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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위험한 순간에도 타인 돕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영화로 세상 읽기]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킥 애스> 시리즈

18.10.02 09:24최종업데이트18.10.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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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고속도로에서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받고 의식을 잃은 운전자가 다른 운전자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앙 분리대를 긁으며 계속 전진하는 차를 발견한 A씨는 자신의 차로 사고 차량을 막아 세우고 운전자를 구출했습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막아낸 고속도로 위의 영웅이었습니다. 이런 미담을 통해, 우리는 주위를 둘러 보면 생각보다 많은 영웅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영웅: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표준국어대사전은 영웅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만화나 영화에서 보아왔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 원더 우먼처럼 '초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영웅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서두에서 얘기했던 사례들의 시민들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도 등장합니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어. 소년의 어깨에 코트를 덮어주며 세상이 끝난 건 아니라고 다독이는 것처럼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도 영웅이야."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안은 후 사라진 배트맨(크리스찬 베일 분). 고담 시는 덴트 법을 통해 각종 범죄자들을 투옥시키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 덴트를 추앙합니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짐 고든(게리 올드만 분)은 사실 하비 덴트가 악인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려다 망설임 끝에 그만둡니다.

그리고 전편의 조커(히스 레저 분)에 맞먹는 강력한 악당 베인(톰 하디 분)이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베인은 영웅 '배트맨'조차 이길 수 없는 상대인데요. 쉽게 얘기하면 일반적인 영웅 영화와는 달리 영웅조차 이길 수 없는 악당이 등장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브루스 웨인은 지난 상처로 인한 8년간의 은둔,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적, 그런 적의 계략으로 전 재산을 잃게 되며 죽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우리 뒤에서 언제나 지켜주던 든든한 '영웅'이 아니라,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으로 그려내죠. 이는 브루스 웨인이 보통 사람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차를 마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영웅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좀 더 가깝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입니다. 평범한 것을 넘어 지극히 소심하고 나약해 보이는 주인공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또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느낍니다.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분)를 통해 우리가 믿고 추앙하는 영웅이 외계에서 온 초인적인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거리를 걷는 동안에 스치는 사람들 중 누군가도 혹시 보이지 않는 영웅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영화였죠. 이 부분은 역시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명대사와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일본 유학시절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승강장에 올리고 자신은 미처 승강장을 빠져 나오지 못해 열차에 부딪혀 사망한 고(故) 이수현씨, 몇 년 전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당시 아들을 구하고자 날아오는 총알 세례를 막아선 어머니, 테러범이 총구를 여성에게 겨누고 발사하자 몸을 날려 여성 대신 희생한 남성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심리학자들은 왜 이런 영웅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연구해 왔는데요. 데이비드 랜드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 박사는 이러한 궁금증에 '직감적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습니다. (2015년 11월 29일 <연합뉴스> 파리테러에도 등장한 '영웅'… 왜 영웅은 자신을 희생하나)
 
랜드 박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이 빨리 결정해야 하고 직감적인 결정이 요구될 때 가장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며 '사람들은 후에 주어지는 보상을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기존 심리학계 주장과 반대된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누구나 법을 잘 지키고 서로 신뢰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회에서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사회가 어렵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혼란스러울 때, 삶이 버거울 때 필요한 존재가 영웅인 것이죠.
 
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은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발달시키는 자아의 역량을 '기본적 신뢰 대 불신'"이라고 하면서 기본적 신뢰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으면 '불신'을 더 크게 경험한다고 했습니다(한국심리학회 웹진 PSY, 한성열). 어린 아이에게 있어 신뢰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인데,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경험이 되풀이되면 상대방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신뢰보다 불신이 더 큰 경우에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불안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믿을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내는데 대표적으로 '종교'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이 종교의 창시자에 대한 끝없는 믿음을 강조하고 또 그들에게 기도를 한다고 한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존재, 즉 어렵고 힘든 실제 생활에서 우리를 도와줄 존재인 영웅(Hero)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영화 <킥애스2: 겁 없는 녀석들> 한 장면.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래서 영화 <킥 애스2:겁 없는 녀석들>에서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시민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아들이 실종되자 영웅 복장을 하고 일주일에 3번씩 밤 순찰을 하는 '토미를 기억해' 부부, 게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한 사연이 있는 '곤충 인간', 여동생이 살해 당한 미녀 '나이트 비치' 등 영웅들은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스스로 영웅이 되기를 선택한 보통 사람들인 것이죠.
 
원래 <킥 애스> 시리즈는 수퍼 히어로가 되고 싶었던 한 소심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앞에서 계속 얘기했던 '보통 사람도 될 수 있는 영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수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출발한 것인데요. 영화 도입부에서 그런 내용을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시작합니다.
 
"왜 내가 처음일까? 만화책과 영화, TV쇼에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를 흉내 낼 별종들은 많고 많은데.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재미있나? 학교와 직장에 얽매야 사는 삶이? 자신한테 좀 솔직해지자. 누구나 한 번쯤은 수퍼히어로가 되기를 꿈꾸잖아."
 
하지만 초능력이 없는 그가 수퍼 히어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가 한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지역을 놓고 대립 중이던 조직 폭력배들간의 다툼 때문에 세 명이 한 명을 집단 구타하고 있는 현장을 우연히 본 킥 애스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데도 그 한 명을 돕습니다. 함께 얻어터지면서도 말이죠.
  

영화 <킥 애스: 영웅의 탄생>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자 두들겨 패던 사람이 "이름도 모르는 이 놈 때문에 목숨을 잃고 싶냐?"라고 묻자 킥 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셋이서 한 명 패는 걸 모두 구경만 하는데 말리는 내가 미친 거야?"

그렇습니다. 그는 평범한 우리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짜 영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속편에서는 위에서 언급했었던 다양한 거리의 영웅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나이가 들고 성장을 하면서 우리는 마음 속의 이런 영웅들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삶이 더 팍팍한 것일지도 모르고요. 반대로 얘기하면 아직도 마음 속에 영웅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삶이 조금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심적으로나마 의지할 수 있는 영웅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서두에 애기했던 우리 주변의 영웅들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마음속의 영웅이 있습니까?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웅 킥애스 다크나이트 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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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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