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이라면 똑똑하고 우수해야지!"

[해외 입양인 이야기] 스펜서 라따르스키

등록 2018.09.27 11:15수정 2018.09.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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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는 오리건 주립대학을 졸업했다 입학 후 2학년 겨울까지 자기에게 맞는 전공을 결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결국 국제학을 전공했다. ⓒ 정현주

  
"글쎄요. 딱히 인종차별을 느껴본 적은 없고요. 제 친한 친구들이 장난치는 게 있습니다. 물론 상처를 준다거나 기분 나쁜 건 절대 아니고요. 저를 향해 던지는 일종의(?) 인종차별적인 멘트가 있어요. 제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때문에 하는 말인데… '아시아인이라면 똑똑해야지!', '학교에서 우수해야지!' 같은 것들이죠."

지난 7월과 8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스펜서 라따르스키(Spencer Latarski)는 인종차별 당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1993년생, 한국나이 스물여섯, 그는 생후 6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오리건주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그에게 자주 했던 인종차별적인(?) 농담은, 스펜서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나온 이 말들은, 비록 농담이었지만 그를 더 학업에 힘쓰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학교 일에 참여하게 했다.

인터뷰를 해나가며 그에게서 젊은이다운 활력과 호기심, 미래에 대한 기대,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믿었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신뢰했으며,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교사로서 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대했던 기자는 지금까지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던 '젊음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꿈은 비영리단체나 국제 NGO에서 일하는 것
 

스펜서 라따르스키 가족 스펜서의 부모는 항상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었고, 진로를 정하거나 무언가를 해나갈 때 어떤 압박도 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꼭 말해주었고, 필요할 때는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 정현주

 
스펜서는 오리건주에 있는 유진 국제고등학교에 다녔다. 고교 시절 그는 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 깊이 몰입하는 학생이었다. 학점이나 대학 진학,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동료들의 압력(?) 때문에라도 그는 똑똑한 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에게는 똘똘 뭉쳐서 늘 모든 일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과도 폭넓게 사귀었다. 또 얼티미트 프리스비(Ultimate frisbee, 미식축구와 비슷한 원반 게임) 팀에서 선수로 뛰었는데, 그러다보니 금방 많은 친구들과 친해졌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와도 경기를 했는데, 그러는 동안 상대팀 선수들 중 몇 명과도 매우 친해져서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며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오리건주립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2학년 겨울까지 매우 힘든 기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경영학, 심리학, 물리학, 인체생리학 등 폭넓은 분야를 전공해 보려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전공할 만큼 흥미를 끌지 못했다.


자라면서 항상 수학, 과학 성적이 우수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정하려다보니 결정하기가 더 어려웠다. 오랜 방황 끝에 그는 결국 국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해왔던 분야를 전공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그는 국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취업했다.

우수한 학업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학교 내 스포츠팀 선수로 뛰고, 다른 지역 학교들과 경기를 치르는 가운데 타학교 학생들과도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고교 생활. 2년 간 전공을 찾기 위해 여러 분야를 탐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대학 시절. 그리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행 취업. 원 없이 자신의 뜻을 펼쳐본 그의 삶은 많은 한국 청년들이 선망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 직업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네. 저는 은행원으로서 제 직업에 만족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닙니다."

스물여섯. 예상과 달리 그의 선택지는 '안정된 직장'이 아니었다.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비영리 단체나 국제 NGO에서 일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비영리 단체들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된 것에는 그가 입양인이라는 사실이 한몫했다. 그는 입양을 통해 자기 삶의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주로 백인들만 사는 곳에서 자랐는데도 스펜서의 아시아 혈통이나 입양 사실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입양인 캠프에 처음으로 참가했을 때, 입양으로 인해 괴롭힘 당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를 남을 돕는 삶으로 이끌었다. 첫 입양캠프에서 부정적인 사례를 들었음에도 그가 입양, 혹은 해외 입양에 찬성하는지 궁금했다.

"네. 찬성합니다. 세계 여러 곳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으로 볼 때 해외 입양은 필요합니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 꼭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못 갖춘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아이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 기회를 우리가 막아야 할 이유가 뭐죠? 모든 아이들에게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저를 입양한 부모님이 제 부모님입니다"
 

스펜서 라따르스키와 그의 부모님 생부모를 찾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저를 입양한 부모님이 제 부모님이십니다." ⓒ 정현주

 
그는 한국에 두 번 다녀왔다. 처음에는 태어난 나라를 방문하고 경험해 보려고 갔고, 두 번째는 공부를 위해 갔다. 그는 한국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특히 끊임없이 북적대고 생동감 넘치는 서울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소비주의와 거짓스러운 면은 납득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그에게는 생부모를 찾을 계획이 없다. 성공률도 낮을 뿐 아니라 특별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스펜서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매우 짧고 단호한 한 마디로 요약했다.

"저를 입양한 부모님이 제 부모님입니다."

그에게 이런 확신을 준 부모가 궁금했다. 스펜서는 '입양되었지만, 부모와 유사점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신은 근본부터 시작해서 다른 것이 아주 많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둘 다 미국 중서부 지역 출신인데 비해서 자신은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에서 자랐다. 그리고 성장한 지역뿐만 아니라 재능에 있어서도 부모와 자신은 매우 다르다고 했다.

스펜서는 자신의 부모를 창의력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아버지는 오타와대학의 실용기타 교수였고, 어머니는 그래픽 아티스트 겸 웹디자이너이다. 그에 반해 자기는 유전적으로 한국 문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학과 과학을 잘한다고 했다.

미국 중서부 출신인 부모는 이후에 태평양 연안 북서부 일대(오리건, 아이다호 부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스펜서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지역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아주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스펜서가 자란 미국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 아이다호 부근 그는 이 지역의 개방적 사고나 문화에 대한 자부심히 강해서, 자기가 자란 곳을 미국지도에 표시한 그림파일까지 보내왔다. ⓒ 정현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어서 그는 자기가 자란 곳을 미국지도에 표시한 그림파일까지 보내왔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 성장했기 때문에 스펜서는 더욱 자신이 한국에서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어 했다. 그의 글 곳곳에는 고향인 오리건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입양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고 있었다.

"저는 자주 부모님들께 이런 농담을 건네곤 합니다. '지극히 백인 문화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가장 백인적인 성향을 가진 백인 부모님과, 아시아인인 제가 만났네요'라고요."

그에게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 한국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농담거리가 될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저는 제 자신을 '얼간이'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곤 하죠. 왜냐하면 저는 백인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에서 백인 친구들과 어울려 자랐기 때문에 내면은 누구보다도 백인인데 반해서 겉모습은 황인종이기 때문이죠. 몇 해 전 한국 어학연수를 하면서 이런 점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그때 캘리포니아에서 온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저랑 정말 비슷했어요."

그는 가족 없이 오늘의 자신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나이 들수록 부모에 대해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스펜서의 부모는 항상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었고, 진로를 정하거나 무언가를 해나갈 때 어떤 압박도 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꼭 말해주었고, 필요할 때는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스펜서에게 입양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자라는 동안 입양은 그의 가족뿐 아니라 친지들에게조차 하나의 흥미로운 농담거리이거나 얘깃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입양은 그에게 '비영리단체나 국제NGO에서 일하겠다'는 삶의 목표와 동기를 만들어준 굉장한 것이기도 했다.

삶과 이웃에 대한 신뢰와 긍정으로 넘치는 젊은이, 스펜서 라따르스키의 이야기는 '입양'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의 책무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만들어줘야 할 사회적 가치와 시스템은 무엇인지,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한 청년 해외 입양인의 충만한 성장기는 우리 사회에 다양하고 의미 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입양 #해외 입양 #입양 특례법 #인종간 입양 #전국 입양 가족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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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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