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65번째 생일 맞는 게 무서운 이유

[현장] 장애인들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연령제한 폐지하라” 촉구

등록 2018.09.21 17:29수정 2018.09.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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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연령제한 폐지 촉구하는 중증장애인들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연령제한 폐지 촉구하는 중증장애인들 ⓒ 신지수



희귀질환인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최선자씨는 2년 전부터 비자발적으로 '집순이'가 됐다. 활동보조인과 함께 동네 교회도 가고 복지관에서 수영도 하던 그였지만 요즘에는 현관문을 나서지 못 하는 날이 더 많다. 지난 2016년 9월 만 65세가 되면서 그동안 받던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르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노인복지 대상으로 간주돼 장애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노인장기요양급여 수급자로 전환된다. 한 달 400~500시간 정도의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던 장애인들은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한 달 약 100시간,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활동보조를 받게 된다.

이용 가능한 활동보조 시간이 1/4 수준으로 확 줄어들면서 최씨의 삶도 변했다. 활동적이었던 그에게 이제 외출은 사치다. 밥 먹는 것도 힘들다. 근육에 힘이 없어 말 그대로 숟가락 들 힘도 없는 중증장애 1급이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한 끼도 챙겨먹기 힘들기 때문이다다. 손을 1cm 정도 들어 올리는 게 전부다.

그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때는 두 끼를 먹을 수 있었다"라며 "지금은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많다. 그래서 살도 엄청 빠졌다"라고 고통을 토로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일이다. 노인요양보호사가 올 때 까지 참거나 기저귀에 의존한다. 그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잘 안 마신다"라고 했다.

장애인들 "혼자선 죽지도 못 하는데... 활동보조 서비스 못 받아"

이는 최선자씨만의 사연이 아니다. 만 65세 인 혹은 넘긴, 아니면 목전인 모든 중증장애인들의 문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21일 낮 12시쯤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만 65세 연령제한'에 대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제출에 앞서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층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연령제한에 대해 규탄발언을 쏟아냈다.


장애인 김명학(60)씨는 "나이가 들수록 활동보조가 많이 필요하다"라면서 "활동보조 시간이 더 늘어나지는 못할망정 줄어드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했다. 최선자씨도 "만 65세가 된다고 해서 장애인이 아닌 게 되느냐"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금 65세 넘는 어르신들이 사회활동을 얼마나 많이 하냐"라며 "65세면 청춘이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65세가 되면 가만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살라는 것이다"라고 울부짖었다.

"차라리 죽으라고 해라. 우리끼리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빌딩에 올라 뛰어 내리고 싶은데 혼자서는 올라갈 수가 없어 못 죽는다."

최용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활동보조는 장애인의 권리다. 장애가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는 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라며 "활동보조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노인장기요양 대상자로 넘어가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됐다"라고 했다.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연령제한은 장애인 차별이라고도 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만 65세가 넘어가면 장애인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노인 장기요양보호법에 따라 요양보호 쪽으로 지원체계가 옮겨간다"라며 "이는 국가가 명백하게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자기결정권 침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사항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장애인활동지원 제도와 노인장기요양 제도는 명백히 다르다"라며 "전자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고 후자는 건강상 움직일 수 없어 집에서 요양 지원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을 지원하는 제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애인은 65세가 넘으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요양만 하라는 말이냐"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만 65세를 넘긴 많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시간이 줄어들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한다"라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피해를 없애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복지부 등 관련부처에 적극적으로 시정권고를 내릴 것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연령제한 규정에 대한 지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12월 만 65세 이후에도 중증장애인들이 노인장기요양과 활동지원서비스 중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으나, 보건복지부는 수급자 편중과 형평성 문제 등을 이야기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후 연령제한 폐지 논의는 답보 상태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이 이날 재차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은 것은 절박함 때문이다. 최용기 회장은 "차별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정을 넣어 문제제기를 하는 것밖에 없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등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시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자고 하지 않았냐"라면서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최선자씨도 "그 뉴스를 보면서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장애인 연령제한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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