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4명 서훈 취소

남의 공적 가로채 3대에 걸쳐 5명 독립유공자 행세... 첫 문제제기 후 20년만

등록 2018.09.14 15:10수정 2018.09.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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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자 정부 관보. 고 김정수(독립장), 고 김낙용(독립장), 고 김관보(독립장), 고 김병식(애족장)에게 지난 1968년 수여한 정부 포상을 지난 달 15일자로 취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 심규상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가 가짜 독립운동가로 의심받아온 4명의 공적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서훈을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하지만 가짜 의혹이 제기된 지 20여 년 만의 때늦은 조치여서 보훈 행정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정부는 지난달 27일자 관보를 통해 고 김정수(독립장), 고 김낙용(독립장), 고 김관보(독립장), 고 김병식(애족장)에게 지난 1968년 수여한 정부 포상을 지난달 15일 자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관보에는 취소 사유가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짐'으로 돼있다.

1968년 보훈처는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출신인 김정수(1909∼1980)에게 항일조직인 참의부 등에서 항일투쟁 활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국장(현 독립장, 3등급)을 수여했다. 그런데 보훈처는 지난 2009년 '김정수'와 거의 유사한 공적으로 '김정범'에게 애국장(4등급)을 수여했다. 한 사람의 공적을 놓고 두 사람에게 이중으로 포상을 했는데 이중 '김정수'가 '가짜'라는 얘기다.  

의혹 제기에서 취소까지 걸린 시간 20년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5년 4월 김정수(왼쪽)와 김정범(오른쪽)이 얼굴 생김새는 물론 출생지가 다르고 나이또한 10살이나 차이가 난다며 김정수에 대한 가짜 의혹을 제기했다. . ⓒ 김세걸

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김정수'가 '김정범 선생'의 공적을 가로챈 가짜라고 의문을 제기한 때는 지난 1998년이다. 보훈처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2015년 김진성 선생의 유족과 언론의 지적을 받고서야 재조사 작업을 벌였다. <관련 기사: 가짜 독립운동가 논란, '대전 김태원' 말고 또 있다(2015년)>

'김정수'와 함께 서훈이 취소된 고 김낙용(독립장), 고 김관보(독립장), 고 김병식(애족장)은 모두 김정수의 일가로 각각 김정수의 조부, 부친, 숙부다. 김정수는 또 다른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형이다. 보훈처는 1998년 애국지사 묘역에 있던 '가짜 김진성'(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을 30년 만에 파묘한 후 그 자리에 진짜 애국지사인 '김진성 선생'을 안장했다.

김정수 일가가 남의 공적을 가로채거나 조작하는 방법으로 3대에 걸쳐 5명이 독립유공자 행세를 하며 각종 혜택을 누려온 것이다. <관련 기사: 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신고에 17년째 "검토중"(2015년)>


20년 전 김정수 등 가짜 독립운동가를 고발한 김세걸(71,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의 장남, 현 서울 노원구 거주)씨는 "문제를 제기한 지 20여 년이 지나서야 서훈을 박탈했다"며 "어이없다"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때늦은 서훈 취소 결정에 대해 "서훈을 받은 분을 단순 의혹제기로 공적을 재심의 하기는 곤란했다"며 "김정수 심사 당시 서훈의 근거가 되었던 가출옥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서훈 취소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김정수의 인우보증서 필적감정과 각종 증빙자료를 통해 김정수가 가짜 독립유공자임을 밝혀 서훈을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가짜로 드러난 김정수의 묘(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 김정수의 본적은 평북 영변군 용산면이다. 하지만 묘비에는 진짜 독립운동가인 김정범의 원적지인 '평북 초산'이라고 새겨 넣었다. 지난 2014년 12월에는 그의 처를 합장했다. (지난 2015년 사진) ⓒ 김세걸


보훈처가 '김정수'를 가짜 독립운동가로 결론 내렸지만 그와 그의 부인은 여전히 서울 동작동 애국지사묘역 181번에 안장돼 있다. 또 유공자 후손으로 행세하며 보훈연금을 받아 챙긴 후손들에 대한 형사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서훈 취소 후 서울현충원에 이장 조치 협조 요청을 하고 지난 3일 김정수 유족에게 이장 안내를 했다"고 밝혔다. 또 "보훈청에서 각 대상자별 수혜 내역을 확인 중에 있으며, 검토 후에 형사고발 등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세걸씨는 "3대에 걸쳐 거짓으로 받아 챙긴 보훈연금만 수십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파묘는 물론 부정하게 받은 돈을 모두 회수하고, 사기죄 등으로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복회대전지부 회원들은 보훈처에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 전수조사 요구에는 '난색'

아래는 국가보훈처 관계자와 서면 질의 인터뷰 요지다.

- 지난달 15일 4명의 공적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서훈을 취소했다. 보훈처는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 취재 당시에도 공적의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확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안의 중대성으로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게 처리되어야 할 것으로 그간 자료 확인과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의, 자료보완을 위한 보류, 재심의 등을 거쳐 서훈 취소가 결정되었다."

- 결과적으로 고 김정수에 대한 가짜 의혹이 제기된 지 20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서훈받은 분을 단순 의혹 제기로 공적을 재심의 하기는 곤란했다. 지난 2014년부터 김정수의 공적이 가짜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김정수 심사 당시 서훈의 근거가 되었던 가출옥서류가 확인되지 않아 서훈 취소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정수의 주민등록상 지문이 불일치하고, 인우보증서 필적감정, 각종 증빙자료 확인을 통해 김정수가 가짜 독립유공자임을 밝혀 서훈을 취소하였다." 
 

진짜 독립운동가 김정범 선생의 공훈록(왼쪽)과 가짜 로 드러난 김정수의 공훈록(오른쪽). <오마이뉴스>는 두 사람의 공훈내용이 유사하고 근거서류가 같아 한쪽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 심규상

 
- 서훈 취소에도 김정수와 그의 부인은 여전히 서울 동작동 애국지사묘역 181번에 안장돼 있다. 묘 이장이 안 된 이유는?
"서훈 취소 직후 서울현충원에 이장 조치 협조 요청을 했고, 지난달 3일 서울현충원에서 김정수 유족에게 이장 안내를 했다."

- 김정수 일가는 김진성을 포함 3대에 걸쳐 5명이 독립유공자 행세를 하며 후손까지 각종 혜택을 누려왔다. 이중 사기 등 혐의로 형사처벌 가능한가?
"보훈(지)청에서 각 대상자별 수혜내역을 확인중으로, 검토 후에 형사 고발 등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거짓 공적으로 수십 년간 이들 일가가 그동안 받은 연금은 얼마인가. 이중 회수된 금액은 얼마인가? (관련법상 최근 5년 치에 대해서만 환수가 가능하다.)
"지난달 15일 서훈 취소된 고 김정수, 고 김병식에 대해 보훈급여금 각 4200여만 원, 4800여만 원에 대한 환수 절차가 진행중이다. 고 김낙용, 고 김관보는 최종 수권자가 사망해 각각 80년 1월, 83년 10월 제적되어 환수할 금액이 없다." 

- 일부 보훈단체에서는 잇단 가짜 독립유공자를 접하며 독립유공자에 대한 전수 조사를 요구하고 있는데?  
"기 서훈자에 대한 전수조사는 포상의 안정성 등을 감안하여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다만, 독립운동 관련 자료수집과정 등에서 독립유공자의 영예성 제고를 위해 현저한 정도의 친일행적이 발견된 경우와 공적이 가짜로 확인될 경우 독립유공자 서훈을 취소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독립유공자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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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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