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득실대는 현장에 인권위 안 보였다

[주장] 갈수록 심각해지는 혐오표현, 인권위가 적극 현장 대응해야

등록 2018.09.10 08:24수정 2018.09.1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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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7일 새벽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앞에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를 막기 위해 농성중인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을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부상자 발생이 우려되자 조끼를 입은 국가인권위 직원들이 밀고들어오는 경찰을 제지시키고 있다. ⓒ 권우성



"동성애는 죄!"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여라!"

지난 8일, 동인천역 광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과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앞두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모인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집회 참가자들이 심각한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혐오세력은 "동구청이 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축제를 진행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면서 갖은 폭력과 혐오표현, 위법행위를 자행했습니다. 혐오세력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 참가자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여라!" 같은 끔찍한 표현까지 연호되었습니다. 그들은 물리력을 동원해 행진 경로까지 차단했고, 참가자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된 집회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축제 참가자들을 구석으로 내몰기 바빴습니다. 꼼짝없이 갇힌 참가자들은 식수나 음식을 공급받지 못한 상태로 몇 시간을 갇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었습니다. 항의하는 참가자들에게 오히려 경찰은 고압적인 언사로 '가만히 있으라'며 윽박을 질렀습니다. 그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갖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현행법상 보장된 권리는 물론,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인권조차 침해당한 것입니다.  

광장은 말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축제 참가자들을 향한 일방적인 폭력과 조롱이 이어졌지만 역시 경찰은 이를 방조할 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향해 직접 쏟아지는 무수한 욕설을 마주하는 와중에도, 저는 하늘색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은 인권위 조사관들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인권위가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 조사관을 보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표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인권위가 그 후속조치로 현장에서도 실천적인 자세로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기대와는 달리 현장 어디에서도 하늘색 조끼를 입은 인권위 조사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들의 날선 폭력과 혐오에 맞선 항의와 경고는 결국 오롯이 축제 참가자들의 몫이 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축제 참가자들은 혐오세력에게 폭력과 혐오표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으며, 경찰에게 위법을 방조하지 말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축제 참가들의 항의와 경고는 흔들림 없이 당당했고 지극히 정당했지만, 이들이 당사자로서 감당해야 할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상처를 어루만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홀로 생각했습니다. '인권위가 정말 현장에 조사관을 보내지 않은 것일까?', '보내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권위가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 단 한 명의 조사관도 파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들이 행하는 폭력과 혐오를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라 속단하였거나 혹은 축제에 참여하는 성소수자들이 인권침해나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라 예단한 경우 중 하나일 테지요.
 
전자에 해당한다면 인권위가 호모포비아의 혐오표현과 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명일 것이고, 후자에 해당한다면 인권위가 성소수자의 인권이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인권위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조사관을 파견하지 않은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인권기구가 인권침해가 예상되는 현장에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몇몇 인권위 직원들은 작년과 올해 치러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권위는 작년과 올해 축제에 참여하며 부스를 운영한 바 있습니다. 많은 성소수자들은 인권위 부스 참여에 환호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인권위에 대한 기대를 포스트잇에 담아 부스에 붙이기도 하였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성소수자들이 공감하겠지만, '이제야 제대로 인권위가 일하려나보다'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권위가 성소수자들의 그 기대감을 져버려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소수자가 혐오세력의 폭력에 매몰되는 순간, 인권위는 존재 이유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장으로 나오십시오. 사무실에서 진정서와 전화기를 붙잡고 씨름하는 날들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현장에서 얼마나 처참하고 분노스러운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지 똑똑히 봐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일하십시오. 되도록 열심히 하십시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십시오. '그러라고 만든 인권위'가 아닙니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발생한 성소수자 대상 인권침해와 혐오표현, 경찰의 방조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과 조치는 최영애 위원장 체제 인권위에게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성소수자를 향한 집단린치와 국가권력의 방조에 어떠한 항의와 경고의 의사표시를 할 것인지,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권위가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유린당한 성소수자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데 앞장서 행동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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