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무식자'에게 딱 좋은 서양 역사서

존 허스트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를 읽고

등록 2018.10.01 18:38수정 2018.10.0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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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위즈덤하우스

나는 역사 무식자다. 우리나라 역사도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쉽게 보고 듣지만 단기 기억에 머물 뿐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다. 머릿속에 체계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쉽다는 역사서 몇 권을 도전해 보아도 조금 읽다보면 앞부분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뒤적거리기 일쑤라 책 전체를 읽고 역사의 흐름을 잡기란 나에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자주 접하는 우리 역사도 이럴진대 서양사는 두말하면 잔소리. 가끔은 이렇게까지 모르나 싶어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남몰래 검색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의 삶이 곧 역사이기에 문학도, 철학도 결국엔 역사적 문맥을 통해서만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는 이러한 독자를 위한 역사서이다. 40년 동안 역사를 가르친 오스트레일리아 역사학자 존 허스트가 2009년 출간한 책으로 "아무리 외워도 어차피 잊어버릴 수많은 사건과 인물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복잡한 서양사의 전체 맥락을 보여준다.

책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이다. 몇 장 읽으면 앞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나 같은 독자를 위해 1부에서는 약 60페이지 만에 서양의 고대, 중세, 근대를 설명한다. 작가는 초기 유럽 문명의 세 가지 요소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 기독교, 게르만족을 꼽는다.

고대 그리스로 시작한 초기 유럽 문명은 거대한 로마 제국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기독교를 믿게 되며, 교회는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보존한다(고대). 게르만족이 침입하여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이후 1000년 동안 이 세 가지는 불안정하게 결합하고(중세) 이 혼합물이 부서지기 시작하며 근대가 시작된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계몽주의, 낭만주의를 간략히 설명하며 근대의 흐름을 제시한다.

이렇게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고 나면 2부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다른 역사서처럼 시간의 순서대로만 제시하지는 않는다. 먼저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다음은 정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종교적 관점, 언어의 변화, 서민들의 삶 등 역사를 바라보는 주요 관점을 바꾸며 여러 번 훑어봄으로써 1부에서 정리한 역사의 뼈대에 작가는 살을 붙여나간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유럽사의 대략적인 흐름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당신이 구체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이렇게 얇은 책으로 자세한 설명을 기대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반대로 유럽사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는 역사 초보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자 욕심 부리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파악한 뼈대를 바탕으로 다른 역사서를 통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가길 권한다. 그렇게 장기기억화한 후 이 책을 재독한다면 자신의 지식 체계가 확장되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사실 제목과 다르게 주로 서유럽의 역사를 다룬다(원제는 The Shortest History of Europe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전 시대 이후부터 이 책은 주로 서유럽을 다룬다. 나는 문명의 형성에 있어 유럽의 무든 부분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사에 미친 영향력을 따지자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독일의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의회정치, 프랑스의 혁명적 민주주의가 폴란드의 분할보다 더욱 중요하다. -p.6
  
작가는 오스트레일리아 역사학자로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가 유럽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이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자신의 역사 또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세계 역사에서 유럽의 역사, 특히 서유럽의 역사가 가진 영향력은 너무나도 크기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서유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럽 문명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에 대한 서술은 아쉬움을 남긴다. 저자의 시각이 더 많이 투영되는 현대사 서술이 지닌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작가의 서술이 편협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근대를 살펴보는데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질 수 없는 복합적인 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해야 하는 부담감과 한계가 느껴진다. 또한 작가의 서술이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앞부분의 명쾌한 서술과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다거나 인과관계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읽는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역사가 궁금한 역사 무식자라면 이 책을 통해 역사의 뼈대를 세워나가길 권한다. 이후 세계사를 처음 읽는 청소년에게 권한다는 <곰브리치 세계사> 정도의 역사서를 읽는다면 적어도 '역사 무식자'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2,000년 유럽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존 허스트 지음, 김종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7


#유럽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존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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