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만 프리랜서여, 홀로 일해도 뭉쳐야 산다

[대한민국 프리랜서 잔혹사④] 협동조합 등으로 안전망 모색... 법·제도 이제 걸음마

등록 2018.09.14 07:41수정 2018.09.1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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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프리랜서가 전현무, 김은숙은 아니다. 아니 두 사람은 극소수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자의로든 타의로든 프리랜서가 됐지만, 대부분은 저소득의 늪에 빠져있다. '홀로'라서 더 '잔혹한' 프리랜서의 세계를 <오마이뉴스>가 네차례에 걸쳐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다.[편집자말]

통번역포럼 중인 번역협동조합 번역협동조합은 1년에 한 번씩 통번역포럼을 열어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 번역협동조합



"정규직 노동자로 회사에 다니다 보면 각종 교육을 통해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프리랜서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 혼자 자신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낮은 수준의 업무에서만 맴돌게 되고 고용불안, 저소득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10년 넘게 프리랜서 IT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박상준(45)씨는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요즘 IT개발 직종의 대부분이 계약직 아니면 프리랜서"라며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가 된 이들은 사회적 안전망도 없이 사회에 내던져지고 있다"라고 했다.

박씨의 말처럼 프리랜서들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 일을 구하는 것부터 작업을 하다 겪는 각종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까지, 모든 문제를 혼자 풀어내야 한다. 일하다 어려움에 봉착해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노동자도 사장님도 아닌 애매한 존재라, 모든 사회보장체계에서 빗겨나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들은 스스로 뭉쳐,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고 있다.

스스로 뭉치다... 협동조합

지난 2013년 출범한 번역협동조합은 프리랜서 통·번역가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단체다. 이들은 계약 단계부터 개인이 아닌 협동조합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교섭력이 더 강하다. 간혹 일하고 수당을 다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조합적립금으로 보전해주는 등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운영 중이다.


홀로 일만 하다 함께 일을 잘하는 법을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협동조합의 또 다른 장점이다. 번역협동조합은 1년에 한 번씩 통번역 포럼을 열어 관련 정보 등을 공유한다. 최재직 사무국장은 "프리랜서 혼자서는 통번역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라며 "포럼은 물론 매달 온오프라인 모임 등을 열어 이야기를 나눈다"라고 했다.

박상준씨도 지난 4월 동료 프리랜서들과 함께 '개발자교육협동조합 아이티쿱(이하 아이티쿱)'을 만들었다. 이들은 조합을 토대로 만든 공부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이상 모여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 고충도 털어놓는다. 박씨는 "프리랜서들은 계약 관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 물어봐야 하는지 모른다"라며 "협동조합이 하나의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변호사·노무사 등과 제휴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비슷한 시도는 외국에서 먼저 나왔다. 1998년 문화예술을 위한 공제회사로 벨기에서 시작, 프랑스·스웨덴 등 유럽 9개 나라로 퍼진 스마트(SMart)는 2016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현재 조합원 수는 1만 7000여 명이며 문화예술뿐 아니라 IT, 교육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스마트는 조합원 수입의 6.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대신 프리랜서 혼자 처리하던 행정·회계·재무·법무 등 계약 및 사업관리는 물론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과 장비,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제공한다. 또 프리랜서들에게 산재보험료 일부를 지원해 사회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리랜서 보호' 걸음마 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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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plash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국내 프리랜서가 최소 42만 명, 서울시에만 7만 명 있다고 추산한다(2017년 기준). 업무형태가 다양한 프리랜서 특성상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이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5년 된 번역협동조합의 조합원은 61명, 이제 갓 출범한 아이티쿱은 5명이다.

다수지만 '홀로'라 괴로운 프리랜서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세계적 흐름이다. 프리랜서 권익 보호를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 프리랜서 네트워크 정재석 대표는 "다양한 이유로 프리랜서는 점점 늘어나는데 기존 법체계는 프리랜서와 맞지 않다"라며 "이런 문제의식 아래 미국, 일본 등은 프리랜서 관련 실태조사와 법안 마련 등에 나서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 뉴욕시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프리랜서 보호법'을 시행 중이다. 이제 뉴욕에서 프리랜서가 120일 동안 총액 800달러 이상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반드시 계약서를 써야 한다. 또 여기에 프리랜서가 제공하는 작업 내용과 그 급여, 급여 지불 일자를 모두 명시해야 한다. 프리랜서 보호법은 또 고용주의 보복 행위 금지,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도 고민이 시작됐다. 서울시는 지난 2~4월 프리랜서 10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프리랜서 계약지침 등을 제정하고 피해구제·법률상담 등이 가능한 공정거래지원센터를 만드는 것을 고려 중이다.

서울시의회에서는 전국 최초로 '프리랜서 권익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조례안'이 지난 8월 21일 나왔다. 조례안은 ▲ 프리랜서 권익보호와 안정적인 활동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 프리랜서 공정거래 지침을 마련하며 ▲ 서울시 및 산하기관·자치구 등에 준수 의무를 부여하고 ▲ 프리랜서의 부당계약·저작권 침해 등 불공정거래 피해구제 지원 등을 위한 '프리랜서 공정거래 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대표발의한 서윤기 운영위원장(더불어민주당·관악2)은 "노동 형태가 많이 변하면서 조직화하지 않은 개인들의 노동권은 굉장히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 공공기관에도 프리랜서들이 많다"라며 "이들의 노동권부터라도 보장해주는게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서울시 프리랜서 조례안을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도 프리랜서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적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프리랜서 잔혹사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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