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산다고요? 요즘 '이것' 확인하셨어요

[서평] 이영미의 건강한 먹거리 여정 '위대한 식재료'

등록 2018.09.21 21:54수정 2018.09.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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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이 좀 부실해도 달걀 몇 개만 있으면 달걀찜이나 달걀말이 등 그럴싸한 음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달걀만큼은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곤 한다. 가격에 비해 영양도 우수하다. 그러니 몇 개 남겨두고 미리 구입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는 우리만의 사정이 아닐 것 같다. 음식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그 누구라도 해먹을 수 있는 '달걀프라이'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걀 고르는 것이 참 어렵다. 무항생제나 친환경, 무착색료, 동물복지 등의 문구가 들어간 달걀들, 함초며 인삼 등을 먹여 키웠다는 닭이나 유정란 등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여하간 너무 저렴한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찝찝하고, 비싼 것은 왠지 상술에 속는 것 같아 달걀을 살 때마다 망설이고 고민하기 일쑤다.


그런데,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나마 건강한 달걀로 알고 있었던 무항생제 인증 달걀도 살충제의 위험을 품고 있었다니 대체적으로 값싼 30개 한판 달걀들은 오죽할까? 싶은 것. 그런 한편 생산자가 속이는 것일까? 인증이 엉망인 걸까? 어떤 기준으로 인증이 될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달걀을 고를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그러나 답을 찾지 못했다.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하고 있지 않아서다. 그래서 달걀에 대한 불신과 불안만 커졌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눈을 돌려본 것이 유기농 달걀. 그런데 30개 한판에 2만 5천 원 정도의 가격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유기농 달걀들이 맞을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먹어야 하는 달걀. 그래서 그동안 결코 개운하지 못한 불안감으로 먹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위대한 식재료>(민음사 펴냄) 덕분에 이런 고민이 조금 풀렸다는 것이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달걀 속사정이지만 말이다.
 
2.무항생제 인증달걀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생산하여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은 달걀

이 달걀의 핵심은 '무항생제'이다. 따라서 1의 방식으로 똑같이 키우면서 사료에서 항생제만 먹이지 않아도, '무항생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즉 좁은 케이지에서 밤낮없이 알을 낳게 하고, 심지어 착색제나 산란촉진제를 써도 항생제만 안 쓰면 '무항생제 인증'을 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무항생제 인증으로 친환경 마크가 찍혔다 해도, 일반 값싼 달걀과의 차별성이 그뿐이라면 그리 엄청나게 건강한 달걀이라고 볼 수 없다. 케이지에서 키우므로 닭이 건강하지 않다. 진드기 때문에 살충제 같은 것을 쓸 수도 있다. 2017년에 터진 살충제 달걀이 이런 경우다. 하지만 항생제는 쓰지 않았으니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것이고, 그래서 '친환경' 달걀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에도 수준이 있음을 기억하자. - 138~139쪽 '달걀'편에서
  

9월 16일 성묘길에 들른 충남 예산의 한 유정란 생산 농가의 사육장 모습 일부. 수탉이 제법 많이 보였다. 오랫만에 본 수탉이다. 암탉과 수탉이 교미할 수 있는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이 유정란이다. 이 농가에서 생각하는 적절한 비율은 '암탉 15마리에 수탉 1마리' 다. ⓒ 김현자

   

9월 16일 성묘길에 들른 충남 예산의 한 유정란 생산 농가. 수탉도 제법 많이 보였고, 닭들이 올라 앉을 수 있는 횟대를 바위로 대체한 것도 좋아 보인다. 이 농가는 이런 축사 몇개로 되어 있다. ⓒ 김현자

   

9월 16일 성묘길에 우연히 발견한 충남 예산의 한 유정란 생산 농가에서 사온 유정란이다. 방사되고 있었고 수탉도 제법 많이 보여 유정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크기가 들쭉날쭉, 색도 일정하지 않다. 어렸을 때 봤던 달걀들이 그랬다. 유정란을 구입할 때 반드시 따져봐야 할것은 암탉과 수탉이 교미를 할수 있는 사육조건(환경)인가?이다. ⓒ 김현자

 
책을 바탕으로 좀 더 설명하면 ''무항생제'는 인증제도라도 있지만, 무색소나 무산란촉진제는 그나마의 인증절차도 없다. 그냥 농가가 그렇다고 주장하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139쪽)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유정란 인증을 매기는 제도도 없다. 사육 농가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 암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의 수탉을 섞어 기르거나, 수탉을 섞어 길러도 닭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케이지 사육이라면 교미 확률은 낮아진다. 그러니 유정란은 최소한 단층의 시설에서 키워야 하고 수탉의 숫자도 중요'하다.

책은 '①가장 값싼 달걀 ②무항생제 인증 달걀 ③무색소, 무산란촉진제 등을 밝혀놓은 달걀 ④목초액, 녹차, 인삼 등 특정 사료를 내세운 달걀 ⑤유정란 ⑥방사란 ⑦동물복지 인증 달걀 ⑧유기농 달걀', 이렇게 8종류로 구분해 어떤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이며, 어떤 허점 혹은 장점이 있는지 등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위대한 식재료>는 쌀과 소금, 간장, 콩을 비롯하여 달걀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많이 먹는 포항초, 딸기, 포도, 귤, 멸치, 굴, 돼지고기, 막걸리 등과 같은 식재료를 찾아나선 남다르고 특별한 여정이다. 생산과 판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강하며 양심적인 식재료를 생산해낸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달걀 편은 19쪽. 이중 달걀을 8종류로 구분해 들려주는 것만 9쪽이다. 설명이 쉽고 명확하다. '이 설명만으로도 책값을 치르고도 남겠다' 감탄까지 하며 읽었더랬다. 달걀은 앞으로도 종종, 틀림없이 애용할 비중 높은 식재료인 만큼 책이 주는 정보는 두고두고 도움 될 것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굴이 김장철 즈음에 제철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흔히 10월부터 4월까지가 굴이 나오는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최고의 맛을 내는 계절은 11월 하순의 김장철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뒤인 1, 2월이다. 사실 싱싱한 굴을 만날 수 있는 산지라면 3,4월의 굴도 질이 좋다. 김장철에 나오는 이른 굴은 몸통이 거무스름한 빛이 많다. 맛은 아무래도 싱겁다. 그런데 1월에 들어서면 굴은 추위에 탱탱하게 살이 올라 뽀얀 우윳빛을 띠게 된다. 이때의 굴이 가장 맛있는 굴이다. 그러니 11월 김장철에 굴 한번 사먹고 끝낸다면 얼마나 손해인가." -219쪽 '굴'편에서

"소비자들은 '100퍼센트 오렌지주스'와 '무설탕'이라고 쓴 제품은 오렌지를 그대로 갈아서 아무 것도 안 넣고 그대로 병에 넣어 파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개 이런 주스는 진짜 100퍼센트 오렌지 생즙을 가열하여 7분의 1로 농축한 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재가공한 것이다. 가열하면 멸균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이 편해지고, 게다가 7분의 1로 농축하면 무게와 부피가 확 줄어들어 운반비용이 저렴해진다. 이렇게 들여온 농축액에다가 7배의 물을 섞으면 '100퍼센트 오렌지주스', 14배의 물을 섞으면 '50퍼센트 오렌지주스가 되는 것이다. 긴 농축과정에서 당연히 특유의 오렌지 향과 새콤한 맛이 줄어든다. 그래서 여기에 오렌지 향이 나는 합성향료와 신맛이 나는 구연산을 첨가하는 게 보통이다." - 349쪽 '귤'편에서
  
각 주제마다 달걀에 대한 정보처럼 건강한 식재료를 선택하는데 두고두고 써먹을 중요한 정보와 관련 이야기들이 많다. 책이 다루는 18개 식재료 중 장류와 콩, 블루베리, 쭈꾸미, 막걸리를 제외한 13개 식재료는 나도 늘 즐겨 구입했던 것들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콩과 장류를 직접 선택해야만 한다. 친정 부모님이 지난해 농사를 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담고 있는 건강한 식재료를 판별하는데 도움 될 정보들이 고맙기만 하다.

달걀 구입할 때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것
 

달걀을 사려면 알아야 할 것이다. 높은 곳에 붙여 놓았기 때문일까. 보거나, 읽고 가는 사람이 없어 아쉬웠다. 현명한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만든다. 생산자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관여해야 좋은 물건이 나온다. 그러려면 이와 같은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 김현자

   

2018년 9월 16일 현재 자주 이용하는 대형 마트에서 팔리는 달걀에는 이처럼 산란날짜+생산농가코드번호+사육시설이 표기되어 있다. 2019년 2월 23일부터는 모든 유통 달걀에 이와같은 번호가 들어가야 한다. ⓒ 김현자

   

2018년 9월 16일 자주 찾는 대형마트 달걀판매코너 일부 모습이다. 대략 10개 제품 중 딱 한제품만 번호를 볼 수 있게 포장, 나머지는 번호를 전혀 볼 수 없는 종이 등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지난달부터 번호표기가 개선되었다. 살충제달걀 파동 당시 달걀 번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번호를 볼수 없게 포장한 것은 소비자들의 권리를 막는다. (특정제품이라서가 아니라 자주 찾는 마트라서 찍은 것이다.) ⓒ 김현자

  
무항생제 인증, 유정란, 동물복지 인증, 방사란 등 달걀에 붙어 있는 이런저런 설명들, 그 뜻은 알지만 생산 사정을 알길 없는 소비자라 지레 포기하고 말았던 건강한 달걀에 대한 욕심.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장보러 간 길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으로 들여다보니 그동안 간과했던, 소비자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고 요구해야 할 중요한 정보들이 보인다. 살충제 달걀 파동 당시 살충제 달걀을 가려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달걀마다 표기되어 있는 번호(농장코드)였다.

그런데, 고유번호가 있다고 하나 소비자들로서는 어떤 환경에서 언제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를 반영, 8월 23일부터 생산자 고유번호에 사육환경번호(1~4번)를 넣게 했다. 그리고 내년(2019년)에는 산란일자까지 표기하도록 했다(위 사진 참고). 소비자들이 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선택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9월 16일 현재 자주 가는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달걀 대부분은 소비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들을 가린 채 판매되고 있었다. 생산자(업체)들이 달걀 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번호를 가린 채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달걀들. 살충제달걀 파동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당연히 번호만큼은 알고 구매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번호를 알 수 없는 포장을 한 상품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 그동안 자주 봐왔으면서 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까? 생산자들에도 문제가 있지만 소비자들이 소비주체로서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것에 무관심하거나 묵과했기 때문 아닐까?

안내문도 어른인 나도 고개를 들어야만 하는 높은 곳에 붙어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읽기도 불편했다. 때문인지 10여분 남짓 있는 동안 달걀을 사는 사람들은 많아도 안내문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면, 다시 말해 순수하게 달걀만을 구입하고자 갔더라면 나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물론 그날 처음으로 본 안내문이었다.

먹을거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품질이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싼값만 우선하거나, 모양새에 끌려 좋은 상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책 덕분에 눈이 깨인 느낌이다. 대형마트에서 달걀이 팔리는 것을 보며 '좋은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만든다'는 책 어딘가에서 읽은 것이 떠올랐다. 동감이다. 건강한 식재료를 만드는 데 도움될 책이다.

위대한 식재료 - 가장 건강하고 올바른 우리 제철 식재료를 찾아가는 여정

이영미 지음,
민음사, 2018


#먹거리(장바구니) #위대한 식재료 #살충제달걀 #달걀번호 #이영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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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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