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성지 마산' 걸맞게 3.15 관련 역사 현장 정비해야"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등, 주차공간 협소하고 화장실도 없어

등록 2018.09.08 15:25수정 2018.09.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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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에 있는 '3.15의거기념탑' 부조다. 이 기념탑은 1962년 7월 10일 건립되었는데, 부조 속 인물들의 복장이 여름을 나타내고 있다. 3.15의거가 일어났을 때는 2016년 3월 15일로 봄이다. ⓒ 윤성효


창원마산은 '민주성지'다. 1960년 3월 15일 일어난 3·15의거, 그리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인양되어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4·11의거', 부마민주항쟁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허성무 창원시장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을 내세우고 있다. 허 시장은 '민주성지 창원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과 '민주주의 문화대전', '10·18(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추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이 많다. 3·15의거 관련 역사 현장을 새로 정비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탐방객이 오더라도 주차공간도 없고, 화장실도 없으며, 특히 잘못된 기념물도 있어 이번 기회에 새로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김영만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와 함께 8일 3·15 관련 역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김영만 대표는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의 입학 동기로,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지냈다.

벽화 가리는 주차 ... 화장실 등 없어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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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 53번지에 있는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로, 2011년 9월 2일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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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 53번지에 있는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로, 2011년 9월 2일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소유권을 갖고 있는 해양수산부는 낚시객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설치해 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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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 53번지에 있는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로, 2011년 9월 2일 '경남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되었다. 벽화 앞에 늘 트럭이 주차되어 있어, 이곳을 '주차금지구역' 지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윤성효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창원 마산합포구 신포동 대한통운 앞 도로변에 있다. 이곳은 우리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4·19혁명을 촉발시킨 장소다.

남원 출신인 김주열 열사가 3·15의거에 가담했다가 행방불명된 뒤, 1960년 4월 11일 이곳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올랐던 것.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4·19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이 이런 역사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와 열린사회희망연대가 2002년 4월 19일 이곳에 표지판을 세웠고, 매년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는 2011년 9월 2일 이곳을 '기념물 제277호'로 지정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 때다. 2003.9m²가 보호구역으로, 바다 15m와 육지 5m, 길이 100m 정도다. 마산 앞바다를 매립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지만,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매립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이곳에는 표지판과 벽화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도로 쪽 벽화 앞에는 늘 트럭이 주차해 있어 탐방객들이 오더라도 편하게 이를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김영만 상임대표는 "이곳은 일년 내내 주차가 되어 있을 정도다. 창원시와 경찰서에 50m 정도만 주차금지 구역으로 해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관련 기관들이 적극 검토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화장실도 없다. 김 대표는 "간혹 사람들이 찾아오고, 안내를 해달라고 한다. 특히 방학 때면 주말마다 단체 탐방객이 온다"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주변에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불편하다. 간이 화장실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신인양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시신인양지 일대는 해양수산부 소유로, 특히 낚시객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문을 설치해 놓았다. 김 대표는 "출입문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물상 보완 필요 ... 주차공간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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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에 있는 '3.15의거기념탑' 인물상이다. 이 기념탑은 1962년 7월 10일 건립되었다. 3명의 인물상은 모두 학생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당시 노동자와 여성 등 시민들이 중심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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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에 있는 '3.15의거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1962년 7월 10일 건립되었는데, 지금도 주변에 주차공간이 없어 불편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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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에 있는 '3.15의거기념탑'의 뒤편에 있는 간이화장실이다. 손을 씻을 수 있는 시설도 없고, 사용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 윤성효


[3·15의거기념탑] 옛 남성동파출소와 옛 마산시청(현 마산합포구청)의 중간 지점에 있다. 1960년 3월 15일 밤, 분노에 찬 시위대가 이곳에 모여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탄, 실탄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싸웠던 현장이다.

이때 여학생과 인근 홍등가의 여성들도 나와 바로 옆의 철로에서 돌멩이를 치마에 싸서 가져와 시위대에 건네며 싸우기도 했다.

기념탑은 1962년 7월 10일 건립되었다.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기념탑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념탑에 새겨져 있는 부조 속 인물상의 복장이 짧은 옷으로 되어 시기적으로 여름을 나타내고 있다. 3·15의거가 일어난 때는 여름이 아니라 초봄이다.

부조는 김찬식(1932~1997, 홍익대 미대 학장) 조각가의 작품이다. 김영만 대표는 "기념탑 제막식이 7월에 열려 여름이었지, 3·15의거는 봄이 일어났다. 부조를 만들 때 고증을 잘못됐고, 그만큼 현장감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기념탑에는 3명의 인물상이 있다. 모두 남녀 학생과 청년을 표현해 놓았다. 김영만 대표는 "인물상을 보면 모두 학생이고, 인텔리 청년이다. 당시만 해도 처음에는 학생보다 노동자와 여성 등 시민들이 먼저 나섰다"며 "가능하다면 인물상에 돌멩이를 치마에 싼 여성과 노동자를 포함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주차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김영만 대표는 "단체 탐방객이 오면, 특히 버스의 경우 주차할 곳이 없어 애를 먹는다. 주변 공터에 주차공간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념탑 뒤편에 간이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손 씻는 시설도 없고, 소변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김 대표는 "사람들한테 화장실이 이곳에 있다가 안내하기 민망할 정도다"고 말했다.

'구명비' 가리는 화단을 그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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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102-6번지에 있는 '3.15의거 구명비'로, 그 앞에 화단이 조성되고 차량이 주차해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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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102-6번지에 있는 '3.15의거 구명비'(원안)로, 그 앞에 화단이 조성되고 차량이 주차해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 윤성효


[3·15구명기념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102-6에 있는, 지금은 도로에 편입된 옛 북마산파출소 자리 바로 아래에 있는 석비다. 일명 '구명비'로 불리는데, 돌이 경찰의 총탄을 막아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해 3월 15일 밤 북마산파출소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탄을 발사했고, 시위대가 돌 뒤에 몸을 숨겼던 것이다. 돌에는 총탄의 흔적이 있었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해서 '구명석'으로 불렸다.

이곳에 살았던 한학자 신동식(당시 69세)씨가 돌에 연유를 새겨 1962년 비석을 세웠던 것이다. 이후 '구명석'은 보완의 과정을 거쳤다. 바로 옆에는 '가짜'로 드러난 '은상이샘'과 나란히 있고, 시민단체는 '은상이샘'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전임 시장 때 '구명비' 앞에 화단이 조성되었다. 이에 화단은 이 비석을 가리게 되었고, 늘 그 앞에 주차가 되어 있다. 사람들이 쉽게 이곳을 찾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로와 붙어 있어 불편하다.

김영만 대표는 "전임 시장 때 화단을 만들었다. 당시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까 지나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게 이유라고 했다"며 "쓰레기는 치우면 된다. 목숨을 걸어가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구명비'를 이런 상태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발원지인 민주당 마산시당 건물 터에 기념관 조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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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회의길 54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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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회의길 54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이다. ⓒ 윤성효


[3·15의거 발원지]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의길 54에 '표지판'이 있다. 3·15의거 당시 2층 목조건물의 2층(1층 다방)에 민주당 마산시당이 있었고, 지금은 4층 건물로 바뀌었다.

당시 이승만 자유당정권이 투표소마다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민주당 당원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3시30분경, 민주당 당원들은 '선거 부인 공고'를 붙이고 선거무효를 외치며 밖으로 나왔다.

시위대는 남성동파출소 앞과 부림시장 등 시내 중심가를 돌아 이날 오후 4시30분경 민주당사 입구인 불종거리로 돌아왔고, 이때 경찰이 급습해 민주당 간부 6명이 폭행을 당하며 연행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2005년 3월 15일 민주당 마산시당이 있던 건물 앞에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이 설치되었다. 표지판에는 '화살표(→)'를 표시해 민주당사가 있었건 건물을 알 수 있도록 해놓았다.

표지판에는 "그 날 이승만독재정권이 대통령선거에서 온갖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민주당원들이 이에 항거, 시내로 뛰쳐 나갔으며, 3·15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날의 발원지에 큰 뜻을 새긴다"고 새겨져 있다.

김영만 대표는 "당시 민주당 당원과 시민들이 '선고 포기'를 한 게 아니라 '선거 부인'을 했다. 그것은 부정선거에 대한 거부이고 저항이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3·15의거 발원지가 된 옛 민주당 마산시당 건물을 창원시가 매입해서 3·15 관련 기념관으로 조성해야 한다. 특정 정당의 관련성을 떠나서, 민주주의의 귀중한 역사적 장소이기에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영만 대표는 "마산은 민주성지다. 옛 창원과 마산, 진해가 통합(2010년)된 뒤 일부에서는 '민주성지 마산'이라 하지 않고 '민주성지 창원'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본다. '민주성지 마산'은 고유명사처럼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마산민주공원'이라고 하면되는데 '창원민주공원'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어색하다. '진해군항제'를 '창원군항제'라 하지 않고, '부마민주항쟁'을 '부창민주항쟁'이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산 3·15의거'이고 '민주성지 마산'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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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3.15정신계승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가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 앞에서 "창원시 민주성지마산 역사지도'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3.15의거 #김영만 #김주열 열사 #민주성지 마산 #이승만 독재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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