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했겠다...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 몇 가지

[서평] 신창호.남정미 저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

등록 2018.09.20 09:38수정 2018.09.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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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론서를 추천할 때는 본능적으로 '월 듀랜트'가 쓴 <철학 이야기>를 떠올렸다. 철학 사상을 철학자의 삶과 연관 지어서 쉽게 설명하는 <철학 이야기>는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깊이를 겸비했다.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은 좋은 책이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고 나서는 사정이 좀 바뀔 것 같다. 철학 특히 동양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것 같다. 

사실 관계나 깊이를 떠나 어떤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차원에서 본다면 <철학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책이다. 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 본 비전공자의 경험으로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이 책 만 한 것을 못 만났다. 로마라는 거대한 산맥을 일일이 언급하면서도 로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책이다. 


한편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은 '에드워드 기번'의 역작 <로마제국쇠망사>와 닮았다. 로마의 역사를 모두 다룬 <로마인 이야기>에 비해서 <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의 쇠퇴기만을 다뤘음에도 로마사에 관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위치를 점유한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은 '우리가 몰랐던 동양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동양철학'을 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로마제국쇠망사>에 비교한 것은 동양철학에 집중하면서도 내용이 쉽고 간결하며 우리가 모르고 오해했던 동양철학에 대한 사실을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표지 표지 사진 ⓒ 나무발전소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머릿속에 박제처럼 새겨 두고 싶었던 구절을 살펴보자. 
 
 동아시아기후는 어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확확 바뀌잖아요. 확확 바뀌면 뭘 해야 합니까? 대비를 해야지. 유비무환! 따뜻했다가 추워져. 그럼 김장도 해야 하고, 옷도 장만해야 되고, 뭐 이것저것 대비를 해야 하는 철학이 동양철학입니다. 그러면 서양철학은? 대비를 할 필요가 없죠.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헛생각을 하는 거예요. '별은 왜 떠 있을까?' 그걸 유식한 말로 '관념철학'이라고 해요. 근데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헛소리하고 앉아 있는 거지. 
  
철학이라는 고매하다고 생각했던 학문이 날씨를 비롯한 풍토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천상의 신선들이 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철학이 기껏 반찬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재미났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해서 동양철학이 성행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벼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이라는 것이 우연이 아니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구분하는 주요 잣대가 반찬 문화가 있느냐 없느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뇌리에 남았다. 
 
한여름은 짜증나고 덥잖아요. 그때는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을 공부합니다. 부드럽고 즐기려면 여유가 있어야 되죠. 그러니까 산에 가서 시 한 수 짓고, 시조도 읊고. 그게 여름에 하는 공부입니다. 그런데 <논어>라든가 <맹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치 어떻게 하나?'는 엄청나게 딱딱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논어, 맹자는 겨울에 공부하는 겁니다. 옛날에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그런 것까지도 생각을 하고 짰습니다. 아까 분위기라고 했잖아요. 그런 것까지 고려를 했다는 거죠.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누구나 많이 듣고 자란다. 보통 어른이 되어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니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자니 이 말을 한 참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겠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공부하는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그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해야 효율적이라는 의도였다. 

논어와 맹자를 논하는 어른들은 고집불통이라는 인식이 많다. 알고 보니 동양철학은 고지식한 학문이 아니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배우는 과목을 달리하는 융통성과 효율성을 먼저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이 책으로 알았다. 


남존여비 사상이 유교적 이념에서 나왔고 서양보다 동양이 여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도 오해였음을 이 책으로 확인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이 서양의 사고라면, 동양은 남자와 여자가 우열이 없이 각각 따로 존재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고 하니 남자의 특성이 하늘을 닮았고 여자는 땅과 닮았다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남녀는 독립되어 서로 마주 볼 뿐 한쪽이 귀하고 천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는 형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이 공자였다. 형편이 되지 않으면 냉수 한 그릇만 올리고 제사를 모셔도 된다고 가르쳤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자니 동양철학은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사구시를 외쳤던 실학도 동양철학의 일부였다는 것만으로도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를 거둘 이유가 충분하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 - 우리가 몰랐던 동양철학의 모든 것

신창호.남정미 지음,
나무발전소, 2018


#남정미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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