소비량. ⓒ 국제에너지기구(IEA)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력 소비량이 산업계에 편중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27만8828메가와트시(MWh)로 총 전력소비량의 56%를 차지했다. 주택용은 13.7%에 그친다. 지난 10년간 증가폭을 살펴봐도 산업계의 전력소비량은 총 8만3892MWh 늘어 연평균 4.1%의 증가율을 보였다. 일반용은 연평균 증가율이 3.1%, 주택용은 2.3%였다. OECD 대부분의 국가는 전력소비량이 산업, 상업, 주거 부문으로 비교적 균등하게 나뉘어 있다.

값싼 전기요금이 낳은 에너지 비효율 손 봐야

우리나라 전반의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데에는 값싼 전기요금이 큰 몫을 한다. OECD 평균보다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이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주택용, 산업용 모두 OECD 평균보다 낮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OECD 평균 주택용 전력 판매단가는 kWh당 16.2센트(약 181원), 산업용은 10.1센트(약 114원)로, 각각 11.9센트(약 133원), 9.6센트(약 107원)인 한국보다 36%, 6.5% 높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은 모두 OECD 평균보다 높은 전력단가를 책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주택용은 kWh당 22.3센트(약 250원)로 한국보다 두 배 가까이 높고, 산업용도 평균 16.3센트(약 183원)로 70% 가까이 더 비싸다.
 

2016년 OECD 주요국 주택용·산업용 전력 판매단가. ⓒ 국제에너지기구(IEA)


이헌석 대표는 "에너지 전환에는 당연히 비용이 들어간다는 전제부터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재생에너지 20% 확대'라는 목표치만 제시해서는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오른다' '오르지 않을 것이다' 논쟁에 치우치기보다 에너지전환에 따라 '당연히'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야 화석연료·원전 중심의 발전 구조와 에너지 과소비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이행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민우 캠페이너 역시 "에너지 전환은 발전뿐만 아니라 산업, 교통, 난방, 가정 등 사회 시스템 전체가 변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유진(44)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21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예를 들어 산업계에는 낮은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고 에너지 효율화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등 기업이 에너지전환을 '부담'이 아니라 '의무'로 인식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수송 부문은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어떻게 하면 자가용 비중을 줄이고 대중교통으로 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 부문 역시 2025년부터 신축 건물에 대해 제로에너지 시스템 적용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최대한 앞당겨 시행하고, 기존 건물도 단열개선 등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효율화에 힘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냉·난방 효율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기후변화 #에너지전환 #EU #한국 #파리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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