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카리브해의 붉은 섬, 혁명의 나라 쿠바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10

등록 2018.09.29 20:32수정 2018.10.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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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거리의 악사들과 함께. ⓒ 최늘샘

카리브해의 붉은 섬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향한 미국 대륙 횡단을 마치고 뉴욕에서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쿠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불과 144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그래서 '카리브해의 붉은 섬'이라 불리는 땅. 1492년 콜럼버스의 침략 후 1898년까지 사백 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1959년 사회주의 혁명 때까지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슬픈 열대의 섬. 한편으로 쿠바는 싱그러운 푸른 빛의 바다와 개성적인 음악으로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끄는 동경의 섬이기도 하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 이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통상 금지 조치 엠바고를 단행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국교 정상화가 선언되었으나 아직까지 두 나라의 국민은 가족 방문, 비즈니스 등 특수 목적이 없으면 상대 국가를 방문할 수 없다. 미국에서 쿠바로 가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제3세계 여행자에게도 이 조건이 적용된다.

어쩔 수 없이 '교육 목적'으로 쿠바에 간다고 체크를 하고 출입국 심사에서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누가 봐도 여행자인 남한인에게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바나 호세 마르티 공항에 도착했다. 호세 마르티는 '쿠바의 국부', '쿠바의 호치민'이라 불리는 인물로 스페인에 대항해 쿠바혁명당을 만들고 전투의 선두에서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쿠바의 유명한 노래 '관타나메라'의 가사는 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야자수 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진실한 사람
나 죽기 전 이 가슴에 맺힌 시를 노래하리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이 한 몸 바치리'


후렴구 '과히라 관타나메라'는 '관타나모 지방 출신 여성 농부'를 뜻하는 말로, 관타나모는 지금까지도 쿠바인들에게 자주와 독립의 정신을 일깨우는 땅이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의 뒤를 이어 쿠바를 식민지화했고 쿠바 정부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타나모 미군기지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

국외에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쿠바 국내에서는 호세 마르티를 기리는 상징물들이 더 많다. 그가 세운 쿠바 혁명 전략은 반세기 후 카스트로와 게바라에 의해 현실화된다.

아바나 중심에 자리한 혁명광장 가운데는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있고 양옆으로 체 게바라와 동료 혁명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기념물이 자리해 있다. 게바라의 얼굴 아래에는 'Hasta la victoria siempre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문장이, 시엔푸에고스의 얼굴 아래에는 'Vas bien, Fidel 잘하고 있어, 피델' 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혁명광장. ⓒ 최늘샘


엉덩이로 느낀, 궁핍의 기운

쿠바 화폐를 인출하고 현지 버스를 찾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스페인어를 발음해 보았다.

"Donde local bus? 돈데 로깔 부스? 현지 버스 어디예요?"
"Local bus? Are you crazy? You can't! Come on. 현지 버스? 너 제정신이야? 너는 못 타! 이리 와."


택시 기사들이 손사래를 치며 외쳤지만 '이거 왜 이러셔, 이미 다 알아보고 왔어요' 하고 웃어넘겼다.

보통 공항에서 도심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반 교통 보다 가격이 비싸다. 나는 되도록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교통편을 찾으려고 한다. 여행 초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에 몇 시간이나 걷고 헤매다 돈은 돈대로 쓰며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미리 잘 검색해두었다.

흔히 여행자들은 공항에서 아바나 시내까지 25달러 금액의 택시를 이용한다. 1킬로미터 걸어나와 도로에서 탈 수 있는 P12번 일반버스 요금은 태환 화폐로 0.40쿡(한화 440원)이다. 현지인 요금은 불태환 화폐로 1모네다(한화 44원)로 더 저렴하다. 서울의 출근길 만원버스보다 사람이 훨씬 많고 에어컨이 없어 땀이 줄 줄 줄 흘렀지만 덕분에 시내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무척 상쾌했다.  
 

쿠바. P12 버스 안에서 ⓒ 최늘샘

쿠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중 통화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쎄우쎄 CUC, 보통 쿡이라고 부르는 태환 화폐와 쎄우빼 CUP, 모네다라고 부르는 불태환 화폐가 동시에 통용된다. 현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불태환 화폐는 외국 돈과 바꿀 수가 없고 태환 화폐에 비해 가치가 낮다. 1쿡은 25모네다와 교환된다.

2013년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가 이 이중 화폐 제도의 점진적 폐지 결정을 보도한 적이 있으나 2018년 현재까지 이 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급격히 경제가 어려워진 쿠바는 달러와 유로를 모으기 위해 1994년 이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애초에 달러와 1대 1로 맞춘 모네다는 급격히 가치가 낮아졌고 외국인을 상대하는 관광업 종사자의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는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쿠바 정부의 달러, 유로 증대에는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계산이 어렵고 불편한 방식이다. 쿠바 화폐가 낯선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흔히 시내 공원이나 현지인 터미널 화장실 이용료가 1모네다(44원)인 반면,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휴게소 화장실 요금은 1쿡(1100원)까지 받곤 한다. 똑같은 서비스를 사용해도,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여행자들은 현지인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게 되는 경우가 잦다. 처음에는 이 제도로 인해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적응하여 현지인 가격으로 소비하는 방법과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쿠바 상점에 진열된, 포장이 없는 비누. 금액이 이중 화폐로 표기되어 있다. ⓒ 최늘샘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한 시간 동안 마주한 쿠바의 첫인상은 한산했고, 또 조금은 슬펐다. 커다란 광장에는 사람이 없고 분수들은 더이상 물을 뿜지 않았다. 라스베가스 호텔의 거대한 분수쇼가 떠올랐다. 화려한 자본주의 국가와 이웃한, 고립되어 정체된 사회주의 국가. 미국과 쿠바는 가까이 있지만 그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운영을 멈춘 공장들은 군데군데 자재가 뜯긴 채 허물어져 갔다.

거리를 달리는 많지 않은 차들은 1960년대에 추방된 미국인들이 두고 간 알록달록한 올드카와 낡은 중국산 버스들이다. '코코택시'라고 불리는 노란 오토바이 택시와 '비씨택시'라고 불리는 인력 자전거 택시도 보인다.

국회의사당 '까삐똘리오'도 오랜 공사 중인 듯 먼지 쌓인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광장의 녹색 벤치에 앉은 순간, 엉덩이의 느낌이 미묘하고도 확실하게 이상했다. 고장난 벤치인가 하고 다른 벤치에 앉아 봐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본 다른 도시의 벤치들도 마찬가지였다. 쿠바의 벤치는 내가 알던 벤치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나무들이 듬성듬성 성기게 짜여있다. 나무를 아끼기 위한 쿠바의 제작 방식일까. 책에서 읽었던 '궁핍의 기운'이 엉덩이를 통해 전해져 왔다.

아바나 구도심 비에하 Vieja 골목들은 개똥과 쓰레기가 널려있어 발길을 조심해야 했고 소박한 간판의 상점들에는 몇 종류의 물건만이 고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가난한 땅은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환경을 가장 덜 오염시키는 곳이다. 쿠바는 일인당 탄소발자국이 적고, 복지를 토대 산정하는 인간개발지수가 높아 2006년 세계자연기금에 의해 '지속가능한 나라' 1위로 꼽혔다. 한편 미국의 정치인들은 지속적으로 쿠바 정부의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해왔다.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배제되어 고립된 가난한 나라. 이제는 도리 없이 서서히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그러나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이상을 정말로 실현한 나라. 모두가 고르게 가난하지만 모두가 일이 있기에 거지가 없다는 나라. 아이들과 노인들에게는 무료로 우유를 주는 나라. 지난한 배고픔을 음악과 열정으로 이겨낸다는 나라, 쿠바.

혁명의 가장 유명한 아이콘, 체 게바라가 꿈꾸었던 세상은 쿠바에서 실현되었을까.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한 카스트로는 과연 좋은 독재자였을까. 쿠바의 인권 상황은 정말 좋지 않은 걸까. 길지 않은 여행으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쿠바의 현재를 만나러 왔다.
   

남부 카리브해 히론 해변 칼레타 부에나에서의 다이빙. ⓒ 최늘샘

따로 또 같이

쿠바 여행은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했다. 까사(Casa)라고 불리는 민박 숙소, 비아술(Viazul)이라 불리는 여행자 전용 버스를 친구가 미리 예약해 두어서, 정처없이 미국을 횡단할 때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친구가 아바나에 며칠 먼저 도착했는데 그래서인지 생존 스페인어를 익히는 속도가 나보다 훨씬 빨랐다. 특히 물건을 계산할 때, 파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수첩에 적어둔 단어를 찾아볼 여유가 없어 자꾸 친구에게 의존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는 숫자를 외우는 게 점점 더 늦어졌다.

우노, 도스, 뜨레스, 꽈또르, 1, 2, 3, 4... 온세, 도세, 뜨레세, 꽈또르세, 11, 12, 13, 14... 길찾기, 검색, 예약하기, 외국어 대화, 물건 계산, 예산 관리, 요리 등등 여행에서 필요한 갖가지 일들이 있다. 여행을 함께하는 서로가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 역할을 고정하지 않고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아는데, 상황이 급하니 생각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종일, 긴 기간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부딪치는 일이 많다는데, 부디 크게 다투지 않고 여행을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따로 또 같이.

수도 아바나 구도심과 신도심, 북쪽 대서양 휴양지 바라데로, 스페인령 서인도의 수도였던 중부 내륙 도시 카마구에이, 사탕수수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트리니다드, 남쪽 카스피해의 작은 마을 히론. 쿠바의 동서남북 다섯 군데 지역으로 23일 동안의 여행 경로를 정했다.

무상의료의 나라에서

쿠바 어느 지역에 가든 생수와 탄산음료, 맥주는 한 가지 회사의 상품뿐이었다. 길거리 음식도 마찬가지로 몇 가지 종류로 단출하다. 샌드위치와 피자, 아이스크림과 케잌, '후고 내추랄레스(Jugo Naturales)'라는 이름의 천연주스. 외국인 대상 식당의 음식 가격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지만 거리 음식들은 한화로 몇 백원 가격일 정도로 저렴하다.

이 길거리 음식과 간식을 많이 먹은 우리는 번갈아 가며 설사병과  변비에 시달렸다. 6월, 7월의 쿠바는 아주 덥고 습도까지 높았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자주 와닿았다. 낯선 곳에서는 마려운 오줌 한 번 누는 것도, 더러워진 손 한 번 씻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픈 배를 참을 수 없어 휴교 중인 초등학교의 관리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변기 커버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는,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는 쿠바 스타일 화장실에서 가까스로 속을 비우고 나오는데 친절했던 관리인의 분위기가 싹 달라져 있었다. "원 달러, 원 쿡 CUC!" 원하는 돈을 내지 않으면 비켜 주지 않을 기세로 나오는 문을 거칠게 막아섰다. 익숙한 흥정을 거쳐 600원을 내고 탈출할 수 있었다.

청결한 음식을 골라 먹고 가공 식품보다는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도 배탈은 낫지를 않았다. 쿠바 거리에는 약국이 많고 이용하는 현지인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상점들처럼 진열된 약의 종류는 매우 적었다. 지사제를 사기 위해 아바나, 바라데로, 카마구에이, 세 군데 지역에서 약국을 찾았는데 약사들은 한결같이 없다는 대답만 하며 고개를 저었다. 쿠바는 지사제를 생산하지 않는 건지, 외국인에게만 판매를 하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의 아픔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사병은 병도 아니란 말인가. 조금 서러웠다. 냄새가 고약해 배낭에서 빼놓고 온 정로환이 생각났다. 지사제와 두통약, 멀미약 정도야 필요할 때 언제든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무상의료의 나라 쿠바에서는 의외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트리니다드에서 머물던 어느 날, 며칠 동안 배의 아픔을 참던 친구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쿠바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다. 쿠바 대사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인근 국가 멕시코 대사관에 응급전화를 걸었다. 담당자가 쿠바는 외국인에게도 병원비가 공짜라며 어서 응급실로 가보라고 권했다. 자고 있는 까사 숙소 주인 샤이리 씨를 깨워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몸에 큰 이상이 생긴 건 아니었고 의사의 치료를 받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몸을 추스려 병실에서 나오는 길, 그 유명하다는 쿠바의 무상의료를 체험하는 건가,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스무 가지 이상의 긴 항목이 적힌 청구서에는 약을 먹을 때 마신 생수값 오백 원까지 적혀 있었다. 한국의 응급실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팔만 원 정도 비용이었으니 그만하기 다행이다 싶었다. 쿠바 무상의료는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체험했다.

병원을 나와, 택시도 인적도 없는 까만 골목길을 다시 걸어 숙소로 가는 길. 치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고마운 샤이리 씨는 조심스레 병원비가 얼마인지 묻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근데 샤이리, 쿠바 사람들은 정말 병원비가 모두 무료에요?"
"씨 씨! Si si! 물론이죠!"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샤이리에게서 무상의료 제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쿠바 골목길에는 약국이 흔하다. ⓒ 최늘샘


나는 치노가 아니에요

"어이, 치노! Hey, Chino!"

쿠바의 길거리를 걷다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치노가 아니고 꼬레아노예요. 꼬레아 데 수르. 남한에서 왔어요!"

처음에는 꼬박꼬박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대답했지만, 대부분의 쿠바 사람들이 한국인이든 일본이든 베트남이든 상관 없이 모든 아시아 사람들을 '치노'로 통칭한다는 걸 알고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었다. 신기해서, 호기심에 한마디 나누고 싶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불러놓고 자기네들끼리 수근거리거나 히죽거리는 경우도 잦아서 기분이 나빴다. "'어이, 쿠바노!' 하고 부르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따지고 싶었다.

호세 마르티는 반인종주의자였다. 그의 사상을 따랐던 피델 카스트로는 반인종주의 교육과 정책을 시행했고 쿠바는 비교적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흑인, 인디헤나, 백인 등 쿠바의 다수를 구성하는 익숙한 인종 간 차별은 적은지 모르겠으나 황인종에 대한 손가락질과 구별짓기는 반인종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직접적인 차별,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특정 인종을 가리키고, 호명하고, 놀리는 것은 인종차별과 다름 없다.

궁금하고 신기하다면 그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서로가 반가울텐데, 왜 특정 인종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걸까. 쿠바가 자랑하는 반인종주의는, 모두 같은 인간으로서의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일 것이다. 피부색이 낯선 아시아의 이방인과 여행자들에게도 이제 그만 '치노'라는 구별 없이, 그저 같은 사람을 대하는 평화로운 인사를 건네주기를.
   

카마구에이 극장 영화제 개막 공연. ⓒ 최늘샘


종이 줍는 오르페씨

중부 내륙 도시 카마구에이 도심에는 상점이 많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골고루 가난하다는 쿠바에도 잘 사는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영화의 거리에서 때마침 스페인어 영화제가 열려 우리는 운좋게 개막작과 개막공연까지 볼 수 있었다.

입장료는 2쿡 CUC(한화 2200원)이었다. 이후에 아바나 신도시의 야라 Yara 극장에서 한 번 더 개봉 영화를 봤는데 그곳의 입장료는 2모네다(한화 88원)였다. 비슷한 시설의 극장인데 왜 그렇게 금액 차이가 나는 걸까. 아바나의 극장은 의아할 정도로 저렴한 대신 관객이 많아 줄을 길게 서야 했다.

또 한 군데 매우 저렴하고 사람이 많은 곳은 '코펠리아 Copelia'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쿠바에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없다. 하지만 쿠바의 작은 도시마다 이 코펠리아가 있어, 많은 주민들의 디저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동그란 아이스크림 다섯 개가 담긴 한 접시에 5모네다(220원). 꽤 많은 양인데도 쿠바 사람들은 보통 두세 접시씩을 먹었고, 통을 가져와 담아 가는 사람도 많았다. 음료처럼 아이스크림도 독점 생산인지, 주변의 카페들에서는 똑같은 코펠리아 아이스크림을 좀더 좋은 그릇에 담아 비싸게 팔았다. 비싼 대신 줄은 짧다. 소도시에서는 보통 십 분 정도 줄을 서면 먹을 수 있었지만 아바나의 코펠리아는 한 시간은 기다려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아바나 야라 극장 매표소. 입장료는 2모네다, 한화 88원. ⓒ 최늘샘


극장 앞에서 개막작 상영시간을 기다리는데 손수레를 끄는 건장하고 당당한 중년의 흑인 남성 오르페 씨가 다가와 악수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너희 영화 볼 거야? 저기서 티켓 사야하는데 샀어? 나는 종이 줍는 사람이야. 이게 내 직업이야. 나는 혼자 영어를 배우고 있어. 이렇게 외국인들이랑 대화하면서 영어를 연습하고 있어."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거리는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해졌고, 종이 줍는 오르페 씨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수레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부러운 듯 그들을 쳐다보았다. 오르페 씨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에게는 티켓을 살 2쿡 혹은 2모네다가 없었다.

쿠바식 사회주의 그 이후

쿠바에는 무료 와이파이가 없다. 통신 카드를 구입한 만큼만, 특정 장소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는 페이스북 접속이 금지되어 있어 답답했는데, 쿠바는 통제의 정도가 더 심했다. 도시마다 소위 '와이파이 공원'이라고 부르는 공원에서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켜고 쿠바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무엇이 두려워 인터넷을 통한 외부와의 소통을 제한하는 걸까.

카마구에이의 와이파이존, 아그라몬떼 공원에서 그라시엘라 판디뇨 할머니를 만났다. 그라시엘라 씨는 젊은 시절 아바나의 스페인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쿠바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인해 신문사가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은 후 카마구에이로 왔다고 한다. 자신은 쿠바 정부를 좋아하지 않고 쿠바에는 자유가 없다고, 입을 가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는 성당의 수도원에서 일을 도우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성당 사진 엽서에 이름과 주소를 써주면서, 한국에 가면 휴대폰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 카시오 손목시계는 네덜란드 친구가 준 거야. 이 신발은 영국 친구가 보내줬고, 이 스웨터는 오스트레일리아 친구한테 받았어. 한국에는 휴대폰이 많지? 쿠바는 휴대폰이 비싸. 나도 휴대폰이 필요한데 나중에 한국 가서 보내주면 안 될까? 나는 너희를 잊지 못할 거야. 나를 잊지 마."

같은 공원에서 낮에 만난 힙합 댄서 요하네스 무노즈 씨는 정부와 카스트로, 체 게바라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쿠바의 열정과 평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같은 쿠바 사람이라도 입장에 따라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8년,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하던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동생이자 동료 혁명가인 라울 카스트로가 뒤를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동생 카스트로는 쿠바식 사회주의는 끝났다고 말하며 중국과 같은 개혁 개방 노선을 선언했다. 2014년에는 가장 막강한 적이었던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도 이루어졌다.

자본주의 착취가 없는 사회 시스템, 구성원 모두 같이 잘 살자는 사회주의의 이상은 아름다웠으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세계 곳곳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카리브해의 붉은 섬, 혁명의 나라 쿠바에서도 이상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가는 걸까. 앞으로 의 쿠바가 어떻게 변해가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반인종주의 이상과 실천은 부디 변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기를, 조심스레 기원하며, 쿠바를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히론 거리의 마늘, 양파 장사. ⓒ 최늘샘

 

바라데로 거리의 과일 마차.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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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섬 출생. 지리산 자락 대안학교에서 경쟁 대신 공동체의 가치를 배웠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일했다. 반지하와 옥탑방에서 살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오래 꿈꾸던 세계 일주를 떠났다. 영화 <남한기행-삶의 사람들>, <늘샘천축국뎐>을 만들었다. 주머니는 가벼워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미니멀리스트 생활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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