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물결이 산에 불난 것 같네, 그랴!"

꽃무릇으로 붉게 타오른 영광 불갑사

등록 2018.09.19 08:56수정 2018.09.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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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에 가면 듣기 좋은 말이 있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나누는 반가움의 표시로 '만나서 영광!'.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불갑사에서 만나는 재미나는 인사말, '만나서 영광입니다.' ⓒ 전갑남


영광하면 법성포 굴비가 떠올릴 정도로 굴비의 고장입니다. 요즈음 굴비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상사화입니다. 상사화 중에서도 천년고찰 영광 불갑사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으로 별천지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꽃무릇으로 붉은 꽃세상이 펼쳐지다
  

영광 불갑사 일주문. 상사화축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 전갑남


해년마다 상사화축제가 열리는 불갑사. 올해도 축제기간(9월 13일부터 19일까지)에 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인연으로 우연찮게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들 수다가 참 재미있습니다.

"와! 뭔 놈의 꽃들이 요렇게 징그렇게도 많이 피었당가?"
"뭐가 징그러워! 이쁘기만 허구먼!"
"그야 이쁘제! 하도 많이 피어놔서 혀는 소리제!"
"근디 요렇게 엄청나게 핑게로 산에 불난 것 같네 그랴!"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붉은 꽃물결로 아름다움을 더하는 꽃무릇 군락지입니다. ⓒ 전갑남

 

불갑사 산기슭에 피어난 꽃무릇. 무더기로 피어났습니다. ⓒ 전갑남


아주머니들 말마따나 엄청나게 피어난 꽃들로 그야말로 붉은 꽃세상입니다. 산기슭이나 나무 밑이나 죄다 붉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꽃무릇은 더욱 많이 피어났습니다.

"꽃은 혼자 핑 것보단 여럿이 피어야 더 이쁜 것 같지?"
"물론이지! 근디 이 꽃 말이여, 하나를 봐도 요상스럽게 이쁘네!"

  

홀로 피는 것보다 여럿이 피어 더 아름다운 꽃무릇. ⓒ 전갑남


꽃은 홀로 피는 것보다는 어울려 피어야 예쁘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무릇은 꽃 한 송이만 놓고 자세히 봐도 예쁘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원래 석산(石蒜)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무릇은 여러해살이 알뿌리식물입니다.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무리지어 자랍니다. 구월 중순에 붉은색으로 피어나는데, 잎도 없이 비늘줄기가 쑤욱 올라와 꽃이 달립니다.
  

꽃무릇을 자세히 보면 어떤 신비스런 멋이 느껴집니다. ⓒ 전갑남


꽃무릇을 보면 참 신비스럽습니다. 꽃대머리에 여러 꽃들이 방사형으로 나와서 하나씩 붙습니다. 여러 송이의 큰 꽃이 우산모양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꽃은 핏빛처럼 붉고, 여섯 개의 꽃덮게는 얇은 피침꼴로 뒤로 말립니다. 수술은 꽃잎보다 훨씬 길게 뻗어 나와 멋스러움을 더합니다.

꽃무릇은 꽃대만 보이지만, 잎은 이미 사라진 뒤에야 꽃줄기가 올라왔습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않은 것뿐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자라면서 잎은 꽃을 못 보고, 꽃은 잎을 만나지 못하는 생육환경을 가졌습니다.


꽃무릇은 상사화와는 다른 개체입니다. 꽃색깔과 꽃잎도 차이가 많습니다. 상사화는 여름 야생화이고, 꽃무릇은 가을 야생화입니다. 잎과 꽃이 만나지 않는 점에서 비슷해 상사화라 혼동하여 부릅니다.

애달픈 전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꽃무릇과는 다른 상사화입니다. 노란꽃이 참 예쁩니다. ⓒ 전갑남


불갑사 대웅전 오르는 길, 꽃무릇과는 다른 상사화가 목격됩니다. 대부분 꽃이 진 상사화는 몇 그루가 남아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꽃대만 있고 잎이 없는 것은 꽃무릇과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갑사 꽃세상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셔터를 누릅니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발걸음도 분주합니다. 아주머니들과 나는 상사화 전설이 담긴 안내판에 멈춰 섰습니다.

"여기 좀 봐, 상사화 전설을 적어놨는데, 참 애달프고 그러네!"

옛날 금슬 좋은 부부에게 늦게 얻은 딸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병환 중에 돌아가시자 딸은 아버지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스님 수발을 하던 승려가 그 여인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게 되었습니다. 수발승은 스님 신분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애만 태었습니다. 불공을 마치고 여인이 집으로 돌아가자, 스님은 그리움에 사무쳐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장식물과 함께 피어난 꽃무릇 천지. ⓒ 전갑남


이듬해, 스님의 무덤가에 잎은 지고 꽃대만 올라오는 꽃이 피어났습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며 말 한 마디 건네 보지 못한 스님의 마음을 닮은 것입니다.

"긍께 스님이 상사병을 앓았다는 소리 아녀! 출가한 스님이 응큼했구먼!"
"사람 맴은 스님이라고 다를까!"
"그럼, 스님은 잎이고, 여인은 꽃이었겠네?"
"그야 두 말 허먼 잔소리!"
"근디 말이여, 여인은 스님 맴을 정말 몰랐을까?"


아주머니들은 옥신각신! 결국, 여인은 스님의 진심을 몰랐을 거라 의견에 일치를 봅니다. 수도하는 스님께서 설마 자신에게 연모의 정을 품을 거라 어찌 상상이나 하였겠냐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일주문을 빠져나오며, 길동무 아주머니들이 장난기 섞인 말을 내게 건넵니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나도 "저두요!"라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들도 미소를 짓습니다. 그 미소가 꽃무릇처럼 환합니다.
#영광 #불갑사 #꽃무릇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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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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