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첫돌 맞은 다음날 '합격 취소' 됐습니다

모호한 채용공고로 혼선... 40대 가장 울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록 2018.09.14 19:54수정 2018.09.1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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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노동상담소의 주 관심사는 채용갑질이다. 일방적인 기업의 채용 취소로 고통 받는 구직자들의 하소연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 불거진 '위메프'나 '한국화이자', '한샘'등 유명기업의 일방적 채용취소가 사회적 논란이 된 배경도 있다. 상담소에서는 기업이 채용을 내정한 후 일방적으로 본채용을 거부한 구직자들의 사례를 모아 법률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보도 이후 채용취소를 당한 구직자들의 상담이 증가했는데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대졸 구직자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무더위가 막 시작되던 6월 어느 날 40대 가장인 A씨가 절박하게 "공공기관의 채용취소로 고통 받고 있다"며 상담을 의뢰해 왔다. A씨의 사례는 여타 민간기업의 일방적 채용취소와 달랐다. 우선 대상 기업이 공공기관이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올해 1월 그가 경력직으로 채용에 응시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이 채용과정에서 자격요건이 혼재된 정보를 제공하여 A씨를 최종 합격시킨 다음 추후 "자격요건에 미달한다"며 합격을 취소했다.

A씨가 이에 항의하자 공단의 채용 담당자가 "추가 모집에 응시하면 어떻겠느냐"고 A씨를 '희망고문' 했다고 한다. 그렇게 8개월 지난 지금까지 A씨는 공식적으로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아이의 첫돌 다음날 합격취소 통보
 
정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 정보화 분야에서 일하는 A씨는 지난 해 말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직을 결심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전산 업무 경력직 5급 공채에 지원한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교통사고의 예방과 관련된 사업을 전담하는 준정부 공공기관이다. 교통부문 공기업과 민간 기업에서 일했던 A씨는 이곳이라면 자신의 경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A씨로서는 모험이었다. 집에는 첫돌을 앞둔 아이가 있었고, 공공기관인 만큼 경쟁률도 만만치 않아 합격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A씨는 재직 중에도 대학원에서 관련분야 석사학위를 딸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지난해 성탄절 무렵 공단으로부터 꿈에 그리던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새해 첫돌을 맞이할 아이에게 공공기관에서 시민의 교통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새해부터 아이의 첫돌과 공기업 합격이라는 겹경사를 맞은 A씨 가족의 행복도 잠시. 이튿날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A씨 가족의 행복을 산산조각 냈다.
 
1월 2일 오전 A씨는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에 출근하여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국교통안전공단 채용 담당자로부터 "결격사유로 합격을 취소한다"는 전화통보를 받았다. 아이의 돌을 맞아 집에 와 있었던 장모님은 사위의 합격취소 소식을 전해 듣고 쓰러졌고 아내는 울기만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혼란스러운 채용정보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채용 직무 설명자료한국교통안전공단의 채용 직무 설명자료 ⓒ 한국교통안전공단 발췌

 
공단에서 제시한 채용 공고에 따르면 A씨가 지원한 전산 5급 경력직 분야의 자격 요건은 "관련분야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석사취득 후 3년 이상 해당분야에 종사한 자"였다. 해당 요건에 대하여 공단은 직무기술서를 통해(NCS 기반 채용 직무 설명자료) 학력과 경력 요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직무기술서에 따르면 공단이 요구하는 학력/경력 요건은 "관련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 또는 관련분야 석사 학위 소지자 중 3년 이상 해당분야에 종사한 자"였다. 즉 석사 소지자 중 관련분야 경력 3년의 자격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A씨로서는 석사 학위 취득 전후 관련 분야 경력이 3년 이상이었기 때문에 채용에 응시할 자격이 충분했다.
 
그런데 A씨를 합격시켰던 공단은 내부검토 결과 석사학위 취득 후 3년 이상 해당분야 종사한 자라는 채용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A씨의 합격을 취소했다. A씨는 공단 채용담당자에게 "채용요건에 대해 최종 합격 통보 전에 필터링을 해야 했지 않느냐"며 공단의 최종합격 취소 결정에 항의했다.

채용 담당자는 A씨에게 "블라인드 채용 절차를 도입하여 학위 내용을 최종 합격 후에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A씨는 공단을 상대로 정식으로 채용 자격요건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싶었다. "채용자격요건 중 학력과 경력에 관한 요건을 해설한 직무기술서 상의 자격요건에 따르면 채용자격 요건에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단의 채용담당자는 공식적인 채용절차상의 이의제기 절차에 대한 안내 없이 "합격취소에 대한 이의를 문서상으로 제기해 주면 검토하겠다"고 공식적 답변을 미뤘다.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채용 확정 후 일방적인 채용 취소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 해당 사건은 공단이 위치한 경북 김천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으로 전달되었고 구미지청은 "직업안정법이나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에 따른 거짓구인광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사건을 종결했다.
 
합격 취소시켜 놓고 재공고에 응시하면 어떻겠느냐?
 
A씨는 마지막으로 공단에 채용자격 요건에 대한 이의제기 결과를 기대했다. 공단 채용담당자는 여전히 채용 공고문 상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며 "내부적으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살펴보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A씨가 지원했던 전산부분 경력직이 채용되지 않아 재공고가 날 것"이라고 말했고 채용자격이 문제가 되어 "요건을 완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공단은 A씨가 지원한 분야에 대해 채용 재공고를 냈다. 기존 '박사학위 소지자와 석사학위 취득 후 해당분야 3년 이상 경력자'이었던 자격요건에 '관련분야 학사학위 취득 후 해당 분야 5년 이상 경력'이 추가됐다. ⓒ 한국교통안전공단

 
공단 채용담당자와 통화한 후 며칠이 지나고 공단은 A씨가 지원한 분야에 대해 채용 재공고를 냈다. 기존 '박사학위 소지자와 석사학위 취득 후 해당분야 3년 이상 경력자'이었던 자격요건에 '관련분야 학사학위 취득 후 해당 분야 5년 이상 경력'이 추가됐다. 자격요건이 완화된 것이다. A씨가 보기에 이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채용자격요건 혼재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채용담당자는 A씨에게 "이번 추가 채용에 응시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A씨는 공단이 채용과정에서 잘못된 채용 정보를 제시하여 합격취소에 따른 고통을 겪게 된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자는 제안으로 인식하고 추가채용에 응시했다.
 
다시금 면접을 준비하며 A씨는 이미 해당 과정을 거쳐 합격을 통보받은 자신이 왜 다시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분통이 터졌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나 2주 후 서류전형 결과 A씨는 불합격을 통보 받았다.
 
2주 후 가까스로 통화가 된 채용담당자는 "자격요건의 완화로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며 기존 A씨의 합격 취소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은 "자체적으로 내부 검토 중"이라고만 변명했다.

그러나 채용담당 부서장은 A씨와 한 통화에서 합격취소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도 합격을 통해 구제해 줄 수는 없다"며 "법률적 대응을 하실 거라면 그렇게 하시라"라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법률적 대응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향후 계속되는 채용에 응시하는 방법이 좋지 않겠느냐"고 '희망고문'을 했다.

공단은 지난 5월 18일 A씨의 합격취소와 관련하여 "경력직원 채용과정에서 자격요건을 정확히 공고하지 않은 탓에 합격자에게 9일이 지나 채용불가 의사를 밝혀 합격자가 실직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해명자료를 통해 "공단이 입사지원자의 능력과 적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위해, 사전에 지원자의 학력이나 주소 등을 확인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력직원 채용 공고에서 자격 요건으로 '관련 분야 석사학위 취득 후 해당분야 3년 이상 경력'을 명확히 기재하고, 블라인드 채용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며 책임이 없다는 점을 밝혔다.
 
A씨는 상담과정 중 인터뷰를 통해 "재공고를 통해 자신이 합격하지 못한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단이 채용 지원자에게 혼란스러운 정보를 제공한 점에 대해 자신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진지하게 내부 논의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혼란스러운 정보제공에 대해 사과하고 합격취소를 당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진정어린 대책을 마련하길 희망했다.
 
재공고에 채용 지원을 유도하며 합격시켜 줄 것처럼 '희망고문'한 점에 대해서도 진솔한 사과를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공단은 공식적으로 A씨의 채용 절차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이 힘있는 기관에 맨몸으로 맞서는 다윗처럼 느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여전히 A씨는 "구직자의 처지를 이용하여 공단이 자신을 가지고 논 것이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에 고통스러워 했다.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했고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다짐도 해봤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헤집어 놓고 사과 한마디 없는 공단을 생각하면 문득 "왜 나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화가 솟구친다"고 분노했다. 상담 내내 그는 "내가 청와대나 해당 공단을 관할하는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 중 아는 이가 있다면 공단이 이렇게 내 문제를 처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구직자들의 불신이 쌓여 공정한 사회와 국가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져 가고 있다면 과장일까? 여전히 한국교통안전공단은 A씨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현재 A씨가 지원한 분야에 채용 재공고를 낸 상태다.

A씨는 한국교통공단의 합격 통보 이후 다니던 회사에 사직의사를 밝혔다가 합격 취소된 사정을 설명하고 현재 근무중이다. 그러나 사직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주의 조치를 받았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나갈 사람'으로 인식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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