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감당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삶이니

[시와 생각] 박남준,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등록 2018.09.09 13:45수정 2018.09.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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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 박남준

먼 길을 걸어서도 당신을 볼 수 없어요
새들은 돌아갈 집을 찾아 갈숲을 새로 떠나는데
가고 오는 그 모두에 눈시울 붉혀가며
어둔 밤까지 비어가는 길이란 길을
서성거렸습니다
이 길도 아닙니까 당신께로 가는 걸음
차라리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섰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가지며 살아간다.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 꿈의 성취,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 등 그 형태는 다양하다. 저마다의 소망의 형태는 다르고 다양하지만,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동일하다.

시인 또한 소망을 품고있는 한 사람이다. 그 소망이 이뤄지길 열망하고, 노력한다. 그 소망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수도, 시인이 꿈꾸는 가치가 실현된 세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시인은 소망을 품지만 앞길은 막연하다. 추구하는 가치가 이뤄진 세상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명확하지 않다. 돌아갈 집이 있어 갈숲을 아무렇지 않게 떠나는 새들과는 달리 시인이 돌아갈 곳은 딱히 없어 보인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과 시인의 현실은 대조된다.

시인은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듯하다. 처음에는 가치실현을 위해 함께 했던 동지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이다. 거듭 찾아오는 실패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그래서 시인은 서성거린다. 가고오는 모두에게 눈시울 붉혀가며 서성거린다. 잡지 못한다. 명확하지 못한 목적지를 향해가기에 섣불리 잡지 못하고, 당당히 걷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차라리' 세상이란 길목에 뿌리박는 나무가 된다고 한다. '차라리'란 단어가 시인이 체념하고 포기한 듯한 느낌을 준다.


더 큰 숭고함이다. 굳은 의지이다. 의연함과 강한 담대함으로, 세상의 길목에 뿌리박은 나무가 되어, 닥쳐오는 바람을 온전히 견디겠다는 다짐이다. 뿌리박고 서있는 나무에게 바람이 더 가혹하지 않겠는가. 언제 올지 모르는 임을 기다리는 시인의 의지는 강인하다.

비 한 방울, 바람 한 점 없이 얻어지는 열매가 어디 있을까. 오히려 그런 것들로 인해 더 달콤하고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소망을 위해 충분한 인내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인내의 시간을 마주하기보다는 피하려하지는 않는가. 부딪히기보다는 회피하고 더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고 있다. 꿈이라는 것은 막연하기에 현실이라는 것에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시련을 감당해보려고 한다.
이상을 꿈꿔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서 있겠다.
그리고 기다리겠다.
#시 #박남준 #세상의길가에나무가되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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