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노태우의 충격 고백

[추석밥상에서 아는 척 하기 ⑥ 심화편] 부동산 광풍의 주역은 따로 있었다

등록 2018.09.25 11:28수정 2018.09.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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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추석. 세상 돌아가는 판을 좀 안다고 은근히 내세우고 싶은 당신에게 오마이뉴스가 드리는 팁. 최근 핫한 사회 뉴스 중 추석 밥상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좋은 뉴스만 골라 핵심을 추렸습니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정이 싹트는 추석 보내세요. [편집자말]
대한민국 부동산 투기의 기원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부동산 투기 문제. 이것과 함께 연상되는 이미지가 복부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주범으로 몰면, 이들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 정도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 주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부인들이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한테 1차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들도 투기로부터 이익을 얻고 투기 열풍에 끼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주범은 따로 있었다.

해방 뒤에 일본인 재산이 적산(귀속재산)으로 처리돼 민간에 불하됐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 부동산 투기의 기원이 있다. 부동산으로 일확천금을 버는 부조리한 풍조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적산을 불하한 1차적 주체는 미군정이고, 2차적 주체는 이승만 정권이다. 이들은 "적산을 국유화해 국가 주도 경제개발의 밑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여론을 무시한 채 임의로 불하를 단행했다. 이들이 불하한 적산의 구체적 면면에 관해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부동산 투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국은 자신에게 협력할 자본가 계급을 육성하기 위해 귀속재산을 헐값으로 불하했고, 미국 후원 하에 성립한 이승만 정부는 이 정책을 계승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 후 10년 사이에 26만 3744건, 44억 3700만 원이 처분되었는데, 공대지·부동산·주택 등이 24만 7810건으로 93.7%를 차지하고, 금액으로는 귀속 기업체가 22억 4500만 원, 부동산이 21억 7600만 원으로 절반씩을 차지했다."
-2004년에 <역사비평>에 실린 논문
 
불하 건수로 보면 전체의 93.7%가 부동산이고, 불하 금액으로 보면 절반 정도가 부동산이었다. 적산 불하가 부동산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국 언론의 사표로 불리는 송건호의 <송건호 전집> 제7권에서는 "미군정 3년간에 특이한 사항은, 식민통치시대 전(全) 한국 산업자본의 98%, 전 자산의 약 80%에 달하는 일본 재산이 적산으로 귀속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적산이 산업자본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상황에서 그 적산의 주류를 이룬 게 바로 부동산이었던 것이다.
 

한때 군정청 청사로 쓰였던 중앙청.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일본인이 남기고 간 부동산 헐값에 친일·친미파에 넘겨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적산을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았다. 장상환 교수의 언급처럼 친미세력에 유리하게 분배했다. 그런데 그 친미세력이란 다름 아닌 친일세력이었다. 해방과 함께 위기에 처한 친일세력이 살아남기 위해 친미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적산은 사실상 친일세력의 수중으로 돌아갔다.
 
"미군정의 귀속재산 처분이 연고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원래 일본인 소유자에게 재산관리를 위임받은 사람들이 거의 귀속재산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미군정이 처분한 일본인들의 재산은 대부분 친일 성향을 지녔던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다."
- 안치용 전 카이스트 대우교수의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중에서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친미·친일세력에 적산을 분배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엄청나고도 과도한 특혜까지 함께 제공했다. 귀속재산을 시가의 10% 정도에 불하하는가 하면 15년 이상의 장기 할부로도 불하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부동산을 친미·친일파한테 헐값으로 이전했던 것이다.


적산 처리에 의한 부동산의 헐값 불하는 소수의 한국인들을 벼락부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바로 지금의 재벌 기업들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한국 재벌들은 자기 자본과 자기 기술로 돈을 벌어들인 기업들이 아니다. 헐값으로 부동산 특혜 분양을 받고 이를 발판으로 재산을 불린 집단들이다. 태생적으로 이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노동자 복지를 향상시켜 생산성을 늘리거나 기술 개발에 돈을 투자해 회사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건실한 대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재벌 기업들은 부동산 투기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재산을 불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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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2018.9.13) ⓒ 이희훈

  
'돈은 부동산으로 벌라'고 가르쳐준 세력은 따로 있다

한국인들에게 '돈은 부동산으로 벌라'고 가르쳐준 것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때까지는 투기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적산 부동산 헐값 매입으로 일확천금을 버는 재벌들은 생겨났어도, 부동산 투기의 열풍까지는 생겨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투기의 열풍을 조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다. 이 시기에는 서울 강남 개발로 상징되는 부동산 투기가 국가권력의 방조 내지 후원 속에 진행됐다.

국가권력이 방조 혹은 후원했다는 점은 1972년 제정된 '특별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에도 나타난다. 이 법률에서는 개발촉진지역 즉 강남에 땅을 매입해 건물을 지으면, 나중에 건물을 매도하더라도 등록세·재산세·도시계획세·면허세 같은 지방세는 물론이고 부동산 투기 억제세 같은 국세도 면제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강남 부동산 투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임시조치법이었던 것이다.

이런 투기 열풍 속에서 상당 규모의 이권이 정권 핵심부로 빨려 들어갔다.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토지가 체비지(정부 또는 지방 자치 단체가 토지 구획 정리 사업에 필요한 경비에 충당하려고 환지 계획에서 제외하여 유보한 땅) 명목으로 국가에 환수되는 일도 있었다. 장상환 논문은 "1970년대 최대의 부동산 투기는 강남 신도시 개발"이었다면서 "박 정권의 정치자금도 부동산 투기를 통해 조달됐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재벌 기업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이들도 투기에 뛰어들어 엄청난 이익을 움켜쥐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노태우 회고록> 하권에 이런 말이 있다.
 
"복부인들이 부동산 투기의 주역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부동산 투기의 주역은 대기업들이었다."
 
한국 재벌들한테 부동산 투기의 길을 알려준 것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다. 이들에게 부동산 투기의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은 박정희 정권이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 문제를 만든 장본인들은 바로 이들이다. 미군정, 이승만 및 박정희 정권, 재벌이 이 나라를 양극화 및 국민 분열로 몰아넣은 장본인들이다.

그러므로 복부인들을 과도하게 비판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들도 욕을 먹어야 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주역이 아니었다. "주역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부동산 투기 #적산 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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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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