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오라잍91화

군인은 걸그룹 사랑? 그땐 내가 유노윤호였다

[아이돌이 뭐길래] 십대부터 삼십대까지 이어진 아이돌 사랑

등록 2018.09.11 10:18수정 2018.09.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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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만의 전유물 같은 아이돌. 새로 나온 아이돌 이름이 낯설기만 한 어른들에게도 아이돌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초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한껏 고무되었던 시절. 소방차나 김완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시작해 듀스, 룰라, 쿨, DJ DOC, R.ef...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전설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다시 중학교 2학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가 물어온다. "H.O.T.야 젝키야, S.E.S.야 핑클이야." 난 젝키와 핑클을 골랐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H.O.T.와 S.E.S.는 SM 소속, 젝키와 핑클은 대성 소속이었다. 난 잘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느낌보다는 현실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좋아했던 것 같다. 1997~1998년 당시 중딩에게 가수는 이 네 그룹뿐이었다. 소위 빅포(Big 4).

비록 신화나 베이비복스를 비롯한 그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은 그들의 인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아이돌을 원했고, 아이돌은 독립을 원했다. 

2000년이 시작되자 마치 짠 것처럼 빅포는 일제히 해체 및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아이돌 그룹은 자취를 감췄다. 대형 솔로 가수와 빅포 출신 가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때가 아이돌의 암흑기라면 암흑기였을까, 아니면 조만간 시작될 새로운 아이돌 천하의 전주곡이었을까.

보이그룹 아이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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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성숙한 두 남자의 매력 동방신기(최강창민, 유노윤호)가 3월 28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정규 8집 < New Chapter #1 : The Chance of Love(뉴 챕터 #1 : 더 찬스 오브 러브) > 프리뷰에서 수록곡 '평행선'과 타이틀곡 '운명'을 열창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은 동방신기가 2년 8개월만에 발표하는 앨범으로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이 기획 단계부터 콘셉트, 곡 선정, 스토리 구성 등에 참여했다. ⓒ 이정민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대하면 걸그룹일 텐데, 내가 군대에 있을 때(2005~2007) 걸그룹은 전무했다. 대신 그 자리엔 동방신기가 있었다. 난 중2 때처럼 선택을 강요 받았다. 선임이 말했다.

"난 최강창민할 건데, 넌 뭐 할래."
"전 유노윤호하겠습니다."



걸그룹에 열광하는 대신 보이그룹이 되었다. 당시 비가 <I'm coming>으로 2년 만에 정식 컴백을 해 그 어디에서보다 군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표정도 따라했다. 누군가에게 열광하기보다는 자신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유행처럼 번졌다.

제대하고 나서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외롭고 힘든 군대 시절에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덕분인지, 난 여전히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이 좋았다. 그래서 동방신기 이후엔 자연스레 빅뱅-슈퍼주니어-엑소-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로얄 보이그룹 라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이사이 2PM, 샤이니, 비스트, 인피니트 등도 많이 보고 들었다. 
 

보이그룹 아이돌 ⓒ 위키피디아


요즘은 주로 유튜브로 노래를 듣는데, 지금도 내 좋아요 동영상엔 보이그룹 노래가 상당하다. 하다 못해 예전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Missing you> <Sea of Love>를 비롯 동방신기의 <MIROTIC>, 빅뱅의 <FANTASTIC BABY>, 비스트의 <픽션>, 샤이니의 <Ring Ding Dong>, 엑소의 <중독>, 워너원의 <에너지틱>,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등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보이그룹이라 할 순 없지만 남성그룹이라 할 만한 김경호, M.C THE MAX, 플라워, 에픽하이 등은 내가 '최애(최고로 애정하는)'하는 그룹이다. 

군대에 있을 때 동방신기가 큰 힘이 되어준 것만으로 보이그룹과 남성그룹에 대한 내 사랑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거기엔 지극히 사적인 내 '노래방 사랑'도 한몫했을 거다. 난 내가 직접 불렀을 때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또는 잘 부르고 싶은 노래만 듣는다. 남자 가수든 여자 가수든 구분이 없기 때문에 여자보다 남자 가수의 노래를 압도적으로 즐겨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의 기억
 

표지 ⓒ 아시아


이런 아이돌에 대한 내 관심도 삼십대 즈음부터 현저히 떨어졌다. 엑소부터는 찾아서 듣는 게 아니라 들려서 듣는 쪽으로 자연스레 선회하게 되었다. 대신 거짓말처럼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류의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이렇게 아이돌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찰나에 찾아온 게 책이다. 무슨 책인고 하면, '문화 레전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SM 리퍼블릭>과 <EXO 플라네타>. 내가 이 책들을, 아니 이 시리즈를 맡아 편집하게 된 것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2015년 1권과 2권을 내고는 YG와 JYP의 수장 및 대표 아티스트를 다루려던 3, 4, 5, 6권은 중단되었다. 이로써 아이돌을 향한 관심을 다시 담금질하고 아이돌의 역사까지 다시 한 번 훑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편집자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지만 말이다(그래도 얼마전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베트남에 판권이 팔리는 기적을 연출해 결국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아이돌 책은커녕 이런 류의 기획적 요소가 다분한 책을 만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힘들었다. 이수만 회장과 EXO 본인이 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거다. 하다 못해 당사자들이 책을 쓰고 있다는 것만 알았어도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모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이메일, 전화, 공문 등을 통해 접촉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태생적인 핸디캡을 안고 SM 쪽은 영화 관련자, YG 쪽은 문화 기획자, JYP 쪽은 문예창작학과 출신자가 맡아 집필했다. 동시에 시리즈 전체 디자인을 총괄하는 아트디렉터와 각각 콘셉트에 맞는 일러스트 아티스트를 물색했다. 아울러 사전 홍보를 위한 SNS 채널도 개설하고 굿즈 개발을 위해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아트숍에도 방문했다. 

찬란한 계획이었지만, 실행은 지지부진 했다. 원고만 검토하는 것도 수십 회. 혹시라도 사실 관계가 틀린 곳이 없는지 계속 확인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체크해 최대한 반영시켜야 했다. 일러스트 아티스트와의 협업과 이후 전시라는 콘셉트를 위해 그 어느 책보다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찜찜한 구석은 남았다. 

결국 책이 잘 팔리면 이 모든 게 보상된다는 생각 하에 기획사에 무작정 찾아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오히려 책을 만들지 말라고 할까봐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언제 한 번은 JYP 측에 연락이 닿아 원고를 보내드리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받진 못했다. 팬클럽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홍보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괜히 책 홍보하는 걸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까 봐 그러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책 발간을 1년 이상 끌다보니 위에서 압박, 저자들과 아티스트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당시 책들이 출간될 때까지 족히 몇 개월 동안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덕분에 아이돌에 대해 조금은 더 전문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위로할 수 있으려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KPOP #EXO 플라네타와 SM 리퍼블릭 #동방신기 #방판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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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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