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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버린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 소년이 목격한 것은

[리뷰] 영화 <린 온 피트> 아메리칸 드림의 균열 담은 소년의 여행

18.09.26 11:46최종업데이트18.09.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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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 온 피트> 영화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열다섯 살 소년 찰리(찰리 플러머 분)는 아버지 레이(트래비스 핌벨 분)와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온다. 어느 날 혼자 달리던 찰리는 우연히 경주마 조련사 델(스티브 부세미 분)로부터 말을 돌보는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한 찰리는 델이 소유한 경주마 가운데 '린 온 피트'에게 애착을 가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죽으면서 갈 곳을 잃은 찰리. 대회에서 부진한 린 온 피트마저 멕시코로 팔려갈 처지에 놓이자 찰리는 말을 몰래 차에 싣고 오래전 연락이 끊긴 고모 마기(앨리슨 엘리엇 분)를 찾아 와이오밍 주로 떠난다.

영화 <린 온 피트>는 작가 월리 블로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말>과 <45년 후>를 연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앤드류 헤이 감독은 삶에서의 안정감과 사람들과의 관계, 따뜻한 가정을 찾아나서는 외롭지만 독립적인 한 소년을 그려낸 원작 소설을 읽고 바로 영화화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는 <린 온 피트>의 연출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은 마음을 울리지만, 감상적이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 보호받고 기댈 수 있는 따뜻한 곳을 원한다는 기본적인 욕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런 소박함과 관계 본연의 다정함 등을 영화에 펼쳐내고 싶었다."
 

▲ <린 온 피트>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인간과 말의 교감을 다룬 영화는 많다. 할리우드에선 <검은 종마><블랙 뷰티><씨비스킷><워 호스>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선 <각설탕>이 유명하다. 그러나 <린 온 피트>는 맥을 달리한다. 영화에서 인간과 말의 교감은 일부일 뿐이다.

<린 온 피트>는 소년과 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린 온 피트>는 가족들과 따스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욕망을 담았다. 또한, 안정과 거리가 먼 미국 하층민의 빈곤과 불안을 관찰한다. 바꾸어 말하면 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인물이고, 아메리칸 드림의 균열을 생생히 목격한 사람이다.

영화는 아버지 레이의 죽음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 찰리는 말 '린 온 피트', 조련사 델, 기수 보니(클로에 세비니 분)를 만난다. 그는 어릴 적 가족을 버린 어머니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한 유대 관계를 바란다.

찰리는 경주에서 부진한 말은 멕시코에 팔려가고 델과 보니가 편법을 써서라도 이기는 데 혈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별한 '가족'이라 여긴 관계가 철저한 '계약'이란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찰리는 린 온 피트를 데리고 그리워하던 고모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 <린 온 피트>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찰리가 린 온 피트와 고모를 찾는 여정에 오른 후반부는 성인 세계로의 이른 진입이다. 영화는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인 요소를 지워버리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냉혹한 현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행 중에 찰리는 참전군인, 웨이트리스, 이민자, 노숙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난다. 어떤 이는 찰리를 성의껏 돕고 다른 이는 찰리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 영화엔 선과 악이 분명한 인물들이 나오질 않는다.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린 온 피트>에서 '말'은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혼자가 된 찰리는 버려질 신세에 처한 린 온 피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찰리에게 린 온 피트는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며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찰리가 고난을 헤치고 이상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다. 찰리가 린 온 피트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 <린 온 피트>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린 온 피트>는 처절한 생존기답게 '먹는' 장면이 다수 나온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건 '뛰는' 장면이다. 처음에 찰리는 그저 열심히 달린다. 그러면 충분하다고 여긴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가 달리는 모습은 의미가 다르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죽음과 폭력을 접하며 상처도 입었다. 이젠 많은 것이 두렵기만 하다.

찰리는 여행 중에 만난 선의를 기억해야 한다. <당나귀 발타자르>처럼 말 '린 온 피트'와 함께 세상의 온갖 풍경을 목격한 찰리에게 앤드류 헤이 감독은 <무셰트>의 죽음과는 다른 내일이란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순간 흐르는 노래 'The World's Greatest'의 가사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야"는 찰리, 그리고 모두를 위한 위로로 다가온다. 제7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린 온 피트 앤드류 헤이 찰리 플러머 스티브 부세미 클로에 세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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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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