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의 '호통 연설'... 민정당도 이러진 않았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국민의 개혁 요구, 외면하지 말아야

등록 2018.09.10 11:25수정 2018.09.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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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가 처한 정치 환경의 불리함을 하소연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하지만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를 계기로 이야기가 달라졌다. 운동장의 기울기도 어느 정도 조정됐고,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노무현이 아래쪽에서 위를 쳐다봤을 때 위쪽에 있었던 그 세력이, 지금은 아래쪽에서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정반대로 역전된 정치 환경을 생각할 때, 지난 9월 5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상당히 낯선 일이다. 이전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불균형한 정치구도다. 이런 구도 속에서 성찰해야 할 쪽이 도리어 호통을 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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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소득주도성장 폐기하고 출산주도성장으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 대신 출산주도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저출산 위기는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국가 재앙으로 다가왔다"라며 "저출산 문제는 국정의 최우선 과제이다. 문재인 정권에 출산주도성장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 남소연

무엇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 연설에서 촛불혁명 이후의 개혁을 방해하는 듯한 두 가지 발언을 했다. 지금의 개혁은 꼭 문재인 정부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명령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다른 정권이 들어섰더라도 국민은 똑같은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개혁에 어깃장을 놓는 듯한 말을 던진 것이다.

첫째, 개혁 정국으로부터 재벌 기업들을 더욱 더 떼어놓고자 했다. 재벌들은 개혁을 수용해 더 나은 경제 환경을 만드는 데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권은 주적(主敵)이 기업입니까? 어쩌다 문재인 정권의 주적이 기업이 되었습니까?"
 
지난 8월, 정부가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가 아직 우리 뇌리에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주적이 기업'이라는 식으로 연설하면, 지금 진행 중인 경제개혁이 대한민국을 해롭게 하는 일인 듯한 인상도 줄 수 있다.

뒤이어 그는 "이 정권은 지금 시장과 맞서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개혁에 동참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둘째, 지금의 개혁 정국으로부터 일반 국민들을 떼어놓고자 했다. 일반 국민들의 가계소득을 직접 높여주려는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임금이 올라가면 소비가 늘고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 경제가 성장한다고 주장합니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권이 국민을 현혹하는 보이스피싱입니다. 달콤한 말로 유혹하지만 끝은 파국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우리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로 가는 레드카펫입니다. 베네수엘라는 나라 전체가 대중인기 영합주의로 흥청망청대다가 결국 국가 파산을 당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우고 차베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으로 1999~2013년에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이 3.4배나 증가했다. 그런데도 경제 파탄을 맞은 것은 이 나라의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거의 전적으로 석유 수출에만 의존하다 보니, 국제유가의 등락에 따라 경제가 심히 요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미국의 경제제재도 한몫했다. 차베스 정부는 서민보다는 부유층한테만 유리한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거부했다. 반미정책은 미국의 견제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고, 베네수엘라 석유의 전통적 수입국인 미국이 석유 거래를 무기로 제재를 가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13년에 차베스가 사망함에 따라, 그의 카리스마에 상당부분 의존하던 정치 시스템이 함께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정부의 경제조절 능력이 급격히 저하돼 지금의 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김성태 원내대표는 한국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들이대면서 한국이 조만간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처럼 말했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있다. 하루빨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운동장을 수평 상태로 만들든가 아니면 자신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을 차지하려고 애써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처한 긴박한 처지에 비하면, 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꽤 여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과거 1960년 4월혁명을 맞은 자유당은 막판까지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 치기는 했어도, 자유한국당 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1987년 6월항쟁을 맞은 민주정의당(민정당) 역시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사례에 비하면 자유한국당의 최근 행보는 꽤 이례적인 편이다.

자유한국당과 자유당·민정당의 차이는 인격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원내대표의 인성 차이 때문도 아니다. 여기에는 선거주기의 문제가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4월혁명은 제4대 국회의원총선으로부터 2년 뒤에 일어났다. 그래서 4월 혁명 당시의 자유당 의원들은 임기가 2년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들의 임기는 4월 혁명으로부터 4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4월 혁명 당시의 국회의사당. 지금은 서울특별시의회 건물로 쓰이고 있다. ⓒ 김종성

4월혁명 당시 의원들의 임기가 축소된 것은 시민혁명 직후의 헌법 개정 때문이다. 그 해 6월 15일 개헌이 있었다. 개정헌법 부칙에 아래와 같은 규정이 담겼다. '국회의원'이 아래 인용문에서는 '민의원'으로 등장한다.
 
"이 헌법 시행 당시의 민의원 의원의 임기는 이 헌법 시행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민의원 의원 총선거를 실시하는 전일까지로 한다."

이 규정에 의한 최초의 총선은 그 해 7월 29일 있었다. 이에 따라 기존 국회의원들은 그 해 7월 28일까지만 의원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7월 29일 제5대 총선에서 자유당은 단 2석밖에 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4월혁명 이후의 개혁을 방해할 기회가 없었다.

1987년 6월항쟁은 제12대 총선으로부터 2년 뒤에 일어났다. 그래서 항쟁 당시의 국회의원들한테도 임기가 2년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민정당 의원들한테도 여유는 없었다.

6월항쟁의 결과로 그 해 10월 29일 헌법이 개정되고 이 헌법이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됐다. 현행 헌법인 이 헌법에서도 6월항쟁 당시 국회의원 임기를 축소하는 규정이 있다. 부칙 제3조다.
 
"①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국회의원선거는 이 헌법 공포일로부터 6월 이내에 실시하며 ······"
"②이 헌법 공포 당시의 국회의원의 임기는 제1항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 전일까지로 한다."
 
이에 따라 제12대 총선으로부터 3년 밖에 안 지난 1988년 4월 26일 제13대 총선이 열렸고, 이 결과로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이 생겨났다.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민정당은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 승리로 집권당 지위는 유지했지만, 뒤이은 총선에서 뼈아픈 참패를 당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13대 총선 이후의 민정당 정권이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국민들의 개혁 요구를 의식하면서 상당 수준의 긴장감을 보여줬다. 이 점은 이들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토지공개념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개혁정책을 추진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민정당 정권이 토지공개념을 추진한 근본 동기는 국민의 개혁 요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데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6월항쟁 정도가 아니라 무력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다.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보도에서도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는 제목 하에 민정당 정권 수뇌부의 절박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기사다.
 
"토지공개념 도입과 관련, 조순 부총리, 문희갑 경제수석비사관 등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책임자들은 이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강연회·정책설명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노태우 민정당 정권의 경제 책임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며 토지공개념 정책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다닌다는 보도다. 민정당 정권이 이런 긴장감을 느끼게 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바로 13대 총선이다. 6월항쟁 10개월 뒤의 총선이 그들을 그토록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촛불혁명 당시의 여의도 국회의사당. ⓒ 김종성

1960년과 1987년에 비해 2016년 촛불혁명의 경우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일은 비교적 순조롭게 달성한 반면, 시민혁명의 결과를 헌법적으로 제도화시키는 일에서는 아직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제1차 촛불집회로부터 1년 11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다.

제19대 총선은 2016년 4월 13일 실시됐다. 이 총선으로부터 불과 6개월 뒤에 촛불혁명이 시작됐으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뒤에는 촛불혁명 당시의 국회의원 임기를 조정하는 조치가 개헌과 함께 있어야 했다. 행정부와 함께 국정운영의 양대 축인 국회를 그냥 놔두고서 촛불혁명을 완성하고 적폐를 청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뒤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다시 말해 박근혜 탄핵 직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상으로 신속히 복귀하고 대선에만 집중했기에, 촛불혁명 당시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민들의 심판을 제대로 받을 기회를 마련할 수 없었다. 촛불혁명 개시 시점으로부터 2년이 다 되어 간다. 다음 선거도 근 2년이나 남았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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