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에 들어섰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책이 건네는 세상살이 이야기55]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등록 2018.09.26 17:41수정 2018.09.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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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표지 그림 ⓒ 그림책공작소


엊그제 2018년이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올해도 시끌벅적한 뉴스들이 매스컴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2017년이 탄핵과 대통령 선거 등, 국내 정치적 이슈로 술렁거린 한 해였다면 올해 상반기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회담이 가장 큰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서로에 대한 반목과 힐난으로 보내었습니다. 때로는 평화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고 곧 다시 팽팽한 대치상황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벌어지는 한반도의 상황을 보면 깜짝 놀랄만한 변화가 보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로 신나게 달리는 경의선 열차를 상상하게 됩니다. 자랑스럽고 감격적인 일이지만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보니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문득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라는 그림책이 떠올랐습니다.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마달레나 마토소 글, 그림/ 그림책공작소)는 참 긴 그림책입니다. 사실 그림책의 쪽수는 여느 평범한 그림책처럼 30여 페이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모든 페이지의 정 중간을 쭉 잘라놓아 아래, 위쪽을 따로 넘기며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 되지요. 그래서 아주 긴 여행 이야기가 되는 그림책입니다.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내지 그림 ⓒ 그림책공작소


이야기는 주인공 가족이 하얀색 승용차를 타고 "이제 여행을 떠나자"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 가족은 자동차를 타고 길을 따라 앞으로 쭉쭉 나갑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접어들며 양떼도 만나고, 차들로 꽉 들어 차 막힌 도로도 만나며 여행을 계속합니다. 강변에 내려 사진도 찍고 숲길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비도 만나고 어떤 날은 화창한 하늘을 만나기도 하지요. 어두운 터널도 만나고 높은 산길을 오르기도 합니다. 하얗게 반짝이던 차는 진흙 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타이어가 터져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기도 합니다. 가다 지치면 길거리에서 보이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모르는 길을 헤매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가고 싶었던 바로 그 곳인 멋진 해변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길 저길 여러 모양의 길도 만나고, 이런 날씨 저런 날씨도 만납니다. 진흙 투성이가 되는 일도 생기고 타이어가 터지는 것 같은 위험한 일도 생기지요. 하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인생길을 쭉쭉 달립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은 아는 길처럼 편안한 길도 있지만 알지 못하는 길 같은 두려운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레며 도전하는 묘미도 있겠지요.

그림책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길이 아니라 그림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주목하게 됩니다. 그림책의 전 장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저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짐을 나르거나 건물 외벽을 닦거나 공사를 하거나 운동 경기를 합니다. 벌목을 하거나 과일들을 팔기도 하지요. 지나가는 차를 보며 인사해주기도 합니다.


모두 저마다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휴가를 즐기지요. 누구나 열심히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세상은 자동차 바퀴처럼 잘 굴러간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이 그림책에서 주목해야 할 매력은 주인공 가족입니다. 글자가 별로 없는 그림책이라 딱히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지만 여행을 하며 한솥밥을 먹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해둡니다.

아무튼 이 가족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통상적인 그림책에서 남성이 운전자로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운전자가 여성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자"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것도 그녀입니다. 뒤에 탄 두 사람도 재미있습니다. 성별이 가늠되지 않는 회색머리씨와 갈색 얼굴의 어린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성차별도 인종차별도 없는 기분 좋은 가족입니다. 편견을 벗어버린 가족이지요.

여행이 끝나고 더러워진 차를 기계 세차장에서 깨끗이 씻어내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시원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습이니 활기차고 희망적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대략 4가지 이야기로 요약되었네요.

첫번째는 그것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내는 길이든, 우리 모두가 각자 걷고 있는 인생의 길이든, 아니면 그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길이든 여러 가지 길을 만날 것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편하고 즐거운 길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덜컹거리는 오프로드도 만날 것이고 흙탕물도 튀길 수 있고, 꼬불꼬불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산길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찬찬히 가다보면 어느새 가고자 하는 그곳에 도착할 것이라는 거지요.

둘째는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 길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모두가 길의 주인이며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만나는 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말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 안에서도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가진 편견은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편견은 그 무엇의 최고의 용도를 찾아내지 못하게 하지요. 편견없는 생각으로 하나의 가족이 되어 함께 손을 잡고 걸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메시지는 '다시 시작'입니다. 여행이 마무리되는 순간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모든 장면에서 그 마지막과 시작을 경험하기에 마지막과 시작의 원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문제는 마지막이 되면 맥이 빠지거나 환희에 젖거나 하며 곧 다시 올 '시작'을 잊어버리고 준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종종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그림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볼 이유가 생깁니다.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여행을 즐기긴 했는데, 그렇담 도대체 우리가 길을 가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각자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책을 만든 출판사 '그림책공작소'에서는 원서에는 없는 그 해답을 살짝 제시해줍니다. 그림책의 뒷표지에 '숨은그림찾기'같이 그 해답을 펼쳐져 놓았지요. 무엇일까요?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뒷표지 그림 ⓒ 그림책공작소

 
"중요한 건 너의 방향"

속도와 거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마달레나 마토소 지음, 민찬기 옮김,
그림책공작소, 2018


#그림책공작소 #마탈레나 마토소 #속도와 방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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