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9명, 생생한 재판거래 내막 완전정복

[추석 밥상에서 아는 척 하기 ①] 전교조 법외노조화 시나리오 움직인 인물들

등록 2018.09.22 11:40수정 2018.09.22 11:40
3
원고료로 응원
밥상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추석. 세상 돌아가는 판을 좀 안다고 은근히 내세우고 싶은 당신에게 <오마이뉴스>가 드리는 팁. 최근 핫한 사회 뉴스 중 추석 밥상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좋은 뉴스만 골라 핵심을 추렸습니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정이 싹트는 추석 보내세요.[편집자말]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다시 법외노조로 내몬 문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로 이뤄진 사법농단이 속속 드러나면서 재항고 이유서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문서 하나에 얽힌 인물과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우선 재항고는 어떤 의미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법률용어인 재항고는 '항고법원과 고등법원의 결정이나 명령이 법령에 위배됨을 이유로 대법원에 다시 항고하는 일'이다.
 
문제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 건 2014년 10월 8일이다. 2013년부터 고용노동부와 법외노조 통보 처분취소 재판을 벌여온 전교조는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법내노조'로 둘 것을 요청하며 서울고등법원에 '법외노조 통보 효력 정지'를 신청했다. 첫 효력정지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고용노동부는 곧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그 후 서울행정법원에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해 전교조는 또 다시 법외노조로 내몰렸다. 결국 전교조는 다시 효력 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다시 법내로 들어온 전교조. 고용노동부는 재항고했으며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차 효력 정지 신청의 인용을 파기환송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다.
 
2014년 7월 신청부터 2015년 6월 파기환송까지 약 1년. 이 사이 청와대, 법원행정처, 고용노동부는 그야말로 '한 팀'으로 움직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문건, 정황, 검찰이 발표한 수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팀에는 모두 9명이 있다. 누군가는 이른바 큰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발이 돼 움직였다. '재항고 이유서'라는 하나의 문서로 뭉친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그때 무슨 일을 벌였을까.

[관련기사] 양승태 대법원, 전교조 재판 서류 '대리 작성' 정황 드러나
[관련기사] 법원행정처-고용부, '전교조 재판' 놓고 거래 의혹
 
큰 그림 그린 김기춘, 손발 돼 움직인 법원행정처
 
a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화이트리스트' 관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2018.08.22) ⓒ 최윤석

 
국정·사법농단을 벌인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다.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가 신청한 '법외노조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김 전 실장은 소위 '기획'에 들어갔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김영한 비망록'으로 알려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이다. 수첩에 적힌 인용 다음 날의 기록은 '전교조 관련 대처 : ①즉시 항고 인용 ② 헌재 결정 합헌'이었다. 김 전 실장의 주문을 법원행정처로 전한 인물은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a

임종헌 법원행정처차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2016.10.18). ⓒ 남소연

 
이때부터 청와대와 법원행정처는 긴밀한 공조를 펼친다. 사법농단 수사과정에서 임종헌 법원행정처 전 기획조정실장이 사용하던 이동식 디스크에서 발견한 문서는 이를 알려주는 핵심 증거물이다. 문서명은 '(141007) 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제의 재항고 이유서가 등장한 것이다. '(141007)'는 문서를 최종 작성한 날이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사법농단 수사에서 대량 발견된 법원행정처 문서는 앞머리에 작성일을 표시했다. '(전교조-Final)'은 명확히 이 재항고 이유서가 전교조와 관련됐음을 가리킨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내용이다. 43쪽으로 이뤄진 문서는 위법 사항을 조목조목 서술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인용 결정이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에서 법리오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효력 정지 신청의 부적법 등이 그 예다.
 
재판에 관여하지 않고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했던 임 전 실장의 이동식 디스크에서 전교조와 관련한 재항고 이유서가 발견된 점은 임 전 실장이 재항고 이유서 작성에 직접 관여한 사실을 방증한다.
 
이 문제의 문서와 같은 논거로 이뤄진 재항고 이유서는 2014년 10월 8일,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한 수송수행자(조오현 전 고용노동부 서기관을 비롯해 3명의 행정사무관으로 모두 4명)에 의해 제출된다.
 
a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개혁 5대 입법 연내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2015.12.7). ⓒ 남소연


이와 관련해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법원행정처, 고용노동부가 당시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설명했다.

종합하면, 청와대는 서울고법의 효력 정지 인용을 재항고로 뒤집기 위해 법원행정처와 접촉했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재항고 논리를 가다듬어 이유서를 대신 작성하고, 청와대가 문제의 이유서를 건네받아 노동부를 거쳐 대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러한 공모를 거쳐 '생산된' 재항고 이유서를 바탕으로 당시 주심 고영한 대법관은 '파기환송'을 결정한다. 헌법재판소가 노조 설립이 가능한 교원의 범위를 초·중·고교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였음이 파기환송의 근거였다.
 
a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이 계속 불거지는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이 열리고 있다. 고영한 대법관이 퇴임사를 하고 있다(2018.8.1). ⓒ 연합뉴스


전교조와 관련한 대처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에 따라 움직인 최원영 청와대 전 수석비서관, 재항고 이유서 작성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실장, 법원행정처 작성 재항고 이유서를 그대로 제출한 고용노동부 이기권 전 장관과 4명의 직원들, 재판 결론을 청와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며 '사법권 독립'을 위배한 고영한 전 대법관.

'재항고 이유서'라는 문서 하나에 얽힌 이들은 같은 목적으로 뭉쳐 기어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았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의 행동은 법을 넘어섰고, 전교조는 지난달 30일 이 9명을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현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대체로 완료한 상태라고 전했다.
#전교조 #김기춘 #사법농단 #법외노조 #재항고 이유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