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석기인이 새긴 '하늘 속 물'과 파란 하늘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14] 빗살무늬토기의 비밀3-빗살무늬토기와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

등록 2018.10.18 17:11수정 2018.11.0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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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지 벌써 94년째 되어간다. 그 오랫동안 우리는 빗살무늬의 뜻을 풀지 못했다. 8000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생선뼈무늬'라 했다. 앞으로 열 차례에 걸쳐 세계 신석기 그릇 문화사 속에서 한반도 신석기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한다.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중국·일본·베트남 신석기인의 세계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고, 그와 더불어 세계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그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 기자말
 

〈사진30-31〉 서울 암사동에서 나온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왼쪽 25.9cm, 오른쪽 20.8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32-33〉 서울 암사동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사진34〉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삼각형 구름.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암사동 빗살무늬와 러시아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

우리나라 신석기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를 본격으로 해석하기 전에 세계 신석기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의 문제틀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이 위 〈사진30, 31〉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두 점을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는 우리가 94년째 '기하학적 추상무늬' '생선뼈무늬'라 했던 것을 단 10초 만에 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하늘 속 통로'(〈사진33〉)나 그릇에 뚫은 '구멍'(〈사진30, 32〉)만큼은 곧바로 풀기 힘들었을 것이다(이 구멍은 금이 가거나 깨진 그릇을 수리해 쓰려고 뚫은 구멍이 아니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천문(天門)'과 '기(气)'를 모른다면 미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하늘 속 통로와 그릇에 뚫은 구멍은 이 시리즈 말미에 자세히 밝힐 것이다). 그런데 '하늘 속 통로'와 '구멍'까지 풀었다 하더라도 그는 나와 다르게 결론을 내릴 것 같다.

아리엘 골란이 쓴 <선사시대가 남긴 세계의 모든 문양>을 보면, 그에게 "문양은 종교적 개념이 도식적으로 형상화된 상징"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숭배'와 관련된 것이고, 그래서 문양은 숭배적 '상징'이고 신석기 시대의 '종교'가 된다. 그의 신석기 문양 연구의 목적은 "상징을 매개로 표현된 종교적 신앙을 복구하는 것"이다.

그는 신석기시대에 '종교'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보고, 그 종교는 초기 농경문화가 있었던 근동과 동남유럽 지역에서 공통적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는 프랑스 종교학자 프르질루스키(Przyluski, J. 1885-1944), 리투아니아 출신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1921-1994) 같은 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신석기 문양 가운데 수직 직선, 지그재그 선, 물결선이 '비'(〈사진30, 31〉 참조)를 뜻할 뿐만 아니라 비를 관장하는 '하늘여신'으로 본다. 또 그 비를 '농경'과 관련짓는다.

그는 러시아 역사학자 리바코프(Rybakov, B. 1908-2001), 고고학자 김부타스가 그랬듯 반타원을 '구름'으로 본다(〈사진31〉 참조). 그리고 고대 상징에서는 곡선이 꺾인 선으로 바뀌듯 '반타원'이 '삼각형'으로 변한다고 한다(〈사진30, 34〉 참조).


그는 아마 이렇게 결론을 내릴 것 같다.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중요해진 '비'를 표현했고, '하늘여신'에게 비를 염원하는 신석기 종교 문양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구멍'은 여신의 수태와 관계있고, 그로부터 더 많은 신이 태어났을 것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사진35-36〉 아리엘 골란이 쓴 <선사시대가 남긴 세계의 모든 문양>(정석배 옮김, 푸른역사, 2004) 표지와 본문 도상 그림. 〈사진37-38〉 마리야 김부타스가 쓴 <여신의 언어>(고혜경 옮김, 한겨레출판, 2016) 표지와 본문. 이 두 책에는 중국, 한국, 일본 신석기 무늬를 살펴보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서양 문양학자들은 신석기 무늬를 기호(symbol)로 읽는다. 반면에 우리는 그림(像型)으로 읽는다. 이것은 소리글자 문화와 뜻글자 문화권의 차이일 것이다. ⓒ 푸른역사/ 한겨레출판

   
아리엘 골란이 놓치고 있거나 잘못 잡은 신석기 문제틀

아리엘 골란은 유럽과 근동 지역 고대 상징을 이해하는 데 중국의 신석기 문양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똑같이 그에게도 해당된다(서양 문양학자들은 중국 신석기인이 그릇에 그린 '그림(像型)'을 기호(symbol)로 읽는다).

우선 우리 빗살무늬토기는 '하늘여신'과는 관계가 없다. 또 '초기' 암사동 신석기인이 새긴 빗살무늬는 농경이나 '비(雨)'보다는 '하늘 속 물(水)'에 대한 공포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그도 그렇듯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올라온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1669장에는 달, 해(태양), 별 무늬도 없었다. 그리고 사람(인간)과 신석기인의 삶(농경의 흔적)도 새기지 않았다.
 

기원전 1만 4천 년 전 한반도와 중국, 일본은 이렇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동해는 바다가 아니고 커다란 ‘호수’였다. 위 지도에서 ‘후기 구석기인(또는 초기 신석기인)’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강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지점(빨간 동그라미)이다. 이곳은 ‘갯벌’이 발달해 먹을 것이 넘쳐났다. 하지만 이때는 홍수가 잦았던 홍적세 말기(그도 홍수가 가장 심했던 적도 지방), 거기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는 간빙기였다. 유럽 고고학자들은 조그만 호수 흑해에 물에 찰 때 하루에 120미터씩 뭍이 잠겼다고 한다. 아마 이곳 갯벌 지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석기인들은 서둘러 남쪽 베트남, 동쪽 일본, 북쪽 제주도로 몸을 피했을 것이다. 거기서 한 무리는 다시 부산 동삼동 쪽으로, 다른 무리는 지금의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동해(그때는 호수) 서쪽에 살았던 구석기인(또는 초기 신석기인)들은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서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되었다. 같은 빗살무늬토기라 하더라도 제주도, 서남해안, 암사동, 동북 지역 토기의 무늬가 다른 것은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재글 말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 일본고고학

 
세계 신석기인들은 농사를 짓기 전부터 비와 구름을 그릇에 새겼다. 그런데 세계 신석기 그릇 가운데 서울 암사동 신석기인처럼 하늘 속 물 층을 〈사진30-33〉처럼 섬세하게 새긴 그릇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구석기 홍적세 때 겪었던 물과 홍수에 대한 공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의 황해, 신석기 이전에는 뭍이었던 중국 산둥반도와 인천 사이 어디쯤에 살았던 구석기인이었을지 모른다.

특히 암사동 신석기인의 '하늘 속 통로'는 황해북도 지탑리와 함경북도 서포항 빗살무늬토기에서만 볼 수 있고, 한강 아래 신석기 유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하나의 가설로 세울 수 있다. 구석기 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될 때 지금은 바다이지만 서쪽 육지가 물에 잠기자 한 무리는 중국 동북 쪽 랴오허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고, 다른 한 무리는 동쪽 한반도 암사동으로 삶터를 옮겼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황해북도 지탑리로, 거기서 다시 위로 함경북도 서포항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진39-40〉 일본 신석기 조몬토기. 〈사진41〉 조몬 후기 구름여신(기원전 1000년). ‘조몬(?文 줄승·무늬문)토기’는 말 그대로 줄(끈, 새끼줄) 같은 덧띠무늬가 있는 토기를 말하지만, 지금은 일본 ‘신석기 토기’를 말할 때 두루 쓴다. 이 토기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다. 1877년 동경 오오모리 조개무지에서 처음 나왔는데, 일본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토기의 무늬를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39〉는 조몬(신석기) 중기 기원전 3000년(그들은 이 토기를 ‘화염형토기’라 한다), 〈사진40〉은 기원전 2000년 그릇이다. 실마리는 후기 그릇 〈사진40〉에 있다. 아가리 쪽에 반타원(또는 삼각형) 구름(1차원 평면 무늬)이 있다. 이것은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에서 볼 수 있는 구름무늬다(〈사진30, 31, 32, 34〉 참조). 그렇다면 〈사진39〉의 아가리 장식은 ‘화염(불꽃)’이 아니라 구름을 3차원 입체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신석기 그릇에서 구름을 3차원 입체로 표현한 것은 조몬토기가 유일하다. ⓒ 김찬곤

   
아리엘 골란과 일본의 신석기 조몬토기

아리엘 골란은 신석기 무늬를 볼 때 관찰자 시점으로 본다. 그래서 신석기인이 '3차원 입체(실제 대상)'를 '1차원 평면' 그릇에 어떻게 그렸는지, 즉 평면화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고대 문양을 '상징(symbol, 기호)'으로 보는 것, 그것을 모두 '숭배'나 '종교'로 연결 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쩌면 그의 문제틀은 일본의 신석기 조몬토기를 연구할 때 요긴할 것이다. 일본의 신석기인들에게는 '하늘 속 천문(天門)', 즉 비구름이 나오는 하늘 속 구멍 세계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 속에서는 구름의 '기원'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들이 중국이나 한반도의 신석기인과 달리 '구름신' 또는 '차광기토우' 같은 '구름여신'(〈사진41〉)을 따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다 야요이 시대 한반도에서 넘어온 청동기인에게서 천문(天門)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난 뒤부터는 신석기 때 상상했던 구름여신이나, 구름을 3차원 입체로 빚었던 조몬토기(〈사진39〉)를 더 이상 굽지 않는다. 이것은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이 그만큼 딴딴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의 조몬인들과 달리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에는 '신'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암사동 신석기인은 지극히 리얼리스트였다.

나는 세계 신석기 무늬를 아리엘 골란처럼 추상적 상징이나 기하학적 기호로 보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아직' 그 무늬의 정체를 알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신석기 무늬는 어떤 '구상' 또는 '실제 대상'에서 왔고, 그러기에 신석기인에게 그 무늬는 '상징'이나 '추상'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의 구상'이고 실제였을 것으로 본다.
 

〈사진42〉 빗살무늬토기. 전북 진안. 높이 12.3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3-45〉 서울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6〉 인천 옹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진47〉 부산 동삼동.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린 하늘 속 물(水)

빗살무늬토기 무늬 가운데 '하늘 속 물(水)'은 〈사진45〉 왼쪽 그릇처럼 짧은 빗금을 그은 것이 가장 많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무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42-44, 46-47〉을 보면 하늘 속 물을 갖가지 모양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43〉 점점이 무늬를 낱낱이 자세히 살펴보면 끝이 뭉툭한 막대기 두 개를 묶어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44〉와 〈사진45〉 오른쪽 그릇 무늬를 말할 때 흔히 '손톱'으로 무늬(爪紋 손톱조·무늬문)를 찍었다고 하는데, 손톱으로는 이런 무늬가 나오기 힘들다. 조개껍데기 뾰족한 부분을 뭉툭하게 갈아 찍었을 것이다. 암사동에서 나온 그릇 조각에는 〈사진43〉처럼 섬세하게 점을 찍은 것이 많다.

그에 견주어 부산 동삼동 것은 선이 굵고 깊고 선명하다. 암사동이 여성적이라면 동삼동은 남성적이다. 또 암사동이 한 패턴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면 동삼동은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고 경쾌하다. 〈사진47〉처럼 동그란 막대기 끝을 지그시 눌러 하늘 속 눈(雪) 또는 물(水)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것은 속이 빈 대롱을 찍어 동그라미를 새겼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진46〉이다. 인천 옹진에서 나온 그릇 조각인데, 현대 그릇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도장 무늬를 찍었다. 이런 도장 무늬는 조선 분청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진48-51〉 서울 강동구 암사동. 국립중앙박물관. 〈사진52〉 삼국시대 제기 아가리 무늬 그림(김찬곤). ⓒ 국립중앙박물관

   
경계, 파란 하늘

〈사진48-51〉은 하늘 속과 경계를 짓는 '파란 하늘'(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궁창·하늘'이라 한다) 무늬다. 이 무늬 아래 구름무늬가 있거나 빗줄기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고 없을 때도 많다〈사진30, 31〉 참조). 〈사진48-50〉을 보면 물결무늬를 아주 짧은 빗금으로 찍었다.

〈사진51〉은 점을 점점이 찍었다. 파란 하늘을 이렇게 물결무늬로 새긴 까닭은 하늘 속에 물이 방방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무늬는 〈사진52〉처럼 삼국시대 제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아래 〈사진53-54〉 참조). 이때 제기의 무늬는 하늘(경계)을 뜻한다기보다는 그릇에 물이 찼으면, 다시 말해 비가 충분히 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하겠다. 아마 기우제 때 쓴 제기일 것이다.
 

〈사진53〉 방울잔, 삼국시대, 높이 16cm,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굽다리 바로 위 삼각형 구멍이 뚫린 부분이 방울이다. 이 구멍은 ‘삼각형 구름’이다. 방울잔은 신석기인의 ‘하늘 속 천문(天門)’ 세계관을 입체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울 위쪽 물 잔은 ‘하늘 속’이고, 그 하늘 속에 난 통로 천문(방울)에서 ‘소리’를 내며 삼각 구름이 네모(굽다리 네모 구멍)진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을 입체로 빚은 것이다. 천문(天門)과 소리(音, 음악)의 ‘기원’ 문제는 이 시리즈 말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사진54〉 뿔잔 받침그릇, 가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 석당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연재 1회 : 빗살무늬토기, 과연 기하학적 추상무늬인가
연재 2회 :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 종류는 다섯 가지
덧붙이는 글 전공은 문학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07년 문화체육부는 한국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발표했다. 그 해 나는 그것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정리해 <우리 민족문화 상징 100>(한솔수북) 1-2권을 썼다. 그 뒤 <문화유산으로 보는 역사 한마당>(웅진) 1-3권을 쓰고, 최근에는 <한국유산답사-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발자취>(사계절), <조선왕조실록-목숨을 걸고 기록한 사실>(사계절), <삼국유사-역사가 된 기이한 이야기>(사계절)를 냈다. 한국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할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 일은 늘 즐겁다.
#빗살무늬토기 #아리엘 골란 #마리야 김부타스 #조몬토기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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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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