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호칭' 바꾸자 하니 돌아온 말 "넌 우리 집이 우습구나?"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①]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등록 2018.12.22 12:31수정 2018.12.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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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는 결혼 이후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온 청오리(활동명)의 경험을 풀어낸 에세이로, 총 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첫번째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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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국립국어원의 성차별적 정의를 바꾸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 유성애


올해 초에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시가 식구들이 놀라고, 분노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남편의 형과 그의 아내, 나아가서는 그 아내의 부모님까지 충격을 받고 근심에 휩싸일 거라고는, 그리고 그 중 몇몇은 눈물까지 흘리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을 이토록 분노와 상심으로 몰아넣은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를 했기에, 그들이 입을 모아 사과하기를 요구했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 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은 나의 이 한 마디 말에서 시작됐다.

명확한 '가족 서열', 꼬리를 물고 이어진 의문

나는 이 년 전에 한국 가정의 막내아들과 결혼했다. 시가에서 가족 모임이 열리면 나와 남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남편 형 부부 이렇게 여섯 사람이 모였다. 나는 시부모님을 좋아했고, 모임이 잦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흔쾌히 그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만남이 이어질수록 묘한 순간이 늘어갔다. 기분을 망칠 정도는 아니지만 잠깐 가라앉게 만들기엔 충분한, 그런 씁쓸한 찰나.

언젠가 여섯 사람이 모여서 외식을 하는데 시아버지가 술을 시켜서 모두에게 한 잔씩 돌렸던 적이 있다. 시어머니, 남편의 형, 남편, 남편 형의 아내, 마지막에 나. 이 순서대로 술을 따라준다고 갈 지 자로 엇갈리는 시아버지의 팔 동작을 보며,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시아버지(그리고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이상하게 보일까?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을 건너뛰며 두 아들에게 먼저 술을 주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연장자 우선이라고 하기엔 굳이 따지자면 내가 남편 형의 아내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그것도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만으로도 한국 가정에서는 너무나 탈권위적인 행동인데, 이 순서까지 의식하는 내가 지나친가? 쪼잔한가? 이 사소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호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남편 형이 나에게 들이밀었던 '가족 서열'이 정확하게 저 순서대로였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시가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어머님, 아버님, 아주버님, 형님… 이렇게 모두 '님'자를 붙여서 부르는데 나를 무슨 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왜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면 남편의 형제자매를 부를 때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라는 호칭을 쓰지? 남자들은 처형, 처남, 처제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형이나 동생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 사이에서도 형님과 동서라는 구분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왜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 성만 따를까? 왜 부계 쪽은 가까울 친 자를 써서 '친가'라고 부르고, 모계 쪽은 바깥 외 자를 써서 '외가'라고 부를까? 왜 다 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인데 한쪽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되는 걸까? 부계 쪽 어른들은 '큰아버지, 큰어머니'라면서 모계 쪽 어른은 '외삼촌, 외숙모'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의문을 품은 뒤로,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물어봤다.

"너는 남편 동생에게 도련님이라고 불러?"
"부르지. (불편하지 않아?) 싫지."

"너는 형님이나 아주버님이라고 불러?"
"글쎄, 서로 안 불러."

"너는 아가씨나 올케 같은 말 써?"
"아니, 꼭 불러야 할 때는 '저기요' 정도?"


내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남동생도 결혼을 했다. 남동생의 아내가 될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형님', 내 남편에게는 '아주버님'이라고 인사했다. 나는 타이밍을 재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호칭들이 좀 불편한 것 같은데 전부 이름에 '씨' 자 붙여서 부르는 건 어때요?"

남동생의 아내는 난처한 얼굴로, 내 남편을 OO씨라고 부르는 건 이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도 한술 거들었다. 불편해도 부를 말이 따로 없지 않냐. 네가 싫어도 별 수 있냐. 결국 그날의 대화는 내 호칭을 '형님'에서 '언니'로 바꾸는 데서 마무리됐다.

시부모님에게 가족 호칭이 차별적이라고 처음 말했을 때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직장에 다닐 때 여자 직원들이 처음에 '김 양'이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미스 김'이 되고, 결국 마지막에 '김OO 씨'가 됐다며, 가족 호칭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겠지만 지금은 네가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주위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호칭이 좋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는 그것이 정말 바꿀 수 없는 일인지 궁금했다.

올해가 시작되던 즈음, 나는 단체 대화방에서 남편 형 부부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하며 제안했다. "우리 한 번 이름에 '님' 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조금 거창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이 후세대가 걸어가는 길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올린 메시지 옆에 '1' 표시가 사라진 거로 봐서 모두가 읽은 것은 분명한데,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남편 형 부부 아기의 백일잔치가 열렸다. 나는 남편과 함께 금반지를 사 들고 한 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잔치 장소로 찾아갔다. 지하 식당으로 들어서자 남편 형의 아내가 나를 보고 첫 마디를 뗐다.

"동서, 왔어?"

그 사람과 나는 여태껏 서로 존댓말을 써왔는데 갑자기 반말을 해서 놀랐고, 호칭 얘기를 꺼낸 마당에 굳이 나를 동서라고 부르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아기를 안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앉아서 묵묵히 밥만 먹었다. 양가의 어른들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았다. 남편 형 아내의 아버지는 식당 한쪽에서 꼼지락거리는 유아들을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요새는 딸을 낳는 게 더 좋죠. 저는 우리 집 큰아이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은 딸을 셋 낳았으면 만점이었는데, 마지막에 아들을 낳아서 아쉽게 됐다고."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잔치 자리가 끝나고 시부모님을 통해서 남편 형 아내의 말이 전해졌다. 자신은 호칭을 바꾸자는 말이 '아래에서 위로' 나온 것이 매우 불쾌하다고. 또 내 문자에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말 섞으면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 호칭 개선 운동의 일환으로 청오리가 제작한 머그컵. 겉면에 남편 형이 했던 말을 프린트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부모님 상투 잡고..." 호칭 문제 꺼내자 날아온 말말말

나는 어찌 됐건 역할(?)을 다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형 부부는 내 표정이 어두워서 백일잔치를 망쳤다며 분개했다. 중재하려고 끼어든 시어머니는 더욱 그들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보다 못한 시아버지는 '서로 원하는 대로 부르든지, 원하는 대로 불리든지, 아예 부르지 말자'라고 제안했지만, 남편 형 부부는 기존의 호칭 문화를 따르지 않는 것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도록 밤낮으로 남편의 전화기가 울렸고, 남편은 결국 사과하겠다며 두 손 들었다. 나는 남편이 사과하는 것이 무척 내키지 않았지만, 아기 엄마가 괴로우면 그 집 아기에게까지 나쁜 영향이 간다는 시부모님의 말에 설득 당했다.

이대로 씁쓸하게 마무리되는 건가. 그러나 남편 형 부부의 반응은 예상과는 또 달랐다. 남편의 형은 사과 문자를 보고 더욱 격분했다. '왜 자꾸 너희의 의도를 해명하려고 하냐'며, '정신은 못 차려도 예의는 차리겠다'는 말로 다시 사과하기를 요구했다. 뒤이어 나를 가리켜서 '원래 낮은 위치'라며 단체 대화방에 여러 가지 말을 쏟아냈다.

'괘씸죄', '부모님 상투 잡고 흔드는', '나이가 같아서 존댓말도 써 줬는데', '말도 붙여 줬는데', '일도 안 시켰는데', '형님에 대한 도전', '우리 집을 우습게 봤구나', '우리 가족 다 불쌍해졌어', '우리 집안은 여자들이 더 존중받는데'…기타 등등. 나아가서 남편 형은 '그깟 그 호칭 때문에 1년이나 고민했냐'며 '여성 인권에 대해 얘기하려면 경력 단절처럼 공감될 얘기를 하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이어지는 비아냥 속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두 마디였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야?"
"자격지심 아니야?"


이 말이 아팠던 이유는, 아마 살아오는 동안 이런 말이 수없이 내 안에서 되풀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이 살아가면서 어느 한순간은 자신에게 저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한 번 눈 감고 지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작은 목소리를 지워버리지 않았을까.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시어머니는 길게 이야기하지 말고 사과하라며, 이제 그만하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내가 태어난 가족도 아니고, 내 선택으로 만든 가족 관계 안에서도 나는 또 한 번 입을 다물어야 하는 걸까?

나는 답장을 썼다.

"제가 이 가족에서 빠지면 '낮은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괘씸죄'로 벌을 받지 않아도 되나요?

착하신 부모님 '상투 잡고 흔드는' 아랫것, 일도 안 시켰는데 감히 동등해지겠다고,
나 역시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똑같이 존중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몹쓸 아랫것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빠질 테니 모두가 원하는 대로 '집안'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다른 기사]
"그건 자격지심 아니야?" 남편의 형은 말했습니다 http://omn.kr/1a97s
"결혼했으면 당신은 내 아랫사람이야!" http://omn.kr/1cko0
#명절 #페미니스트 #평등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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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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