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 울려야 해병대 안전? '조선'의 이상한 논리

[김종성의 이 뉴스 진짜야?] 진정으로 해병대를 걱정한다면

등록 2018.09.27 17:55수정 2018.09.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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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이행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서명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9월 19일 평양에서 서명된 군사 합의서를 두고 보수 언론이 논란을 계속 부추기고 있다. 정식 명칭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인 이 협정으로 인해 해병대가 위험에 처하게 됐다는 보도까지 내놓았다.

군사 합의서 제1조 제2항은 "쌍방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하였다"면서 해상과 관련해 이렇게 규정했다.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 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바로 이 부분이 서해 도서에 주둔 중인 해병대를 위태롭게 한다는 게 <조선일보>의 우려다. 'NLL 논란 2편'으로 기획된 'NLL 후퇴로 와해된 3군 전력... 해병대, 섬에 고립됐다'는 9월 25일자 기사에서다.

위 합의문에 따르면, 덕적도에서 초도까지 서해 완충수역으로 설정됐다. 이 구역에서는 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해안포 및 함포에 대해서는 덮개 설치 및 폐쇄 조치를 한다고 했다.
 

초도와 덕적도. ⓒ 위키백과

  
해병대 주둔지 중 하나인 백령도는 북한 땅 가까이 있다. 제2항에 따라 백령도 해병대는 포 사격을 할 수 없게 되는 반면, 맞은편 북한군은 포 사격이 금지되지 않은 내륙으로 들어가서 사격 훈련을 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조선일보>의 우려다.

그래서 해병대만 훈련을 못하게 돼 전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미국이 단독으로 정해놓은 NLL(서해 북방한계선) 남쪽 바다를 향해 포 사격 훈련을 해왔던 해병대가 앞으로는 그런 연습 기회를 잃게 돼 걱정이라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 측면에서도 우리 군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될 전망이다. 현재 서북도서 해병대는 NLL 남측을 향해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쏘는 훈련을 하고 있다. ······ 11월 1일 완충수역이 선포되면 해병대는 해상 실사격 훈련을 못하고 빈 포로 사격 절차만을 익히지만, (황해도의) 북한 4군단은 예전과 변함없이 내륙으로 포를 잠시 옮겨 사격하면 된다."
 
위의 2번째 문장에서 나타나듯이, 그동안 해병대의 실사격 훈련은 남쪽 바다를 향해서만 이뤄졌다. 마지막 문장의 "예전과 변함없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북한군의 실사격 훈련도 바로 앞의 백령도를 직접 위협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는 그동안 백령도 주변의 양쪽 군대가 모든 경우를 다 가정한 실사격 훈련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제한된 방향을 향해, 제한된 장소에서만 실사격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해병대는 백령도를 안전하게 지켜왔다. <조선일보> 보도는 이런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위기감을 한껏 고조시킨 것이다.

군사 합의서 때문에 해병대가 고립됐다?

또 백령도 해병대원들의 실사격 실력이 떨어질 거라는 지적도 염려보다는 기우에서 나왔다고 봐야 할 듯하다. 해병대 부대가 백령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완충수역과 관계없는 포항에도 있다. 실사격 실력을 갖춘 장병들을 백령도에 배치하는 방안은 해병대 내에서 얼마든지 고안될 수 있다. 해병대가 '귀신 잡는 해병'이란 영예를 얻은 것은 한국전쟁 때다.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가 그 정도 방안도 강구하지 못할 리는 없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의 말을 빌려 위기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해병대를 섬에 고립시킨 꼴"이 됐다면서 "서북 도서에서 덕적도까지 모든 섬이 고립되면서 인천·평택 앞바다까지 방어선이 없어진 셈"이라고 부풀렸다. 완충수역 내에서 실사격 훈련을 못하는 것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 보도대로라면, 북한 입장에서도 황해남도 해안 방어선이 뻥 뚫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백령도. ⓒ 위키백과

한편, 위 보도는 덮개 설치 및 폐쇄 조치의 적용을 받는 북한 해안포 및 함포가 언제든지 실전에 배치될 수 있으므로 서해 지역이 더욱 더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신종우 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 '훈련에 숙달된 북한의 해안포가 닫아놓은 진지 문을 언제든 열고 서해 5도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이 기댈 건 오로지 북한의 선의 뿐'이라고 했다."
 
북한군이 덮개 설치 및 폐쇄 조치를 뒤집고 포 사격에 나설 수 있어 서해 5도가 위험하다면, 북한 역시 동일한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서도, 남한이 합의를 위반하고 포 사격에 나설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보도대로라면, 서해에서 끊임없이 포성이 울리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야 이 지역과 해병대가 안전하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 지역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나온 보도에 불과하다.

특정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게 이익이 되는 경우도 물론 없지 않다. 긴장을 고조시킨 결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거나 무기 수출을 늘릴 수 있거나 국제적 영향력을 팽창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해에서는 그런 경우의 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해에서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해서 영토가 늘어나지 않음은 물론이고 무기 수출이 증가하리란 보장도 없다. 국제적 영향력을 팽창할 수 없음도 물론이다. 서해가 시끄러워지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고 주식시장만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서해가 어수선해진 결과로 한국이 이익을 얻은 경험은 거의 없다.

서해를 지키고 해병대를 지키는 방법

반면, 군사 합의서 규정대로 서해 완충수역에서 긴장을 완화시킬 경우, 한국이 확실히 얻게 되는 게 있다. 북한이 남한을 자극할 수단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1961년부터 2010년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을 정리한 박정규 해군대학 교수의 '북한의 해양도발 양상 분석'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2010년에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가 발행한 <이순신 연구논총>에 실린 이 논문에 다음과 같은 표가 소개돼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는지를 보여주는 표다. 표를 작성한 곳은 미국외교협회다.

 

군사적 충돌의 발생 장소. ⓒ 박정규

표에 따르면, 총 1436건의 충돌 중에서 1243건은 발생 장소가 확인되지 않는다. 나머지 193건의 53%인 103건은 DMZ(비무장지대)에서 발생했다. 그 다음으로 서해·남한해안·남한내륙·동해의 순으로 발생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서해보다는 남한 해안에서 충돌이 잦았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서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남한 내륙 및 동해와 비교해도 그렇다. 예전에는 양쪽의 발생 빈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서해에서 훨씬 많이 발생했다.

DMZ와 비교해도 그렇다. 지난 세기엔 DMZ에서의 발생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서해와 DMZ의 발생 빈도가 비슷해졌다. DMZ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원인에 관해 위 논문은 "비무장지대의 요새화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DMZ보다는 서해를 통해 남한을 자극하는 게 더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해상의 충돌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9·19 군사 합의가 나왔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서해를 통해 남한을 자극하는 게 더 유리해진 상황에서 이런 합의가 나왔다. 이것은 서해에서 남북이 충돌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됐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북한이 남한을 자극할 방법이 줄어들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한의 국익에 이로운 상황이 펼쳐졌다는 의미다.

서해상에서 남한의 국익을 높이는 길이 무력 대결이 아닌 평화 조성에 있다는 점은 미국외교협회에서도 제안했다. 위 논문에 따르면, 2011년 10월에 나온 미국 외교협회 보고서 '한국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서해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제안했다.
 
"한·미 양국은 대북 감시를 강화하고 남과 북은 신뢰 회복과 평화공존을 위한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서해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남한이 북한을 이길 수 있다면 미국이 이런 조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는 북한을 이길 수 없으며 한국의 국익을 챙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런 조언을 했을 것이다.

서해에서 가급적 총성이 울리지 않도록 하는 게 서해를 지키고 해병대를 지키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번 군사 합의는 해병대를 위험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다. 미국인들도 알고 있는 이런 사실이 <조선일보> 보도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서해에서 총성 정도가 아니라 포성이 계속 울려 퍼져야만 해병대가 안전할 거라는 말이 된다. 객관적 현실을 외면한 보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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