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도 맞붙었던 변호사 여상규, 그의 재판들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법복 벗은 변호사, 세상의 중심에 서다

등록 2018.09.12 18:45수정 2018.09.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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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진행된 재판 결과를 놓고 당·부당을 국회에서 의논하는 것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손가락질을 하며 "어디 큰 소리야!"라고 외치기 직전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자유한국당, 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이 비교적 차분하게 한 말이었다. 지난 11일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막말' 직전 나온 이 말을 들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판사 시절 그의 재판들은 어떠했을까.

"불복 절차가 있습니다. 사법부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 절차를 따르면 될 거 아니에요?"

또 이 말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전남 목포시)과 설전을 벌이다 나왔다. "아무리 사법부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개인 의견을 얘기하는 게 국회"라고 하자 곧바로 나온 여 위원장의 반박이었다(관련 기사 : 박지원 공개 사과 "제가 조심하겠다, 용서 바란다").

이 말을 들으며 또한 궁금해졌다. 그는 어떻게 국회로 들어왔을까. 그리고 그의 이 말에 실려있는 판사 출신으로서의 신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법부 독립 위한 법관 서명에 참가하다... 문학진 기자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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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17일자 <한겨레>에는 그의 이름이 실려 있다. 사법부 개혁의 목소리가 전국 법원으로 확산되고 있던 그 때,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직 판사 신분으로 서명에 동참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여 위원장의 판사 시절 언론에 보도됐던 재판 결과를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모두 살펴봤다(아래 참조). 흥미로웠다.

"우리는 그동안 사법부를 뒤덮고 있던 오욕과 불신의 먹구름이 일시에 걷히는 것을 보는 듯한 감격과 희열을 느끼며 신분상의 제약을 무릅쓰고 침묵을 깬 용기 있는 행동에 전폭적이고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1988년 6월 1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성명 중)

그의 이름이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법관 서명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 서울남부지원 형사 단독 판사 시절이었다. 1989년 서울형사지법 5단독 판사 시절,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성우 평화연구소 소장의 공판 과정을 기록한 <한겨레> 기사 역시 인상적이었다. 판사 여상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번 결심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초실정법적인 판결을 해달라는 최후 변론을 했습니다. 본 재판관은 이 자리에서 '사법부의 한계'라는 말로 이에 답하고 싶습니다. (중략) 피고인의 행위가 실정법을 위반한 점은 인정되지만 애매한 부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중략) 실정법의 자로 재더라도 명확한 판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 의견으로는 군사기밀보호법은 법 규정이 매우 모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문학진 당시 <한겨레> 기자(17대·18대 국회의원)는 "피고인의 목적이 아무리 정의로워도 절차적 정의를 간과하면 그것은 오류로 판정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실정법'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을 피력했다"라며 "실정법이라는 이름의 악법이 여 판사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라고 전했다.

건국대 사태 당시 그가 대학생들을 석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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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SBS뉴스 화면.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회찬 의원에게 이른바 '떡값 검사'로 지목된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의 변호를 맡았다. ⓒ SBS

 
여 위원장을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비례대표)의 회고 역시 그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2016년 8월 1일 치 <동아일보>를 통해 이 의원은 "중앙대 교수 시절 운동하다 재판을 받게 된 제자가 있었는데 당시 판사였던 상규 형한테 '잘 좀 봐 달라'고 해서 좀 더 선처를 받았다"라고 전했다.

이같은 회고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 또한 있었다. 1986년 11월이었다. 사법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속 영장 신청이 있었던 때였다. 건국대에서 농성을 벌이던 대학생 중 1274명에 대한 구속 영장 심사 소식을 전하고 있는 기사 한 귀퉁이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이 대학생 15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되자 무척 당황했다고 했고, 당시 여 판사가 여대생 2명에 대해 여섯 가지 사유를 들어 기각했다고 <동아일보>가 전하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간 목적이 시위가 아니고, 점거 농성 장소 진입 경위에 참작할 정상이 있으며, 국가관·대미관이 건전함은 물론, 개전의 정이 있어 영장을 기각한다"라고 명시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에서 '여상규'란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1989년 8월 광주항쟁 소재 영화 <오! 꿈의 나라>를 만든 장산곶매 전 홍기선 대표와 신촌 예술극장 한마당 유인택 극장장에 대한 공판을 맡았으며, 또한 서경원 평민당 의원 방북 사건 담당 판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93년 2월 2일, 신문을 통해 이렇게 밝힌다.

"저는 이번에 서울 고법판사(형사지법 3단독 직무대리)를 끝으로 정든 법관 직을 떠나 변호사로서 새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저를 아껴주시던 선·후배 및 동료 법관님들의 곁을 떠나게 되어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1993년 2월 2일자 <한겨레>에 실린 변호사 개업인사)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법복 벗은 변호사, 세상의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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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24일자 <동아일보>.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변호를 맡아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의 사무실은 부림빌딩 501호라고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법복을 벗었다고 알려졌다. 1997년 5월 <경향신문>은 "월 2백만원의 치료비를 대느라 월급을 몽땅 쏟아 부었던 그는 점심 값을 아끼고자 도시락을 갖고 다녀 '도시락 판사'로 불리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변호사 개업 후 열흘만에 숨졌다고 한다.

이런 사연까지 신문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의 사무실 주변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때 이 기사의 제목 또한 '얼굴 내민 현철씨 변호사"였다. 그는 현직 대통령 아들을 대표하는 변호사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알선수재죄 등 혐의로 구속된 후에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던 김씨와 여 변호사가 1997년 5월 23일, 서울구치소에서 만났다.

당시 여상규 변호사는 "이틀 전 김씨 부인이 직접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승낙했다"라며 "전부터 김씨와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또 한편으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현철을 변호할 생각이 없었지만 변호사로서 기소장만 봐도 명백히 무죄라 확신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한동안 잊혀졌던 그 이름은 2005년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2005년 8월 노회찬 의원이 이른바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했다.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서 "지검장이 떡값 리스트에 포함돼 있으니까, 연말에나 주라"고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이 지목한 상대가 안강민 당시 서울지검장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 전 지검장은 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자신의 변호사로 '여상규'를 지목했다. .

"노회찬 의원이 근거로 주장하는 테이프나 녹취록 어디에도 안강민 변호사가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당시 여상규 변호사)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은 2008년 3월 이렇게 다시 등장했다. "한나라당 강도 높은 공천 물갈이 단행" "총선에 출마할 11차 공천 내정자 21명 추가 발표" "안강민 위원장은..." "다음은 공천 후보 내정자 명단, 경남(3명) = 조해진(밀양·창녕), 허범도(양산), 여상규(남해·하동)". 2008년 1월,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었다.

왜 그렇게 <그것이 알고싶다>에 화를 냈을까...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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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 안강민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서울, 충남 지역에 대한 공천심사를 마친 뒤 승강기를 타고 당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그의 이름은 지난 1월, 다시 한 번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간첩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석달윤씨의 1심 판사는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라고 했다. 제작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재심이라는 제도가 있으니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한 분의 삶이 망가진 것에 대한 책임"을 묻자 그는 이런 말로 공분을 샀다.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 정말."

그의 이름은 2012년 9월, 이렇게도 등장한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인혁당 판결이 두 개"라는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때였다.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라는 그 말은 사실상 재심 과정에서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무죄 판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때 국회에서는 김이수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국회의원 여상규는 이렇게 말했다.

"특히 정치적 사건에서 그런 예가 많았지요. 과거의 유죄 판결을 뒤에 와서 무죄 판결로 뒤집는다든지, 사법 절차가 다 끝난 뒤에... 이거 사법 자기 부정 아닙니까? 역사는 역사 아니에요? (중략) 다른 헌법적 기준이나 가치에 대한 그런 변화는 별로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유에 의해서 그것이 재심 사유로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 부정을 하는, 판결을 뒤집는 그런 판결들이 꽤 선고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2년 9월 11일, 국회 속기록)

다시 2018년 9월 11일, 국회에서 여상규 법사위 위원장은 "이미 진행된 재판 결과를 놓고 당·부당을 국회에서 의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사법부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 절차를 따르면 될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에게 '사법 농단'은 불복이 가능한 사건이지만, 인혁당 판결은 사법부의 자기 부정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에게는 석달윤씨의 재심 결과 또한 "사법 절차가 다 끝난 뒤 정치적 이유에 의해 재심 사유가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 부정을 한" 판결일지 모른다.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다. 그가 의사봉을 두드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그 어떤 법도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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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간사(왼쪽부터), 여상규 법사위원장, 자유한국당 김도읍 간사가 김도읍 간사가 제안한 '법사위 차원의 드루킹 특검 연장 촉구 성명' 채택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여상규 의원 판사 시절, 재판 결과가 보도된 사례들

1988년 05월, 개표가 끝난 투표용지가 봉인 상태에 문제가 있다며 박영록 평민당 후보가 제출한 '서울 구로갑 투표함 증거 보전 신청 인용.

1989년 04월, 미 노드롭사 전투기 도입 관련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 동양고속회장에게 징역 1년 선고.

1989년 09월, 혼수감이 적다는 이유로 부인과 장모를 폭행한 서울대병원 외과의사에게 징역 8월 선고.

1989년 0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조성우 평화연구소 소장에게 징역 1년 6월에 자격정지 2년, 김창수 연구원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1989년 10월, 여의도 농민대회 관련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영순 전민련 공동의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1989년 10월, 김일성 연설문을 모아 '북한 통일 정책 변천사'를 펴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도서출판 온누리 김용항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

1992년 0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거짓 감정 의혹을 제기했던 민자당 중앙상위부의장 등에게 징역 1년 6월과 추징금 5천150만원 선고.

1992년 03월, 운전 실기 교습 중 운전 부주의로 사망 사고를 낸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업주에게 벌금 100만원 선고. 강사에게는 벌금 200만원 선고.

1992년 06월, 사업장 밖에서 '유람 파업'을 한 현대해상화재보험 전 노조위원장에게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죄로 징역 1년 선고.

1992년 10월, 추석 귀성 열차표 26장을 암표로 팔아 53만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이에게 징역 6월 선고.

1992년 11월, 무허가로 룸살롱을 운영하며 미성년 접대부를 고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 세계 챔피언에게 보석금 1천만원에 보석 허가.

1992년 12월, 시한부 종말론을 이용해 신도들로부터 거액의 헌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다미선교회 목사에게 징역 2년, 미화 2만6700달러 몰수 선고.

1992년 12월, 10.26 사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술자리에 있었던 신 아무개씨에게 상습 도박죄를 적용하여 벌금 200만원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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