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지혜롭게 헤어지는 법

코알라와 펭귄이 준 교훈... 가슴에서 밀어내면, 가슴이 더 가까워진다

등록 2018.09.13 19:21수정 2018.09.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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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dgraphic, 출처 Unsplash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엄마 코알라와 새끼 코알라가 높은 나뭇가지 위에 껴안듯 같이 앉아 있는 장면이 화면 가득히 밀려왔다. 갑자기 엄마 코알라가 새끼 코알라를 세게 밀어서 아래로 떨어트렸다. 새끼 코알라는 엄마 코알라를 찾아서 방금 떨어진 나무 아래를 몇 바퀴를 돌고 또 돌았다.

한 번 쳐다보기만 하면 될 터인데, 바로 거기 엄마가 있을 터인데. 끝내 엄마 찾기를 포기하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새끼 코알라의 뒷모습에 이어 화면의 초점은 엄마 코알라를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하늘 쪽을 응시하면서 꼼짝 않고 앉아 있던 엄마 코알라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다큐는 끝났다. 

이후 엄마와 새끼는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만나면 서로 알아볼 수 있으려나? 그것으로 영원한 이별인 건가?

이 다큐를 본 지는 20년도 훨씬 넘었다. 지금도 아들과 가끔 코알라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코알라 다큐를 보면서 내내 훌쩍이던 나는 느낌이 이상해서 옆눈으로 아들 녀석을 몰래 훔쳐봤다. 어린 아들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4살 정도였던가 싶다.

"현근아, 슬프다~ 참, 슬프다~ 그렇지?"

다큐를 본 현근이의 반응이 다소 놀라웠다. 콧등과 눈언저리가 여전히 빨개진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계속 업어줘요'라고 했는데...


현근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보다는 저를 돌봐 주시던 이모를 더 좋아 했었다. 둘째의 지독한 이모 바라기는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엷어져 갔다.

"전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좋다는 걸 몰랐어요."
"엄마가 너무 좋아요."
"'엄마' 하면 ~ 엄마 뒷모습만 기억이 났었거든요."
"먹을 것 만들면서, 청소하면서, 빨래하면서, 책 보면서 엄마는 늘 등만 보였던 것 같아요."


2년 동안 아이들과 미국에 있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시간을 종종 거꾸로 돌려놨다. 초등학교 3학년, 다 큰 아이를 아기처럼 업어 주는 걸 좋아했다. 아이의 체온이 내 등 뒤로 타고 들어와 퍼져 나가는 온기를 너무 좋아했다. 앞가슴으로 아이의 체온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것을 등 뒤로 받아들였다.

"현근아, 이렇게 현근이가 컸어도 아직은 엄마가 널 업어줄 수 있지만 앞으로 일 년 후, 2년 후 세월이 지나면 엄마는 널 더 이상 업을 수 없게 될지 몰라. 엄마는 나이가 들고, 힘이 조금씩 없어지지만, 너는 점점 커지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게 될 거야."

"아니요.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저를 업을 수 있어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때마다 현근이는 엄마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곤 했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부정하던 그 꼬마 아이는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 어른이 되었다. 더 이상 아들을 업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떠났고 자기만의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의 빈방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옷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현관 입구에 있는 딸 방을 먼저 들렸었다. 양쪽으로 야무지게 땋아 내린 머리를 하고 하늘을 쳐다보는 6살 어린 딸아이의 흑백 사진을 본다. 나란히 놓여 있는 딸아이의 결혼사진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딸의 어린시절과 결혼 사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사진 두 장 ⓒ 한난옥

 
아들 방을 들린다. 가지고 놀던 미니카를 잠바 주머니에 집어넣은 상태에서 울다가 웃는 현근이 흑백 사진 두 장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혼자 슬며시 웃는다. 이어서 예리하게 쿡 가슴 밑이 아리다.
 

아들의 울고, 웃는 두 장의 흑백 사진 지금은 어른이 되버린, 어린 시절의 아들 모습 ⓒ 한난옥

 
아이들이 비어있는 두 개의 방으로 예전 모습을 띤 채 다시는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펭귄 사진이 겉표지로 되어있던 책 <남극의 눈물>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 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아이들의 텅 비어있는 방과 겹친다. 펭귄의 새끼 사랑은 끝판왕이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과정은 사람의 그것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수많은 펭귄의 무리 속에서도 자기 새끼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며 새 생명을 지키는 과정은 감동과 눈물이다.

그러나 새끼들이 혼자 먹이를 구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부모 펭귄들은 앞만 바라보며 떠난다. 엄마 아빠를 마냥 기다리던 새끼들은 지친 나머지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먹이를 구하러 남극의 험한 바다로 새끼들은 자기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영원한 이별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코알라와 펭귄으로부터 배운 귀한 교훈 하나가 있다.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엄마는 아이와 지혜롭게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추어서 늘어트린 관계의 끈과 관계의 각도를 섬세하게, 그러나 반드시 재조정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코알라와 펭귄하고는 다르니 예고 없는 이별은 말고,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엄마의 가슴에서 밀어내기를 해야 한다. 먹이고 입히는 일차원적 관계에서 정신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관계 위치 에너지의 변화 = 마음 에너지의 변화'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예컨대 가슴으로 안아서 키우던 아기가 커서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유치원생이 되면 그만큼 거리가 형성되고, 그 거리의 폭은 점점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게 되어있다.

거리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어른이 다 된 자식과 대화의 주된 소재가 먹는 것, 입는 것을 중심으로 여전히 이어진다면 자식에겐 쓸데없는 간섭(소유, 집착)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터. 자식과 관계는 거기서 한걸음도 더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중략)...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일 먹을 수 있네'


이런 노랫말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뭉클하다. 딱 거기까지다. 50~60대 이상의 사람들 정서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우리들 자식에게는 이런 부채감이 통하기 어렵다.

이제 부모가 된 우리는 부모의 삶을 신바람 나게 살자. 자식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디자인하고 자신들의 삶과 철학에 맞추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쿨하게 마음에서 밀어내자. 밀어낸 빈자리에 그들의 정신을 공유해보자. 결코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읽었던 책 한 줄,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를 읽고 마음에 남아 있는 여운, 운전하다 바라본 가을 풍경, 아들의 연구과제, 딸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에서부터 인생의 마지막 섹션으로 막 접어드는 60세 이후 나의 계획, 늙어감의 느낌에 이르기까지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는 무궁무진하다.

건강한 수다가 마음의 빈자리를 메우면 흘러들어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더 기름지게 만들어 준다. 둥지를 떠났던 아이들이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떠나왔던 둥지를 가끔은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그렇게 하자.
#마음에서 밀어내기 #코알라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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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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