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서평] 진천규 지음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등록 2018.09.14 19:55수정 2018.09.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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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함께 흐른다> 책표지. ⓒ 타커스


올해는 고려 개국 1100년 해다. 이를 기념, 남북은 2007년부터 고려 대표 유적인 만월대를 공동 발굴해왔다고 한다.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은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6·15 공동선언(2000년) 이후 남북이 10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유일한 협력사업이라고 한다.

지난 8월 30일과 9월 1일, <고려 개국 1100년 KBS 특별기획 2부작-One Korea>란 제목으로 발굴 현장 일부가 공개됐다. 화면을 통해서나마 북한에 있는 고려의 흔적을 볼 수 있음과 남북이 '고려'라는 공동 숙제로 협력하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내가 본 것은 2부, 20여 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좀 복잡한 심정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분단 이후 긴장이 가장 고조된 시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2011~2015년의 발굴 현장. 와중에, 오로지 전쟁 준비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들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이 실상 우리와 고려 발굴이란 끈을 붙잡고 있었음에 대한 감회 때문이었다.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는 동시에 '우리는 과연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삼 혼란스러웠다. 방송이 끝나고도 복잡한 심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최근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 펴냄)를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 도드라져 떠올랐다. 북한에 대해 훨씬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촬영한 평양시내 야경. 주체사상탑 전망대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겨울철에는 오후 5시). 따라서 일몰 이후에 이곳에 들어갈수 없기 때문에 '야경'을 찍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외지인 최초로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평양 시내 야경을 촬영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 제공

   

주체사상탑에서 본서평양 지역 창전거리의 초고층아파트. 2012년에 완공되었다.-(사진 설명 따옴) 려명거리에는 최근 73층초고층 아파트가 완공, 철거민에게 우선 입주권이 주어진다고 한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평천구역 미래동 미래과학자거리 양측에 건설된 아파트 모습-(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아니, 서양인은 괜찮고 같은 피가 흐르는 남한 기자는 자기들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미향 씨는 "우리 조선(북한)에서는 남조선 기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다"며 그 이유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했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으면 벽에 금이 갈수도 있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제때 수리하지 않으면 허술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남쪽 기자들은 북녘의 그런 허술한 모습만 찍어 낡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마치 북쪽의 전체 이미지가 그런 것처럼 왜곡해서 보도한다. 그래서 무척 억울하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 기자에 대해 적대적인 이유라고 했다. 김미향 씨는 대뜸 내게 "기자의 본분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쏟아냈다. 기자라면 당연히 사람들이 억울해하는 것을 풀어줘야 하는데 남쪽 언론에서는 오히려 북녘을 왜곡해서 억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정 종편의 어느 프로그램은 특히 북녘을 더 악의적으로 모욕하는 보도를 한다고, 김미향 씨는 대놓고 적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진 선생에게 우리의 체제를 무턱대고 선전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편타당하게 기자로서 양식을 가지고 충실하게 보도해 달라는 겁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110~111쪽) 

저자 진천규씨는 '2000년 평양 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북한을 2차례 방문했다. 통제와 정해진 규칙에 따른 취재였다. 아쉬움은 당연했다. 

그런데 더욱 아쉽고 씁쓸한 현실은 그동안, 말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나 역사를 모르는 외국 기자들이나 외국 사진작가들에 의해서만 북한 취재가 이뤄졌으며 여전히 그렇다는 것, 말이 통하지 않아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데다가 누군가의 안내로 그동안 잘 알려진 곳들만 한정적으로 되풀이 취재되고 있어서 북한이 제대로 알려지기는커녕 의도와 달리 포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는 것, 이는 남북(관계)에 도움은커녕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럼에도 우리의 취재는 절대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여곡절 끝에 북한 단독 취재에 성공한다. 공동취재단 한 사람으로 북한을 취재한 이후 17년만인 2017년 10월이었다. 한국 언론인들의 북한 취재가 아예 불가한 상황에 이뤄진,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취재였다.

저자가 북한을 단독 취재한 것은 2017년 10월을 시작으로 올해 7월까지 4차례,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한다. 
 

152쪽 사진 한장이다. 옥류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이다.이곳에는 언제나 10대 가량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 진천규 / 타커스 제공

   

'옥류관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북한 주민들은 옥류관 냉면은 물론 피자,파스타, 맥주 등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긴다고 한다. 책에 관련 사진들이 다수 실려 있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택시는 주로 누가 이용하나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운전원에게 물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이 없는 뒷골목까지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허무할 정도로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보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 택시를 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는 편리함. 평양에서도 특수한 신분의 당 간부들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북녘에는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으니 대중교통 중에서도 택시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 148~149쪽

나는 지금 평양 중구역 대동강 앞에 위치한 평양호텔 2층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에필로그를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보내면 그동안 진행해 오던 책이 마감된다. 이 책은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와 이메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마무리됐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 290쪽

17년 만에 북한을 다시 찾은 저자는 평양의 첫인상을 '놀라움'으로 표현한다. 그동안 알려진 북한과 전혀 다른 모습들 때문이었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는가하면 북한 곳곳이 눈에 띄게 밝아졌으며,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나 의식 역시 그간 많이 바뀌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은 평양 곳곳을 비롯한 북한의 대표적인 명소들과 문화생활, 먹(을)거리, 주택, 쇼핑 등 8개 주제로 나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2010년)로 우리와는 모든 교류나 지원이 끊겼지만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해온 북한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북한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들은 '통제'와 '감시'였다. 그래서인지 북한 관련 사진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지정된 장소를 찍었거나, 연출된 것이란 전제로 대하곤 했다.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북한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북한 주민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거나, 인터뷰 하는 등, 어떤 통제나 감시 없이 북한을 취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창전거리에 위치한 '해맞이식당' 1층 슈퍼마켓에서 젊은 부부가 장을 보고 있다.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줄 과일과 간식거리를 고른다고 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평양의 교통 수단 중 하나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책에는 지하철부흥역의 플랫폼 모습을 비롯하여 지하철내부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주민들 모습을 담은 여러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진천규/타커스제공

 
  

모란봉공원 을밀대 근처에서 은퇴한 시민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즐기고 있다.-(사진 설명 따옴) ⓒ 진천규/타커스제공

 
북한의 최근 모습(2018년 7월)은 물론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모습들이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겼음은 물론이다. 이런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진이 풍성하다는 것. 그리고 뭣보다 북한 주민들, 즉 일반인들의 삶의 현장을 위주로 취재해 담았다는 것이다.
 
한창 추수 중인 평안도 농촌의 소슬한 풍경부터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선 평양 려명거리의 화려한 야경까지, 출퇴근 시간의 분주한 모습이나, 공원에서 운동을 하거나, 애견의 털을 골라주는 등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 73층 아파트의 살림집 내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6천여 대의 택시가 운행 중이라는 평양 시내 모습, 옥류관을 비롯한 청려관 등 북한의 대표 음식점들, 우리처럼 차로 이동할 때는 물론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등, 다양하며 급속한 변화가 진행 중인 평양의 최근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옥류관 주방장이 들려주는 옥류관 냉면 맛과 대동강 맥주 맛의 비밀, 피자와 파스타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즐기는 사람들, 퇴근 후 가족과 쇼핑하거나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사람들, 자신의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한 여학생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에피소드, 철거민에게 우선 입주 자격이 주어진다는 73층 아파트에서의 삶 등, 북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인터뷰하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 몇 달, 북한은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남북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들이 혹시 일시적이거나, 계산된 것이거나, 제한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거나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런데 지난 70년, 경계와 갈등을 되풀이한 결과 우리는 서로 무엇을 얻었는가? 남북이 경계와 갈등을 함께 걷어내고 역사를 함께 쓰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서로를 잘 모를 때 오해와 갈등은 깊어진다. 북한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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