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행복, 어떤 스위치를 켜겠습니까?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38]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등록 2018.09.29 15:27수정 2018.09.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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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병동 휴게실 한쪽 구석에서 어느 중년 여인이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엉엉 울부짖는 것보다 북받치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 한층 더 안쓰럽게 보이는 법이다.


고개를 푹 떨구고 어깨를 들먹이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묵직한 슬픔이 전해졌다. 아마도 가족 중 누군가가 암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여인은 오래도록 그렇게 울었다. 나도 덩달아 슬퍼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다.

'암'이라는 이름의 병은 참으로 슬프고 몹쓸 병이다. 우리 사회에서 암은 죽을 병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오죽하면 암 판정을 받으면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암 선고'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현대 의학의 발달로 과거에 비하면 암 치료율이 월등히 높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한번 뇌리에 박힌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20대 중반의 건강하던 딸내미가 어느 날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난소에 혹이 있는데, 그 상태가 심각하다고 하여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술을 받았다.

항상 사고는 순식간에 닥치고 불행은 도적처럼 찾아온다. 암을 판정받는 순간부터 당사자나 가족들은 불안과 공포, 슬픔, 우울, 상실, 두려움 등 무척이나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병마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프면 매달릴 사람은 의사뿐이다. 현대 의학을 생명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꽉 움켜잡음과 동시에 종교 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초월적인 존재에게 간절하게 매달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이다. 틈만 있으면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가피를 내려달라고 하루도 빼지 않고 기원하기를 4년이 지났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존재이다.


행복이란 추상명사는 아주 막연하지만 불행은 매우 구체적이다. 고통을 직접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숨쉬기조차 힘이 드는 순간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불안과 초조가 마음속을 첨벙첨벙 휘젓고 다닐 때는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당황과 두려움이 뒤섞인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일단 큰 불행에 빠져들면 큰 풍파 없이 지낸 평범했던 일상이 곧 행복한 날들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즉 불행하지 않았던 나날, 그렇다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았던 그런 날들이 행복으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불행은 행복에 대한 관념을 일깨워주고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알게 한다.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대단한 축복이고 행복의 조건이다. 그런데 아프기 전까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건강함의 행복을 생각하지 못한다.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라도 시원하게 콸콸 나오는 수돗물에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행복한 상황이 오래가면 그것이 행복인지 아닌지조차도 모른 채 무덤덤하게 살아간다.

보통의 일상은 다람쥐가 쳇바퀴 굴리는 듯한 그렇고 그런 날의 연속이다. 별일 없는 것이 지극히 순탄한 삶인데, 그것에 무료함을 느끼고 뭔가 특별한 것을 자꾸 원한다. 가슴이 마구 벅차오르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만큼 마음이 즐겁고, 거창한 성취, 무엇인가에 크게 만족한 상태, 이런 것만이 행복이라면 한평생 행복한 날이 과연 몇 날이나 될까?

인간의 삶에서 행복이란
 

너는 행복하냐? 행복이란 무엇인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해왔던 질문이다. 감사함을 아는 겸허한 마음속에 행복이 깃든다. ⓒ 이명수

 
인간의 삶에서 행복이란 것은 정말 중요한 가치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면 저마다 대답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사실 행복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행복은 천차만별의 얼굴을 가졌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들이 슬프고 우울한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모르는 까닭이 분명히 있겠지만, 부와 명성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의 일단을 말해준다.

우리는 날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바쁘게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궁극적인 인생 목표로 추구하는 행복,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기를 쓰고 오로지 한쪽으로만 몰아가는 세력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 즉 자본이다.

자본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행복이 시장에, 상점의 진열대 위에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명품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값비싼 사치품을 만들어 사람의 욕망을 자극한다. 더욱 크고 좋은 집, 값비싼 승용차, 우아한 옷, 화려한 가구, 고가의 장신구 등을 소유하는 사람이 곧 '명품 인생'이라며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 끝없이 상품을 소비하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돈으로 구매한 상품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손에 넣은 상품의 효과에 익숙해지면 금세 그 행복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또다시 원하는 욕망을 손에 넣기 위해 더욱더 일을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그것을 손에 넣으면 행복은 또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이런 속성 때문에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개인의 삶과 시간을 돈벌이에 예속시켜야 하며,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즉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욕망을 이루고자 한다는 의미다. 맹목적인 명품 선호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내 인생에서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무리하게 발돋움을 한다.

자본은 사람의 그러한 비교 심리와 허영심을 파고들어 슬쩍슬쩍 유행을 변화시킨다. 디자인을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등으로 신상품을 만들어 어떻게든 상품을 오래 쓰지 못하도록 만든다. 유행에 뒤처지면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라고 막대한 광고료를 투자하여 세뇌시킨다.

외국의 사치품 업계에서 한국인은 그야말로 '봉'이 된 지 오래다. 똑같은 제품인데 유독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으로 팔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국 유명 브랜드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이 각별해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사기 때문이다.

보통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라는 기이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우리나라 사치품 시장의 특색이다. 유달리 남의 눈을 의식하는 한국인의 '허영과 허세' 소비 심리가 작용하여 천민자본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소욕지족(小欲知足)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산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참 덧없는 것임을 알고 자신의 손으로 일구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안다.

중국 시인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공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한 삶을 노래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소신껏 자유를 선택한 그의 용기와 결단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지금 행복을 주제로 글을 풀어가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행복하냐?" 살아오면서 수없이 해왔던 질문이다. 대답은 늘 모호했던 것 같다. 물론 행복한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바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딸아이가 암 수술을 받은 후로부터는 딸아이의 몸 건강, 마음 건강 회복이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 딸아이의 건강이 말끔하게 회복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딸아이의 건강 문제가 천만금보다도 더 간절하다.

행복한 사람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 Pixabay


행복에 관한 담론은 참 많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책은 행복을 언급하고 있다. 행복에 대한 명문들을 보면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신적인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돈에 의한 행복, 물질적인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말씀이라 믿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시험 되고 다듬어져 온 공통분모가 거짓일 리는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돈이 곧 행복이라며 좇고 있다.

돈이 행복의 큰 조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가 윤택해지고, 아프면 치료도 받을 수 있고,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세상에서 대우도 해준다. 하지만 재물에 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난할 때 목표로 삼았던 돈을 손에 쥔 후에도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인간이다.

소득이 늘어난 이후에는 행복에 대한 생각, 눈높이도 바뀌게 마련이다. 자꾸만 팽창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돈의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움켜쥐려고만 하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소유 정신을 설파하신 법정 스님은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가 아니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가에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말씀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행복에 조건을 걸기 때문이 아닐까? 돈이 얼마만큼 모이면, 집 평수를 얼마만큼 더 넓히면, 아이들이 성적이 얼마만큼 오르면, 얼마큼 더 날씬해지고 예뻐지면 하면서 전제 조건을 달고 있다.

그 조건이 충족되면 여행도 많이 다닐 것이고, 욕심을 내려놓을 것이며, 선행도 하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이제 목표를 달성했으니 지금부터는 더 욕심부리지 않고 행복해야지" 하면서 하루아침에 어제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이고 행복이고 미루다 보면 습관이 된다. 지금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나중에도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성이다. 내일은 또 어떤 문제가 생겨서 내 심신을 괴롭히게 될지 알 수 없다.

인생길이 끝나는 날까지 넘어야 할 산은 계속 나올 것이고, 건너야 할 물 또한 많을 것이다. 굽이굽이 풀어내야 할 문제투성이의 인생에서 언제 행복할 것인가? 다음으로 미루기만 해서는 영영 행복이란 신기루를 좇다가 말지도 모른다.

"행복에서 불행의 거리는 고작 한 발짝밖에 안 되지만, 불행에서 행복의 거리는 매우 먼 거리이다"라는 유대인의 격언이 있다. 불행으로 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행복해지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불행해지기는 순식간이지만 행복을 유지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사람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그 몇십 배에 해당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행복은 대체로 긍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있으며, 행복은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인간관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정말 그렇다. 가족이 빠진 행복은 반쪽짜리임이 분명하다. 나도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삶의 기쁨이고 원동력이 되어 주는 사람은 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일생은 밥보다 행복을 먹고 더 튼튼해지고 아름다워진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선현의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행복할 방법은 단순하고도 명쾌해진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는 마음대로 맹추위를 따뜻하게 바꿀 수는 없지만 기분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행복하고 안 하고는 온전히 내 생각에 달려 있고, 다른 사람의 잣대로 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잣대로 재는 것이 옳다.

딸아이는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성실히 하고 있다. 더 큰 불행으로 번지지 않고 그쯤에서 그친 것에 감사한다. 감사함을 아는 겸허한 마음속에 행복은 깃든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남에게 빌릴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행복은 지금 당장 내 마음이 선택하면 된다. 불행의 스위치를 끄고 행복의 스위치를 켜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암 수술 #행복 담론 #소욕지족(小欲知足)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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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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