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CCTV는 '도깨비 방망이'?

[아이들은 나의 스승 146] CCTV 설치보다 '교육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등록 2018.09.27 17:24수정 2018.09.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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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CCTV가 학교 울타리를 넘어오더니 끝내 교무실 문 앞에까지 이르렀다. 무슨 세트메뉴마냥 복도 벽면과 천정에 열적외선 감지기까지 함께 설치됐다. 교사와 학생을 비롯한 교무실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녹화될 처지다.

얼마 전 일부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해 교육청이 내린 대응 조치다. 인쇄실과 성적 처리실, 교무실 등의 출입구마다 빠짐없이 설치하라는 공문이 학교마다 하달됐다. 곧 있을 2학기 중간고사 때부터는 CCTV의 촘촘한 감시망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시험지가 인쇄되면 학급 학생 수대로 분철한 뒤 곧장 봉투에 밀봉하고 날인하여 시험 당일까지 금고에 보관해야 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지금까지는 학급별로 묶었을 뿐, 별도로 밀봉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교내 시험도 수능 시험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하라는 것이다.

시험지를 보관하는 금고의 자물쇠도 이중으로 해야 한다는 지침도 있다. 담당자가 아니면 금고에 아예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도 덧붙여졌다. 시험지 분철도 인쇄가 완료된 직후 실시하고, 밀봉 날인되지 않은 시험지는 누구든 인쇄실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했다.

그러자니 학교 안팎이 여러모로 어수선하다. CCTV야 이미 지천에 널렸으니 몇 개 더 늘어난다고 해서 놀랄 건 없지만, 관련 규정 손보랴, 시험지 보관용 봉투와 새 금고 마련하랴,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에 모두가 어리둥절해있다. 이러다 시험 때마다 경찰이 파견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들린다.

정작 중요한 건 시험지가 아닌 시험지 '파일'

아무튼 강화된 규정대로라면 시험지가 인쇄된 후 외부로 유출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들끓는 여론이야 이내 잠잠해질 테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정작 중요한 건 종이로 된 시험지가 아니라 시험 문제를 담고 있는 시험지 '파일'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굳이 인쇄실까지 가서 시험지를 빼올 것 없이 모니터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들여다볼 수 있다. 과목이 같으면 공동 출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파일은 내부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는다. 교무부장, 교감, 교장으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전에 오류나 오탈자를 찾기 위해 출제한 문제를 인접 교과 교사들끼리 이른바 '교차 검토'하는 건 권장 사항이다. 대개 귀찮아서 꺼리는 이가 대부분이기는 해도, 다른 교사의 시험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건 그를 도와주는 일이다. 출제 오류로 인한 재시험을 막기 위해 학교마다 부러 요구하는 나름 최선의 방안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답이 없거나 복수인 문제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시험이 끝난 뒤 재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십중팔구 동료 교사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벌어진 사달이다. 재시험은 교내 시험에 대한 공신력을 실추시키는 일로 간주돼, 해당 교사는 주의나 경고 등의 징계를 감수해야 한다.

물론, 파일 유출이 우려된다고 해서 공동 출제와 교차 검토를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작 파일에 암호 설정하기, 외부저장장치 및 메신저 이용 금지, 시험지 인쇄 후 점검하기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미 학교마다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라 대책이랄 것도 없다.

징계수위 높이면 시험지 유출 막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징계 수위를 높이는 등 일벌백계하면 시험지 유출을 막을 수 있을까. 아무리 꼼꼼하고 가혹한 규정도 '나쁜 마음'을 억누를 순 없고, 최첨단 기술에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디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경찰 열 명이 한 도둑을 못 잡는 법이다.

시험지 유출을 막는답시고 하달한 CCTV 설치 등의 백화점식 대책이 호들갑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다. 어차피 성난 여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대증요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공문을 내린 그들이 더 잘 안다. 늘 그렇듯 대증요법은 되레 '내성'만 키워줄 뿐, 문제 해결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교내 곳곳에 설치된 CCTV가 그 단적인 예다. 처음엔 학교폭력을 예방하겠다고 학교 주변의 외진 곳을 중심으로 설치됐다. 물론, 이후 설치된 곳에서는 학교폭력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자 갖가지 도난 사건을 줄이겠다며 개인 사물함 주변에도 어김없이 CCTV가 들어왔다.

성폭력 우려로 인해 여교사 화장실 입구에도, 건물 뒤편이나 운동장 구석 등 상습 흡연 구역으로 지목된 곳에도 연이어 설치됐다. 최근에는 쓰레기 투기가 빈발하는 곳까지도 속속 들어서는 추세다. 어느새 CCTV는 학교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됐다.

무슨 일이 터지든 CCTV 설치가 대책에서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시험지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급기야 CCTV는 건물 안 복도까지 '진출'했고, 교실과 교무실 등 실내로 들어올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설치비용 또한 나날이 줄어서 여느 경우들처럼 예산 문제로 갈등을 벌일 소지도 별로 없다.

학교마다 CCTV 수십 대가 곳곳을 감시하고 있지만, 효과는 '글쎄올시다'다. 늘어난 CCTV 대수만큼 학교폭력과 도난 사건, 성폭력, 흡연과 쓰레기 투기 등이 감소했는지를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기 힘들다. 단지 CCTV가 설치된 곳에서만 줄어들었을 뿐이다.

교실과 화장실 안 등 발 닿는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할 게 아니라면, '풍선 효과'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감시의 대상이자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것이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CCTV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맺기와 소통 노력을 방해한다면서, 당장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도 있다.

CCTV가 시험지를 유출한 교사를 색출하는 일엔 요긴할지 몰라도, 단언컨대,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는 없다. 인쇄실에 몰래 들어가 시험지를 빼내는 '낡은' 방식은 근절되겠지만, 여느 범죄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은 또 등장할 것이다. 그때마다 대책은 마련될 테고, 늘 그래왔듯 사후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명색이 학교일진대, 이제 '교육적인' 대책을 고민할 때도 됐다. '눈만 살아있는' CCTV 따위에 의존하지 말고, 교사들끼리 가슴을 열고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교단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교사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일어난 '쌍둥이 자매 교무부장 시험지 유출 의혹 사건'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상피제 법제화 운운하지 않더라도, 자녀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배정받았다면 자발적으로 전근 신청을 하는 게 교육적이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성적처리 관련 보직 교사를 맡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반교육적 행위다. 그래서는 자녀는 물론, 다른 아이들 앞에서 결코 당당할 수 없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동료 교사들 또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교육자라면, 그가 아무리 업무 역량이 탁월했다고 하더라도 보직 교사 임명을 막았어야 옳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서는 안 된다'며 끝까지 설득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보직 교사로 발령을 냈다면, 인사권자인 학교장과 법인 이사장 등은 공범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문한 탓인지, 사달이 난 해당 학교에서는 그러한 기본적인 '자정 활동'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다른 교사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침묵의 카르텔'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CCTV가 '해결사'인 양 행세하고 있다. 혹자는 교사의 무능을 CCTV가 증명하고 있다지만, 정작 늘어나는 CCTV를 통해 실추되는 교권을 절감한다. '교육은 마음의 일'이라는 어느 성인의 말씀이 무색하기만 하다.
#쌍둥이 자매 교무부장 시험지 유출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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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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