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 실험, 북한 발전전략의 참고서

[서평]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

등록 2018.10.01 08:36수정 2018.10.01 09:36
0
원고료로 응원
외교의 달인 문재인 대통령의 활약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평화가 무르익은 이후 한반도 북쪽의 경제발전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대해 새로운 이윤추구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선진국 자본들은 이미 많은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자본을 상징하는 트럼프 자본이나 재벌 자본이 한반도 북쪽의 경제개발을 주도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러시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의 정치적 평화 너머 조선의 경제개발 방향과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중국 서부 내륙 충칭의 실험을 주목해 봄직하다.

근대 세계를 양분했던 한 축인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자본주의 역시 주기적인 경제위기와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한계에 봉착했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대안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신좌파' 추이즈위안은 그의 책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돌베개, 2014)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작용인 '사회의 구조적 격차와 계급제도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이론적 관점에서, 그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지향해야 할 대안체제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제시한다. 소자산가 계급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자신들의 경제체제를 '사회주의 시장경제'라 부른다. 얼핏 '뜨거운 얼음'처럼 상호모순이라 느껴지는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무엇이며,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적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 치열한 노선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정치학자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서부내륙 충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경제정책들을 프티부르주아(소자산 계급) 사회주의'라는 이론틀로 해석하며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추이즈위안은 독점적이고 억압적인 '자본주의'와 경쟁에 기초하며 투명하고 실제적인 교환을 토대로 하는 '시장경제'의 차이를 분석한 아날학파의 수장 페르낭 브로델의 이론을 차용하여 중국이 천명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사유화하라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압박에 굴복하여 국유자산의 전면적인 사유화를 실행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국유자산 전체가 헐값에 소수의 올리가르히(과두재벌)들에게 넘어가 자원을 독점하는 과두적 자본주의로 전락했음을 경고하며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푸르동, 존 스튜어트 밀, 헨리 조지, 실비오 게젤, 제임스 미드 등 서구의 경제사상가들의 이론을 종합하여 제시하는 한편 중국 서부 내륙에서 진행되고 있는 충칭의 경제실험을 주목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구체적으로 일별해보자. 생존의 토대인 토지에 대한 점유권리는 태어나는 모든 세대에게 주어져 있기에 토지를 영구히 소유하는 토지사유제는 불의한 것이라는 프루동의 논의에 근거해 중국 농촌의 토지제도인 촌락공동체의 집단소유와 농지의 30년 임대방식을 긍정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모은 자유사회주의를 주창한 제임스 미드는 '노자합자기업Labour-capital partnership'을 제안했다. '노자합자기업'은 회사의 노동자가 가지는 노동주식과 자본가가 가지는 자본주식은 동일한 비율의 배당 권리를 가지기에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맞물린다. 또한 노동자는 노동주 배당금으로 임금의 일부를 대체하기에 고임금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막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지방정부와 농민들이 함께 소유하는 '주식합자제도'와 '노자합자기업'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주식합자제도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에 적합한 의미있는 제도적 개척이라 평가한다.

제임스 미드는 자유사회주의 구현에 또 다른 중요한 한 축으로 국유기업 운용수익을 통한 '사회적 배당'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거대한 인구와 재정의 한계로 전면적인 기본소득 실험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진 않지만 충칭에서는 6만개의 초소형 기업에게 창업자금의 일부를 지원해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 30만개를 창출하기 위해 매년 정부재정 3억 위안을 지출하고 있다.

그 중 1억 위안은 국유자산의 운용수익에서 충당하고 있다. 추이즈위안은 충칭의 사례를 사회적 배당 원리를 거대한 인구와 재정의 한계 속에서 변용해서 적용한 사례로 들고 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한 금융개혁 모델로 실비오 게젤의 스탬프 화폐를 주목한다. 실비오 게젤은 금융이 투기화되는 주원인으로 일반 상품과 달리 화폐는 저장에 따른 손실이 없기 때문임을 주목한다. 화폐에 가치저장 기능을 제거하기 위해 화폐에 유효기간을 부여하는 스탬프 화폐를 제시했다.

스탬프 화폐처럼 감가하는 화폐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경기가 침체할 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지만 화폐가 감가하는 상황에서는 돈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소비가 진작되고 일자리가 창출되어 경제위기를 수월하게 극복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생산방식으로 단일품목의 대량생산과 인간의 기계화를 조장하는 포드주의를 넘어 수요에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대응하고 인간의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는 포스트포드주의 생산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추이즈위안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체제를 구성할 토지제도, 기업소유구조, 금융제도, 생산방식, 부의 분배 등 경제제도 전반을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제시하며 중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충칭,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실험장

중국 서부 내륙에 위치한 충칭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실험장이다. 충칭의 제도적 혁신으로 '지표(地標)거래제를 활용한 토지가치 공유'와 '공유자산 운용 수익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충칭의 '지표거래제'는 식량안보 차원의 '18억 무 이상의 농경지 유지'와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도시 건설용지 확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방안이다. 도시 인근의 농지를 도시 건설용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줄어든 농지 면적만큼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의 주택부지 등 비농업토지를 경작지로 전환해야 한다. 경작지로 전환하는 농지사용권을 보유한 농민에게 경작지 전환에 따른 지표가 발행되고 농민은 지표를 충칭시정부에 팔 수 있다.

도시 인근에 도시건설용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개발업자들은 충칭시로부터 지표를 구매해야 도시건설용지 사용권의 경쟁 입찰에 참여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지표가 거래되는 과정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민들도 도시 인근의 토지가치 상승분을 공유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이 상승하는 토지가치를 공유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충칭의 또 다른 제도적 혁신은 '공유자산의 운용수익 활용을 통한 사회적 분배와 세금 면제'이다. 충칭시가 소유한 국유자산의 시장운용 수익을 통해 초소형 기업의 창업자금을 지원하여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사회적 분배를 시행한다. 도시화에 따른 토지가치 상승분으로 토지재정을 확보한 충칭시는 기업과 개인의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낮추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여 서부대개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충칭이 보여주고 있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높은 세율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달리 '낮은 세율'과 '공유자산의 시장운용 수익'을 통해 효율과 형평성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지공주의'의 중국식 버전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향한 충칭의 실험에는 헨리 조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있다. 헨리 조지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김윤상 교수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지공(地共)주의'라 명명한다. 토지는 사람이 노력해서 만들어낼 수 없는 천부적 자원이다. 토지 가치가 높아지는 원인은 천연자원이 발견되거나 인구가 집중되거나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공주의'는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발전으로 인해 높아진 토지가치를 세금으로 환수하고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산물에는 세금을 낮추자고 한다. 즉, '땅의 가치는 모두에게! 땀의 가치는 땀 흘린 이에게!' 돌려주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개인과 사회의 노력분을 구별하지 않고 토지와 자본과 노동의 사용대가인 지대, 임금, 이자의 대부분을 개인이 독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체제가 '자유방임 자본주의'라면 '공산주의'는 지대, 임금, 이자의 대부분을 사회가 가져간다.

오늘날 지구촌이 주목하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모델은 지대, 임금, 이자의 절반 정도를 사회가 가져가 복지재원으로 쓰는 '사회민주주의' 체제이다. '지공주의'가 '사회민주주의' 경제체제와 다른 점은 사회의 노력분과 개인의 노력분을 구분하는 것이다. 사회가 함께 노력하여 만든 가치인 '지대'를 우선적으로 거두어 정부재정으로 사용하거나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하자고 주장한다.
 

소득분배 방식에 따른 경제체제 구분 ⓒ 이성영

  
추이즈위안이 주창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와 충칭의 실험은 지공주의에 기초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지공주의의 중국식 모델이라 해도 무방하다.

충칭 실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발전전략의 참고서

충칭의 실험은 오늘날 한반도에 유의미한 통찰을 던지고 있다. 조선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은 전면적 사유화・시장화를 실시한 러시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진 국가에서나 가능하기에 조선에는 적합하지 않다.

도시화에 따른 토지가치상승분을 농촌과 도시가 함께 공유하며, 토지 등 공유자산의 운용수익으로 인프라 구축 및 복지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소득세, 법인세 등을 낮춰 경제를 활성화하는 충칭의 실험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조선에도 적용 가능한 의미있는 정책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추이즈위안이 제시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에 담긴 금융과 토지정책이 조선에서 함께 실행된다면 조선은 21세기 대안경제의 활로를 여는 개척자가 될 수 있다.

21세기 새로운 대안경제 모델은 경제성장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담보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살뜰하게 사용하여 후세대와 공존을 모색하는 생태문명의 가치까지 담아내야 한다. 충칭의 실험과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효율과 형평, 농경지 보존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3천만 인구가 살고 있는 충칭의 실험은 조선의 발전전략을 위한 의미있는 참고서이다.
#충칭 #프티부르주아 #지공주의 #추이즈위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토지불로소득 없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